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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Oct 29. 2023

타자와, 나와 마주하기

<마주>(창비, 2023)를 읽고


 향초, 비누 등을 만드는 '나'는 자신에게 잠복 결핵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만조 아줌마를 떠올린다. 동시에 친구였던 수미와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끊기던 시점에서 '나'는 어릴 적 만조 아줌마와 함께 지냈던 여안에 가보기로 결심한다. 여안에서 '나'는 내 주변 인물들, 그리고 나의 과거와 대면한다. 


 <마주>(창비, 2023)는 코로나19 때문에 타인과의 연결이 끊어진 시기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거리 두기 수위가 가장 높았던 2020년의 풍경, 사람들 사이에 팽배했던 우울감이 잘 드러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단절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방에는 손님이 끊겼고 함께 점심을 먹던 근처 가게 사장들과도 교류가 없어졌다. 다른 사람들과 단절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감정의 끝으로 내몰렸다. '나'가 중고 서랍장을 판 여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나'를 찾아와 하소연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던 이야기를 한다. '나' 역시 친구 수미와 수미의 딸 서하와 멀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호흡곤란까지 겪게 된다. 


 타인과의 단절은 스스로와의 단절 역시 강화시킨다. 사람은 타자를 감각함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한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사라진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는 더 어려워진다. '나' 역시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단절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는 끊임없이 나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혼란스러워한다. 누군가 자신을 정의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말이다. 신경정신과를 나오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다가 알게 되는 것이다. 호흡기 내과적 질환과 신경정신과적 질환이 별개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이나리라는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이 필요함을. 

최은미, <마주>, 창비, 139쪽


  타인과의 단절, 나와의 단절 속에서 힘들어하던 '나'는 만조 아줌마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여안에서 '나'를 다시 찾게 된다. '선글라스 여자'와의 대화 속에서 만조 아줌마와 함께 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내고 만조 아줌마가 만들던 사과술 앞에서 자신이 여안을 떠나기 전 행했던 실수를 마주한다. 친구 '수미'를 통해 전해진 자신의 숨겨진 모습까지 알던 만조 아줌마를 통해 '나'는 비로소 '나'와의 단절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과 다시 연결될 수 있었다. 


만조 아줌마는 말했다. 이나리와 이나리 엄마한테 동시에 가지고 있던 어떤 연민에 대해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을 담고 있던 이나리라는 여자아이의 눈빛에 대해서, 쓰이고 또 쓰이던 마음에 대해서. 

최은미, <마주>, 창비, 282쪽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코로나 시기 우울증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국민의 40.7%나 되었다. 이때 우울증을 겪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고립감'이었다. 다른 사람과 내가 떨어져 있다는 생각, 이 사회에서 나 혼자 어딘가에 갇혀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힘들어했다. 코로나19를 관리하는 사회적인 규제는 약해졌지만 코로나19의 사회적 단절 시기로부터 사람들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며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다. '나'가 다른 사람들, 특히 만조 아줌마와의 재연결을 통해 스스로의 고립감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건 타자와의 긴밀한 연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을 향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가 팬데믹 속에서 감각했던 타인들이 그 이전을 계속 살아온 사람들인 것처럼, 그리고 그 이후를 계속 살아갈 사람들인 것처럼,  

최은미, <마주>, 작가의 말,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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