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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Feb 24. 2023

시선으로부터, 视线(시선)으로부터.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2021)를 읽고


시선 :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2021)는 심시선과 그 후손들이 살았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심시선이 한 인터뷰, 쓴 기고문 등을 통해 그의 성격, 세계관 등을 보여준다. 또한 각 후손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심시선의 자녀들과 손자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딸과 손녀들의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3대에 걸쳐 한국 여성들의 위상과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파악할 수 있다. 


 심시선은 일제강점기-혹은 그 직후-에 태어나서 현대까지 모든 근현대사를 직접 겪은 사람이다. 625전쟁 때 국군에 의해 가족들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고, 하와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유명한 화가인 마티어스 마우어의 눈에 들어 독일에 간다. 마티어스 마우어는 심시선에게 간접적인 방법으로 폭력을 가했다. 하지만 심시선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통적인 여성상, 어머니상, 할머니상을 거부했다. 허례허식이 되어버린 제사를 비판했고 아들, 딸 구별 없이 자녀들을 평등하게 대했다. 또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님들이 꼭 오빠만을 두고 '크게 될 놈'이라고 칭찬했거든요. 어느 날 엄마가 그게 싫었는지 매번 반복해서 말하는 손님한테 "그럼 우리 딸들은요? 작게 될 년들인가?" 하고 확 무안을 줬어요.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191쪽



심시선은 "이렇게 대단한 걸 그려도 그보다 중요한 정보는 남성 화가의 배우자란 점인지,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에는 절벽이 하나씩 있었을"(15쪽) 시기에 사회의 여성에 대한 한정을 깨부수었다. 


 그의 딸들은 본격적으로 산업화된 우리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명혜와 경아는 아버지가 남겨진 회사를 "빌린 권력"이 아닌 자신들의 진짜 힘으로 일구어 나가기 위해 힘썼다. 명은은 당시 여성에게 필수로 여겨지던 결혼을 하지 않았다. 상대 집안에서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여자의 복잡한 혼혈 자식"(36쪽) 이어서 거절했기 때문이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섞인 비인간적인 거절이었지만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전문성을 개발했다. 며느리 난정은 책도 많이 읽고 영민했음에도 경력이 단절되었다. 난정의 말대로 "그런 시대였"기 때문이다. 회사를 떠난 여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육아 휴직이 보장되어도 아이가 학령기가 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손자인 우윤, 지수, 화수는 여성의 지위가 과거에 비해 좀 더 오른 사회에서 자랐다. 하고 싶은 일들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의 여성에 대한 차가운 시선에는 맞서 싸워야 했다. 여성들이 범죄 피해자의 대다수를 이루는 사회에서 화수와 우윤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택했다. 


 제목 <시선으로부터,>는 이런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심시선으로부터 받은 유전적,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그들이 사회의 시선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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