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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Jul 30. 2023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한 제주의 아픔

<제주도우다 1>(창비, 2023)을 읽고


현기영의 소설들은 그 역사적 상처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주 편>(창비, 2022), 5쪽


 미술사학자 유홍준이 제주도를 답사하기 앞서 언급한 부분이다. 현기영은 <순이 삼촌>(1978)을 통해 제주 4.3 사건의 전말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제주도우다>는 4.3 사건뿐만 아니라 조선 말부터 현대까지의 제주도의 역사를 조망한다. '나'의 부인의 할아버지이자 일제강점기 때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몸소 겪은 안창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중 <제주도우다 1>은 조선 말부터 해방까지의 제주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철저히 고증을 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조천면의 반일운동가들이었던 솔뫼 김명식, 목우 김문준 등의 인물들을 주인공의 이야기에 녹여냈다. 여기에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조천면 만세 광장, 연북정 등에서 일어난 일들을 서술하여 소설에 실제감을 부여한다. 제주도 지도를 옆에 두고 책을 읽으면 실제로 창세와 그 주변 인물들의 행적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현된다. 


 또한 할아버지의 묘사를 통해 당시 제주도민들의 고통과 아픔이 생생히 전달된다.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군에게 바치기 위해 감태를 열심히 채취해야 했던 제주 해녀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고 대신 활주로 포장 등의 험한 일들을 해야 했던 학생들, 탄광으로, 공사현장으로, 총알받이로 끌려가야 했던 청년들 등 제주도 각각의 구성원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또렷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통조림 공장은 관동군을 먹이기 위한 시설이어서 항상 작업이 바쁘게 돌아간다. 단추 공장에서 찍어내는 단추도 군 피복 공장으로 보내진다. 이 공장에 소라를 공급하기 위해서 여러 해촌의 해녀들이 소라 잡이에 동원되고 있다. 애국 사업이라고 소라 값이 터무니없이 싸다.

152쪽


 <순이 삼촌>과 달리 <제주도우다>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는 제주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의 제주민의 모습은 앞으로 다가올 사건들에 서사를 부여한다. 일본의 공장에 취직하는 조선인이 많았던 사실부터 왜 제주도 지식인들 중에는 좌익이 많았는지까지 등의 이야기를 통해 미래의 사건들을 위한 주춧돌들을 차근차근 쌓아놓았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해방 이후 자유를 만끽하고 새로운 조국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등장인물들과 마냥 같이 기뻐할 수 없다.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제주도는 이와 비슷한, 혹은 이보다 더 큰 비극을 겪게 될 것임을 독자들은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첫 부분에는 4.3 사건을 언급하기 꺼려 하는 창세의 모습이 나온다. 4.3 사건을 입에 담기만 해도 의심을 받고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4.3 사건은 끝난 후에도 제주도민들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지금도 사람들은 행여 무슨 오해라도 살까 봐 4.3사건을 쉬쉬하기도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주 편>(창비, 2022), 74쪽

그렇기에 아직도 4.3 사건은 다른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제주도우다>는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제주도 사투리를 적절히 사용하고 각 인물들의 감정을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4.3 사건을 보다 자세히 이해하고 제주도민들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이 마음 아프지만 그럼에도 꼭 끝까지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아직도 사람들이 미처 말하지 못한 제주도민들의 고통을 듣는 것, 그들의 슬픔, 아픔을 이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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