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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Dec 22. 2019

이런 개떡같은 (며느리)

며느리의 첫 인사

애많은김자까와 애많은이피디는

1999년 4월. 모방송사 4층 회의실에서 첨 만났다.


(애많은이피디와 애많은김자까가 처음 만난 사연은 아래서 확인)

https://brunch.co.kr/@olee0907/10


당시 애많은이피디는 35세 배나온 노총각이었고,

난 29세 .......뭐 이런 얘기 차마 내 입으론 하긴 그렇지만,

비주얼상으론 내가 밑지는 장사였다. (암 암 그렇고 말고)

당시, 우리의 사내 연애를 안 후배가

심각하게 이런 소릴 했을 정도니깐 말이다.

"언니, 이**피디 진짜 사랑하나부다"


당시, 애많은이피디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5-60대 아주머님들이 사위삼고 싶은 사위이상형이었을지언정,

그를 남편삼고 싶어하는 미혼녀들은 없었던 관계로,

순전히 내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그를 구제해 준 거였다.


연애기간은 8개월 정도, 둘이 결혼 얘기가 오가고

1월초, 시댁에 첫인사를 드리러 가겠다 했을때,

시댁엔 아주 경사가 났더랬다.

대단한 며느리를 봐서가 아니라...

총각으로 늙어죽나 했던 맏아들이 결혼을 한다니 그랬고,

바로 아래 남동생이 7년 연애 끝에,

더이상 똥차를 기다릴 수 없다며,

3월 결혼 날짜를 잡아 놓은 터였다.

(애많은이피디는 3형제 중 맏이다)

(차마 큰아들에겐 이 사실을 말하지도 못하고,

시어른들과 시동생은 끙끙대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맏아들의 결혼 소식이 반가울 밖에.

손아랫 동생은 형님의 뒤늦은 결혼 소식에

이미 잡아놨던 3월 결혼식을 똥차 커플를 위해, 5월로 연기했다.


여하튼!!

당시, 둘다 데일리 생방송을 하고 있던 터라, 시댁으로의 첫인사는

부득이 설연휴 중으로 잡았고

음력설 바로 전날이었다.


누구보다 분주하고 들뜬 건 울엄마 김여사였다.

'저걸 누가 데려가나' 했던 까칠한 딸을

서른 전에 결혼을 시킬 수 있단 안도감에

들뜬 김여사는,

시댁 첫 인사때 어떤 선물을 가져가야할 지에 대한

전방위적인 시장조사에 나섰으니.

일단 딸아들 결혼시킨 경험이 있는 친구나,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로부터 막대한 정보를 취한 뒤,

김여사는 결론을 내렸다.

뭘 하든 고급진 하나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김여사가 예비사돈댁에 보내는 선물 목록 1호로 선택한 것은, 떡!!이었다.

내로라는 집안들이 인사갈 때 너도나도 맞춰간다는 압구정동 떡집이라나?

우리집이 내로라 하는 집이 아닌데, 웬 떡이냐며 묻고 싶었지만

김여사의 들뜬 마음에 초를 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난 국으로 앉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했다.


당시 예비신랑, 애많은이피디에게도 몇차례 떡 정보를 공유했다.

"엄마가 부산에 인사드리러 가는데, 떡을 보내시겠대. 뭐 압구정동의 유명한 떡집이라나 뭐라나"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리고, 결전의 날.

그날 새벽, 압구정동에서 벤*를 타고 온 웬 신사께서

고급진 보자기를 전달하고 가셨다.

떡이었다. B5 정도의 쟁반만한 크기였고, 무겁지 않았다. '떡 맞아??' 할 정도로!!

원래 고급진 건 양이 적은 법이라는

뻔하고도 말도 안되는 썰을 푼 건, 물론 울엄마 김여사였다.


그렇게 애많은이피디와 애많은김자까는 떡보자기를 들고,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부산공항에 내리니,

막내 시동생이 마중나와 있었다. 나보다 두살 아래, 삼형제 중 막내 시동생이었다.

겸연쩍고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남편은 떡보자기를 동생에게 넘겨줬다.


