남대문 상가에 뭘 사러 간 게 서너 번인 거 같습니다. 라이방 사러 간 적이 한 번 있고(그 웨이페어러 아시안핏은 지금 큰애가 쓰고 다닙니다.) 주로 카메라와 캠코더를 사러 갔었어요. 니콘 쿨픽스라는 모델을 거기서 샀고, 다음은 큰애가 태어나서 유모차를 밀고 남대문에 가서 캠코더를 샀습니다. 파나소닉 캠코더를 사서는 지상으로 나와서 갈치찌개를 먹으러 가다 보니... 제 데님바지 뒷주머니에 돈뭉치가 있는 겁니다. 아이고, 정신없이 캠코더값을 지불하지 않고 와버린 거였어요. 겨우겨우 다시 찾아서 돈을 지불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다음은 당시 유행하던 DSLR을 사러 갔었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저는 자잘한 사기를 많이 당합니다. 하하. 집에 와서 열어본 니콘 D50에는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이 이미 몇 장 담겨있었어요. 렌즈는 뭐가 뭔지 몰랐고요. 다음 날 아침 퇴근시간을 기다려 번개처럼 가서는 새 카메라로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렌즈도 50미리 단렌즈로 바꿔왔어요. 그 렌즈는 같은 팀의 인규가 매번 빌려가곤 했었는데 지금 제가 가진 유일한 렌즈가 바로 그 F1.8의 50미리입니다. 그리고 D50은 제각 가진 유일한 디지털 바디입니다.
싸구려 바디를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냐면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이름난 포토그래퍼 한 분이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 와서 작은 배낭에서 꺼낸 카메라가 바로 D50이었거든요. 그때 그 포토그래퍼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요. '나는 해뜨기 5분 전, 그리고 해지기 5분 전에 찍습니다.'였습니다. - 정말 아름답죠. 5분 전이라니, 언제 해가 뜨고 해가 질지 모르지만 5분 전이라면 아마도 온몸이 느끼지 않을까요? '지금부터다.' 하는 신호 같은 게 느껴질 거예요.
사진만 그런 건 아니랍니다. 5분은 굉장히 길어요.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일을 하면 그 몇 시간이 해지기 5분 전처럼 느껴져요. 해지기 5분 전엔 뭔가 정리를 하고, 털고 일어서서 저녁을 먹으러 가요. - 시작과 마무리가 이렇게 좋은 건 아마도 '아름다운 5분'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