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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AXO Jun 18. 2019

1. 어른이 되어야 했을 때

Sasha Sloan - Older

왜 울어?

 어쩌면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내가 조금 더 예민하고 소심한 기질을 타고 난 아이였을 때, "울지 말고 말해, 이게 울 일이야?"라는 말을 듣는 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다 '큰' '애'는 우는 게 아니란 거다. 야무지게, 똑바로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눈물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걸 꽤나 혹독하게 배웠다. 그러니 눈물이 나면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이불까지 뒤집어써서 찌질한 나를 최대한 꽁꽁 가둬놓는 버릇이 생겼다. 참, 음악을 크게 튼다거나 샤워하는 것도 울음소리를 숨기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여전히 이따금 울컥울컥하는 어른이지만, 혼자 우는 게 너무 당연한 거라서, 남들 보는 앞에서 우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나 우는 이유가 내 개인적인 신변 상의 이유라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어쩌다 울고 나면 상당히 겸연쩍어져서 난 원래 감정적인 사람이 아닌데 어휴 술김에, 요즘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아니 생리할 때가 다 되어 그런 거 같다며 상대에게 각종 변명을 늘어놓는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파르르 떨며 무너지는 순간에도 제대로 달래주지 못하고 어색해한다. 아마 회피형이 감정적 사이코패스라는 말은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운다는 행위는 떨림을 수반하는데, 나는 우는 상대와 함께 공명하지 못한다. 손을 반쯤 내밀다가 '아이고 어떡해'하고 그대로 굳는다. 그리고 아득하니 집에 가고 싶어져버리는 것이다.


또 싸워?

 싸우는 사람들을 앞에 두면 나는 더 망연해진다. 캐나다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때 두어 차례 부부싸움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나는 잔뜩 눈치를 봤다. 정작 아홉살, 열한살 된 그 부부의 아들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만 으쓱이던데, 더 어쩔 줄 몰라하는 쪽은 게스트인 나였다. 커지고 높아지는 목소리들이 칼날처럼 서로를 찌르는 전장, 그 속에서 난 극도의 불안을 느꼈다. 뭐, 그렇다고 어떻게든 중재해보려는 어줍잖은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냥 빨리 그만들 싸웠으면 좋겠을 뿐이지.

 사실 내내 그게 엄마의 불만이었다. 싸우면 말리던가 편을 들던가 해야지, 왜 멀찍이 도망가서 지켜만 보고 있냐고. 나뿐만 아니라 동생도 똑같이 그러고 있으니 못마땅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 번을 져주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고 기분나빠하며 싸우는 사람들을 부모로 두고 자라다 보니,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게 편해졌다.

 그러니까, 싸우면서 서로 맞춰가기는 커녕 한치도 양보를 못하고서 바닥을 드러내며 지쳐가는 걸 더 많이 봐버린 결과가, 바로 이런 거다.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넌 이런 사람이었지, 하면서 분란을 일으키는 대신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상황을 모면하려는 회피성 태도는, 그렇게 내면화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적고 아웅다웅하는 그 모든 과정이 귀찮게 생각되는 것도, 내 경우엔 이 때문이다.


말 안 해서 좋아


 어쩌다 왜 싸운 건지 딱히 관심이 없더라도, 엄마가 우울한 기색을 비추는 때면 어쨌든지 간에 반쯤은 의무감으로, 무슨 일이 있냐고는 물어줘야 한다. 그날도 나는 내 대사를 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애드립을 받았다- "됐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잠깐 벙쪘다가, 이내 놀랍게도, 기뻤다. 무수하게 반복되어 온 상황들에서 나는 적어도 한 시간 30분가량 정도는 비슷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지는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듣고 리액션까지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그게 그 한 마디로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거였다니. 진작에 몇 번쯤은 그렇게 해주지. 나로서는 느닷없이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드디어 날 이해해주는구나, 엄마도 혼자서 이겨내는 법을 배웠구나. 그렇지, 엄마는 날 사랑하는구나. 그래서 활짝 웃으며 "엄마가 말 안 해서 좋다"고 했다.

 ... 아차, 오답이었다. 나는 아마 거기서 "에이, 왜 그러는데?"라고 대답했어야 했나 보다. 엄마는 저것도 딸이라고 낳았냐는 식의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다시는 내게 "됐다" 류의 각본이 정해진 멘트들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덥석 받아 새로 쓴 스크립트에 뜨악하신 모양이다. 아쉬워라, 난 그렇게 깔끔하게 끝나는 결말이 좋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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