"이게 뭐꼬?"

시동생의 질문이었다

"떡이다"

남편의 답변이었다.

그러자, 시동생은 아주 시큰둥하게

"떡은 무신 떡이고" (뭔 떡같은 걸 사왔냐는 뜻이었다)

난 속으로 '이런 개떡같은 4가지를 봤나. 형수가 선물이라고 가져왔다는데

'떡은 무신 떡'? 저걸 확!!!'

초면에 성깔을 다 드러낼 수도 없고,

타이트한 정장스커트에 옷핀 꽂고 2단 옆차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빠드득 이를 한번 간 뒤,

막내 시동생의 뒤통수에 구멍이 뚫리도록 노려봤다.

그리고, 시댁 앞에 도착했다.

시어머니는 그때, 거의 버선발로 골목길까지 뛰어나오셨다.

표정은 세상 반가운 표정이었지만,

몹시 고단해 보이시고, 작업복 차림이었다.

"아이고 잘왔다 잘왔어. 우리 며느리. 금방 정리하고 갈테니, 집에 올라가 있어라"

그때, 막내 시동생이

쭉 내밀어 떡보자기를 시어머니께 건냈다.


"(반색)이게 모꼬?"

"(시큰둥)떡이란다."


난 그때, 시동생으로부터 보자기를 건네받던 순간 스쳤던,

어머님의 난망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색하게 떡보자기를 받아 든 어머님은

우리에게 어서 올라가라며 재촉하시곤,

당신은 어디론가 총총 사라지셨다.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뭔가 저 떡보자기가 오갈때마다 느껴지는 이 석연치 않은 기운은 뭐지?

게름칙하던 차에...

예비 남편 애많은이피디가 내게 무심하게 '툭'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말했나?"

"뭘?"

"우리집 방앗간한다고?"


난 그자리에 돌처럼 얼어붙었다.

(그때 이 결혼을 엎었어야 하는데, 콱~!!!!!)


떡보자기가 전달될 때마다, 그 석연찮고 어색한 기운의 비밀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이런 망할 개떡같은 ㅠㅜ


세상에!! 시댁에 처음 인사가는 며느리가

시댁이 방앗간 하는 줄도 모르고,

그것도 떡이라면 신물이 날것같은 설날 전날,

종일 가래떡을 뽑고 계셨을 시어른들께 선물이랍시고 가져간 게 '압구정동 떡'이라니.......

이런 개떡같은 며느리를 봤나 ㅠㅜ


서울로 돌아와서, 울엄마 김여사에게 이 사실을 전했을 때,

김여사는 아주 난리도 난리가 그런 난리가 없었더랬다.

미안하고 챙피해서, 상견례는 어찌 할 것이며 사돈 얼굴을 어찌 보겠냐며...

"낸들 알았나?"

"야. 세상 천지에 결혼 날짜까지 잡고, 시댁이 뭐하는지도 모르는 얼빠진 년이 어딨냐?"

"사람이 중요하다며어~~~~~시댁이 뭘하든~~~~그게 뭐가 중요하다구 물어봐아~~~"

"그래도 방앗간집 아들하고 결혼하면서 첫인사 선물로 떡은 가져가지 말았어야짓"

"낸들 알았냐고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작년인가? 20년만에 어머님께 처음 말을 꺼냈다.

"어머니, 그때 제가 첫인사 갔을때요. 어머니가 방앗간하시는 줄 모르고 떡을 가져간 거에요.

제가 떡을 준비해간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을 했는데,

어무니 장남이 자기집 방앗간한다는 말을 안했다니까요.

제가 그때 얼마나 민망하든지 아주 딱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어요오~~

어머니는 그때 '어디서 저런 둔한 게 며느리라고 들어왔나'...하셨을 것 아녀요"


그러자 어머니는 손사레를 치며

"아이고~ 그런소리 하지 마라. 난 평생 방앗간했어도...그렇게 맛있는 떡은 처음 먹어봤데이~~역시 서울 떡은 다르구나 했는데, 무신 말이고"


어무니.......... 죄송합니데이

그리고, 애많은이피디........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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