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목나무와 매미 Apr 22. 2023

애거서 크리스티의 진면목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황금가지, 2021)을 읽고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황금가지, 2021)은 추리소설의 대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중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추리작가협회에서 '최고의 추리소설 1위'로 선정했고, 애거서 크리스티 본인도 자신의 10대 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원제인 <로저 애크로이드의 살인>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의 명사인 로저 애크로이드가 살해당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의 친구이자 책의 화자인 셰퍼드는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좀처럼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체를 밝히지 않고 숨어 지내던 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나선다. 애크로이드를 살해할 동기가 있는 많은 용의자들 중에서 푸아로는 살해범을 가려낼 수 있을까?


 이 책이 현재까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반전이 있는 결말 때문이다. 살해 동기가 충분하고 비밀이 있는 용의자들 중 하나가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이 진범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결말이 가진 반전보다도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서술 방식이다. 


 먼저,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인물들의 관계가 어느 순간 밝혀지는데 그전까지 쌓아둔 탄탄한 빌드업으로, 독자들은 의아함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감탄과 놀라움을 느낀다. 특히 유력한 용의자들 중 한 명이었던 찰스 켄트와 애크로이드 저택의 하녀장인 러셀의 관계가 드러났을 때 그동안 푸아로가 관찰했던 사실들이 단서로 맞춰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또한 진범이 아닌 다른 용의자들의 혐의와 동기를 충분히 설명하면서 진범이 자신의 살해 동기와 의도를 드러내지 않게 정교하게 서술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 진범이 성공적으로 숨어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독자들은 마지막 장까지 누구도 믿지 않으면서 흥미진진하게 책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런데 은퇴한 에르퀼 푸아로가 이곳에 와서 호박을 기르고 있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405쪽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푸아로가 아니라면 등장인물들도, 독자들도 범인의 정체를 쉽게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추리 영화와 <명탐정 코난> 시리즈를 시청한 덕분인지, 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많은 사람들이 극찬한 마지막에 등장한 살해범의 실체는 충격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본 영화들과 프로그램들의 추리 방식이 모두 이 소설에서 출발한 플롯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또 치밀하게 잘 설계했으면서 동시에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끌어당기는 서술 방식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진면목을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비의 본질과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