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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May 21. 2023

둘로 나눠진 베트남의, 둘로 나눠진 사람

<동조자>(민음사,2021)를 읽고


 이 책의 화자인 '나'는 "스파이, 고정 간첩, CIA 비밀 요원, 두 얼굴의 남자"다. "두 마음의 남자"이기도 하다. 프랑스-베트남 혼혈로 태어난 '나'는 숙명적으로 둘로 나누어질 수 밖에 없었다. 


 <동조자>(민음사, 2021)는 이처럼 분열된 자아가 바라보는 전쟁으로 나뉘어진 베트남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참혹한 현실이 책에 잘 드러나 있다. 베트남 군에 의해 잔인하게 고문당한 베트콩 간첩, 베트콩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살해당한 베트남 민간인들, 베트남, 베트콩 모두에 의해 유린 당한 베트남 국민들의 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전쟁을 원하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연해상에서 탈수증과 저체온증으로 죽고 싶은지, 혹은 자국 군인에게 약탈과 강간을 당하길 원하는지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엣 타인 응우옌, <동조자 1>, 민음사, 11쪽


베트콩에 의해 점령당한 후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인들의 삶 역시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보여준다. 그들은 보트피플이 되어 미국으로 가는 험난한 길에 올랐다. 운이 좋아 미국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인종차별과 생활고였다. 


 '나'의 분열된 자아는 베트남, 베트콩, 미국, 프랑스 모두를 비판하기에 적합한 시각을 가졌다. 둘로 나뉘었기 때문에 양쪽에서 혹은 아무 쪽도 아닌 입장에서 상황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베트남 정부는 부패했고, 민중을 구원하겠다는 베트콩은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배트남과 똑같았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소련과 대리전을 치룬 후 무책임하게 도망갔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 하에서 고통받았던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베트남전으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많은 민간인 학살과 황폐화된 국토를 제외하고는. 베트남인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희생당했다. "'아무것도 없음'이 독립과 자유보다 더 소중하다."는 화자의 깨달음처럼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프랑스인 지배자들과 그들의 후임자인 미국인들의 최악의 습성을 배우는 것에 관해서라면, 우리 자신이 최고임을 행동으로 입증했다. 우리는 게다가 원대한 이상을 남용하기까지 했다. 

비엣 타인 응우옌, <동조자 2>, 민음사, 292쪽


 <동조자>에 그려진 베트남 전쟁은 한국 전쟁과 많이 닮아 있었다. 냉전 시대 대리전의 피해자였다는 점에서, 결국 전쟁의 상흔만이 남았다는 점에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이념과 상관없이 생존을 위해 한 행동으로 희생당했다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동조자>는 미군의 철수로 미군에 협조했던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자세히 담아냄으로써 오늘날로 그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급작스런 철수로 인해 생긴 혼란, 중동,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아직도 발생하고 있는 신냉전-미국 대 중국-의 대리전은 현대에도 무수히 많은 동조자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만'은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혹하게 '나'를 고문한다. 잠을 자지 못해 괴로운 수일의 시간 끝에 '나'는 '아무것도 없음'이 독립과 혁명보다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베트남에서 탈출한다. '만'은 '나'가 헛된 희망에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충격요법을 가했을 것이다. 이상도, 혁명도 없이 고통만 있는 고국에서 친구만은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분열된 사회, 지구에서 변화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만'과 '나'의 우정뿐이었다. 


 언제쯤 지구상에서 사람들이 분열된 조국, 자아가 아닌 하나된 국가에서 꿈과 희망을 편히 좇을 수 있을까? 70년 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지금까지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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