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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May 29. 2023

6학년 소녀들의 상처와 회복

<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우리학교, 2022)를 읽고


 <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우리학교 2022)에는 3명의 소녀가 등장한다. 유나, 건희, 민설이다. 어느 날 유나가 굴러온 북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치고 이에 대한 진실 공방이 시작된다. 대나무 숲이라는 익명의 게시판에서 유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퍼지는 소문들.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양상을 잘 포착했다. 먼저 등장인물들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6학년 학생들이다. 유나는 밝고 긍정적이다. 친구들이 햇살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구김이 없고 밝다.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하지만 난타를 할 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쓰고, 흉터가 생겼을 때 지속적으로 거울을 보는 등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기도 한다. 유나의 같은 반 친구 건희는 시니컬하다.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서 강해 보일 때가 많지만, 전학 오기 전 학교의 안 좋은 기억으로 외로움도 많이 탄다. 또 다른 친구 민설은 항상 위축되어 있다. 엄마의 행복이 자신 때문에 망가지면 안 된다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친구가 자신에게 의지한다는 점에 집착하는 규리, 이곳저곳 들쑤시는 문수, 작은 일을 부풀려 크게 여기저기 소문내는 학생들. 어떤 학교든 존재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전형이다. 


 학교에서 소문이 퍼져나가는 과정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유나의 사건이 발생한 후 소문은 왜곡되고 과장되어 빠르게 퍼져나간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멋대로 추측해서 가짜 소문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민설의 엄마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사건 당사자인 유나, 건희, 민설은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상처를 입는다. 


 마지막으로 소녀들의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 역시 아이들다웠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긴 하지만) 북을 민 사람이 누군지, 흉터는 언제 없어지는지, 난타 공연을 망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신경 쓰며 괴로워하는 유나에게 보건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아무도 널 비난 못해. 나도 괜찮아지기까지 몇 년은 걸렸는걸. 완벽하게 괜찮아진 것도 아니고. 

137쪽


 유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내려놓는다. 민설의 용기 역시 소녀들의 상처가 봉합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모르는 척하고 있으라던 엄마의 말에 민설은 괴로운 속마음을 털어내고 옳은 행동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민설은 많은 비난을 받지만 유나는 민설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사건과 자신의 흉터를 받아들인다. 


 익명 뒤에 숨어 가짜 소문과 타인에 대한 비방을 퍼나르는 대나무 숲. 어떤 학생들에게는 스트레스 해소 창구가 될 수도 있고 어떤 학생들에게는 마음에 날아와 박히는 화살 같을 수도 있다. 어른들도 익명에 기댄 악의적인 소문에 휘말리면 괴로워한다. 사춘기 소녀들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동급생들의 악의적인 소문에 힘들어할 모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유나가 건희에게 이야기했듯이 말이다. 


넌 대숲이랑 상관없이 중요한 사람이야.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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