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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Dec 24. 2019

화이트크리스마스의 청상과부

2000년 초에 결혼했던 우리에겐

첫 크리스마스에 갓난 1호와 함께 였다.

남편과는 두번째 크리스마스였고,

결혼해선 첫 크리스마스였다.

설레는 신혼의 크리스마스였다.

다만, 애많은이피디가 크리스마스 직전

열흘 넘게 취재일정이 잡혀있었으나,

크리스마스 이브엔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당시 휴먼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던 남편은

영덕대게잡이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갔다.

뱃사람들의 겨울을 담는 내용이었다.


남편이 돌아오기로 한 크리스마스 이브엔 

오후부터 소복소복 눈이 내리더니

온통 하얀 세상이 됐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장시간 배를 탄데다, 울진서 서울까지 돌아오는 길이 녹록치 않겠고,

많이 피로하겠으나

그래도 결혼해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닌가?

난 식당을 예약하고

들뜬 마음에 하루를 보냈다.


어디쯤인지 궁금해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봤지만,

어쩐 일인지, 남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일기가 사납다는 말에,

전날부터 조금씩 염려는 하고 있던 차였다.

파도가 높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 다됐다.

남편과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고,

심난한 마음에 성탄전야 미사도 가지 않았다.

'괜찮아. 배터리가 없겠지. 배안에서 어떻게 충전을 했겠어?'

그리고, 그렇게 밤이 됐다.

눈은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화이트크리스마스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났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고, 25일 오전까지 기다리다,

방송국으로 전화를 했다.

"이** 피디 안사람입니다.

남편이 취재갔다 어제 돌아오기로 했는데...돌아오지 않아서요.

무슨 소식이 있었나요?"


부장이란 사람이,

"안그래도 해경이랑 연락 중인데,

조난 신고가 들어온 건 없다고 합니다.

일기가 나빠서인거 같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죠."

뉴스에선, 밤새 파도가 2미터가 넘었다고 했다.


25일이 되자, 눈은 그치고, 세상은 새하얬다.

화이트크리스마스다

남편에게선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취재나가기 전 아들과 통화를 했던 어머님은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나 전화를 했다가 연락이 닿지 않자,

내게 전화를 했다.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어쩌냐고 했다.

대꾸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24일은 제정신이 아녔고,

25일은 정신줄을 놨다.

남편은 그렇게 예뻤던

2000년 12월 25일 화이트크리스마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다고만 했다.

카톡도 없는 시절, 부질없이 문자만 보내고.

음성메시지만 남겼다.


질질짜다가 한번.

엉엉울다가 한번.

포효하면서 한번.

애걸복걸하면서 한번.

몇번의 음성메시지를 남겼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만사가 귀찮았다. 이미 그때 나에겐 하늘과 땅이 붙어버렸다.

갓난 1호를 꼭 안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놨다가

응애응애 숨넘어가듯 우는 아이를 보고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가

다시 부여안고,

이제 우리는 어쩌면 좋겠냐며 대성통곡하다

아니라고 아빠가 그럴리가 없다고 돌아올 거라며 눈물을 훔쳤다.


다시 뜬 눈으로 26일 아침을 맞았다.

휴대전화만 바라봤다.

배가 고팠던지 기저귀가 젖었던지,  

갓난 1호가 앙앙 울고 있을때,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남편은,

내 이름을 불렀다.


난 악을 썼다.

"야!!!! 너 뭐야!!!!! 너 뭐하는 새끼얏!!!!!!!!??"

다리에 힘이 풀렸다.

폴더폰을 붙잡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집채만한 파도가 일었다고 했다.

애많은이피디가 탄 배는 무사했지만,

무시무시한 파도에 작은 어선 한척을 끌고 오느라,

며칠이 더 걸렸다고 했다.


전화도 못하냐? 해경에는?

전화 안되지. 통신 두절이라 해경에 연락이 안됐어.


화이트크리스마스.

창밖으로 내리는 흰눈을 바라보며,

온갖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던

2000년 크리스마스.

난 그때,

아이와 둘이 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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