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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Aug 26. 2020

시어머니가 낳고, 며느리가 키우다

<시어머니가 낳고, 내가 키운 남편>


2녀 3남 다자녀 워킹맘 애많은김자까입니다 ^^


남편 애많은이피디.  

그가 센스는 돼지발톱이요, 

세상 '통풍 잘되는 귀(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기)'를 소유한 인류라는 점은

아래 '화성에서 온 남편, 금성에서 온 아내'편에서 소상히 서술했다.


https://brunch.co.kr/@olee0907/119


당시 금성인인 내게 욕을 배터지게 먹은 후로,

화성인, 남편 애많은이피디는 웬만하면 애많은김자까가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듣으려도 꽤나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노력ing


다만, 일곱살 5호도 있는 눈치가, 50넘은 남편에겐 없다는 사실이 난제지만.

속이 터지더라도, 어쩌겠는가..? 가르쳐서라도 데꼬 살아야지 (자그마치 애가 다섯인데...)


장미가 한창 흐드러지게 피던 6월 쯤이었다.

출근길에 뉘집 울타리를 지나는데 주황색 장미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걸보고, 

운전 중인 남편에게 물었다.


"저거(주황색장미) 보면, 뭐가 생각나?"

"(긴장)시험이야? (진땀) 아~요보랑 그때 슬로베니아 갔을 때, 장미 많이 피어 있었잖아~블라블라"

운전대를 잡고 쫑알대는 남편을 나는 스윽 한번 쳐다봤다. 그냥 스윽 쳐다봤을 뿐인데,

남편은 바짝 얼어서는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더니,

"아냐? 으음...뭐지? 아 몰라. 안해안해. 무슨 얘길해도 눈치없다 그럴거잖아"

"잘 들어!!"

(애많은이피디 끄덕끄덕)

"어떤 사물을 보든간에, 언제 어디서의 상황이 아니라, 사람을 떠올리도록 해"

"??"

"당신은 주황색장미를 보고, 슬로베니아 여행갔던 때가 생각났댔지? 난 어머니(시어머니)가 생각나"

"엄마가 왜?"

"당신은 당신 어머니가 무슨 색 좋아하는 지 알아?"

"흰색?"

"ㅉㅉㅉㅉㅉㅉㅉ 어머니 주황색 좋아하시거든"

"엄마가 주황색을 좋아해?"

"쯔쯧"

"어머니 신발이며 옷이며 죄다 주황색이야"


오래전에 어머니께 옷한벌을 사드리면서 "어머님은 어떤 색을 좋아하시냐"고 여쭸더니,

어머니는 '이거면 됐다'며 손사래를 치시다가, 스치듯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주황색을 좋아하긴 한다."

"어렸을 때, 엄마(애많은이피디의 외할머니)가 장날에 주황색 원피스를 사다줬는데, 그게 그렇게 이쁘지 뭐냐. 맨날 그 옷만 입고 다녔지. 작아져서 못입게 됐는데도 한참 버리지도 못했다. 

그래선가? 난 그렇게 주황색이 좋더라"

그때 막, 시부모님께선 귀향해서 집을 짓고, 정원을 단장할 때였다.

어머님은 주황색이 좋다는 말씀을 고백처럼 하시곤, 마당을 쭈욱 둘러보시며

"그래서 저 울타리에 주황색 장미꽃을 심고 싶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님은 세상 퉁명스럽게,

"장미는 무슨 장미야? 열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시만 잔뜩 있는 그걸 어따 쓸라고 장미를 심어?! 심길?!....손주들 와서 다치면 어쩔라고!! 택도 없다."

며느리 앞에서 주황색 장미꽃 한그루를 심겠다고 했다가 면박을 당한 건 억울하지만,

손주들 다친다는 말에 어머니는 풀이 죽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런 어머니가 안스러워, 아버님께

"에이 아부지~~거 한그루 심어주시면 어떻다고" 아버님은 멋쩍어 했지만, 

끝끝내 주황색 장미꽃은 심어주지 않으셨다.

나라도 주황색장미묘목 한그루 사다 심어드려야겠다 생각했지만,

주황색 장미가 생각보다 흔하지 않았고, 몇해가 지나면서

그마저도 나역시 무심하게 잊어버렸다.

그 후로 가만히 지켜보자니, 실제로 어머님은 주황색을 참 좋아하셨다.

어머니의 소박한 옷장엔

티셔츠며 바지며 바람막이며 심지어 양말에 이불까지...

주황색이 절반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뒤늦게 결혼한 막내 시동생이 마흔을 훌쩍 넘어 첫딸을 낳았는데,

백일이 막 지난 조카를 보고, 내가

"우리 은*이, 할머니가 꼬까 사주셨구나?"

했더니, 시동생과 동서가 뭘 먹다 들킨 사람들마냥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주황색이잖아"



내가 남편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남편은 이해했을까?

따뜻한 사람이 될 것.

상황보다 사람에게 집중할 것.

제 할일만 열심히 잘하는 후배와

일은 고만고만하지만 선배의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는 후배.

당신이 선배라면, 누구에게 떡 하나를 더 주고 싶을 것 같아?


사랑하니까 '내맘 알겠지'가 아니라,

사랑하니까 더 집요하고, 열렬하게 사랑하시라고....남편아

'엄만데, 뭐'가 이나라

세상에 둘도 없는 엄마니까, 잘하시라고~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취미는 뭔지,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는지...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야.

내가 상대에게 집중하면, 상대도 나에게 집중하는 법~!! 알았소?!! 남편?!!


나는 연필을 좋아한다. 팔로미노사의 블랙윙이라는 연필을 좋아하고,

단종된 고가의 외국 빈티지 연필들을 좋아하는데.

나의 지인들은 연필을 보면 자동적으로 나를 떠올린다.


사물을 보고 상황을 떠올리는 건 추억이지만

그 사물을 보고 사람을 떠올리는 건 관심과 사랑이다.

"내가 늘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출근길 상황!!


"알았어? 주황색 장미...하면 슬로베니아 여행말고, 니네 어머니, 나의 시어머니를 떠올리라고~!!"


며칠 전 아버님의 고관절 상태가 안좋아져 두분이 진료를 받으러 서울에 오셨다.

서울역 앞에서 두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어!! 저기 엄마다"

"어디어디? 저렇게 먼데, 자기는 어머니가 보여?"

"아니, 안보여"

"근데?"

"주황색을 입었어"


이제 비로소 조금 성장했구나 애많은이피디야.

어머니, 어머니께서 낳으신 아들....제가 20년 째 키우고 있는 중입니다. 인정??!!  

인정!!


덧. 시댁은 남편 포함 아들셋이다. 

그러니까 우리 어머님은 아들 셋을 키우신게다

어느날 이들 삼형제에게 "어머니가 뭘 좋아하시는 지 아냐?"고 묻는다면, 

삼형제는 아마도 "글쎄....우리 엄마는 특별히 좋아하시는 거 없는 것 같은데?"라고 할꺼다.

그래서 지오디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노래도 나왔겠지.

어머님께서 롯데** 새우버거를 좋아하시고, 

앉은 자리에서 한박스를 다 드실 정도로

카스테라를 좋아하신단 사실을 삼형제에게 알려주는 것도, 맏며느리인 내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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