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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Jun 10. 2023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한 현실적인 비판

<코>(《외투》, 민음사, 2021)를 읽고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은 러시아의 작가다. 그는 19세기 러시아 관료들의 허례허식을 비판한 작품들을 썼다. 단편소설 <코>(《외투》, 민음사, 2021)에도 그의 관료들에 대한 신랄한 시선이 드러나 있다. 

 

 <코>는 어느 날 자신의 코를 잃어버린 꼬발료프의 이야기다. 꼬발료프의 모습을 통해 당시 하급 관리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꼬발료프는 8등관이다. 8등관은 “학력으로 받을 수 있는 칭호”기 때문에 관료제 안에서도 높지 않은 위치다. 하지만 꼬발료프는 자신의 지위를 과대평가한다. 그는 “8등관이라 하지 않고 언제나 소령이라 자칭하고 다녔다.”(23쪽)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도장을 들고 다니거나 있지도 않은 훈장을 위한 리본을 사기도 한다. 

 

 꼬발료프는 사회적인 지위를 중시한다. 그는 신분에 따라 사람들을 다르게 대한다. 마부나 하인에게는 발길질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고 폭언을 퍼붓는다. 반면 자신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는 깍듯하다. 꼬발료프는 코를 찾아다닌 끝에 5등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코를 발견한다. 자기 신체의 일부임에도 코의 5등관이라는 지위에 위축된 꼬발료프는 코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결혼 역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켜 줄 수단에 불과하다. 높은 계급의 대령 부인이 그에게 자신의 딸과 결혼해 달라고 하지만, 20만 루블의 지참금을 가지고 오지 못하는 대상과는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꼬발료프뿐만 아니라 경찰서장, 꼬발료프의 코를 찾아 준 경찰의 모습에서도 당시 부패한 관료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경찰서장 역시 상대의 계급과 가지고 온 선물에 따라 다르게 사람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8등관이 설사 몇 킬로그램의 차라든가 옷감을 선물로 가져갔다고 하더라도 서장은 기꺼운 마음으로 그를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39쪽) 코를 되돌려준 경찰은 꼬발료프에게 답례금을 요구한다. 

 

 이러한 인물에게서 부패한 당시 관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강한 자들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들에게는 강한 모습, 돈과 재물을 밝히는 모습, 모든 사회적 관계를 지위와 재력으로 판단하는 모습 등등. 문제는 이러한 관료들이 러시아 도처에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러시아라는 국가는 이상한 곳이어서 어떤 8등관에 대해 한마디만 하면 리가에서 깜차뜨까에 이르는 전국의 모든 8등관들은 ‘이건 틀림없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23쪽) 

 

 코가 따로 떨어져서 말을 하고 걸어 다니는 장면은 분명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코>에서 묘사된 꼬발료프의 비겁함, 꼬발료프와 그가 만나는 러시아 관리들이 보여주는 행태들은 당시 러시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더욱 현실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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