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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줄리언 반스/다산책방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이라는 부제에 눈길이 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가 요리를 한다고? 유명한 남자 작가와 요리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재미있는(?) 조합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일 수 있겠다. 요즘은 요리를 잘하는 남자를 매력남으로 꼽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반스가 젊었을 때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한 것을 알게 된 그의 아버지의 당시 반응은 이랬다.


아버지는 자유민주주의자적인 가벼운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예전에 『공산당 선언』을 읽는 나를 보았을 때나, 버로토크의 현악사중주를 들어보라는 나의 강요가 못마땅했을 때의 눈초리와 같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지만 않으면 그 정도는 그냥 봐줄 수 있어”라는 듯했다.(21쪽)


영국도 그 당시에는 남자가 요리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영국이나 한국이나 남자가 요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사라진 듯하지만.


줄리안 반스는 다양한 요리사들의 요리책을 읽고, 그 책에 나온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하면서 느꼈던 점을, 소설가답게 유머러스하거나 냉철하게 말했다. 새로운 레시피를 따라 하다가 실패했을 때 작가가 느꼈던 좌절감과 불만은 여느 초보 요리자와 다를 바 없었다. 반스가 요리에 실패했을 때 스스로 자책하거나 합리화하는 모습을 볼 때 슬며시 웃음이 났다.


나는 내가 상당 부분 의존하는 요리책들에 분노하는 일 또한 잦다. 그러나 요리에서 현학적인 마음가짐은 당연하고도 중요하다. 걱정스레 미간을 찌푸리고 열심히 요리책을 들여다보는 독학 요리사인 나도 누구 못지않게 현학적이다. 그런데 왜 요리책은 수술 지침서처럼 정밀하지 않을까?(...) 레시피에 쓰이는 단어는 왜 소설에 쓰이는 단어만큼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까?(26쪽)


반스는 ‘요리한다는 것은 법석 떠는 과정을 거쳐 불확정성을 확정성으로 변형시키는 일이다.’라고 소설가다운 정의를 내렸다. 그러나 요리는 머리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실천적 작업이다. 그 작업에는 실패가 필히 따를 수밖에 없다.


반스는, 요리사 리처니 올니가 한 말, “실패는 창피한 게 아니며, 보통은 성공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만 그의 실패한 심경은 꽤나 복잡한 듯했다.


아무렴, 나도 이상적인 이론으로는 그게 맞는 말임을 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가정 요리사들에게 실패는 실로 불명예다. 그렇지 않다고 그들을 납득시키려면 다년간의 심리 치료를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아주 좋은 시스템을 다년간에 걸쳐 개발했다. 일단 요리의 결과가 심각한 실패에서 총체적으로 엉망이 된 수준 사이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그걸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 절대로, 부엌의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도태의 법칙에 따라서.(150쪽)


요리에 대한 그의 착잡한 심정은 부엌 세계의 종사자인 내게도 격렬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요리는 즐거움이 전부여야 하지 않을까? 계획을 세우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할 기대감에서 오는 즐거움, 지나치게 자축하지는 않는 흐뭇한 회상의 즐거움. 하지만 그런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가. 너무 마음을 졸이다 기대감에서 d는 즐거움을 잃고, 술에 취해 그 시간의 대부분을 망각하고, 숙취 속에서 생각나는 것이라곤 계속 재연되는 설거지 장면으로 축소된 것일 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164~165쪽)


요리는 있는 것(주방 설비, 재료, 솜씨 수준)을 가지고 때우는 것이다. 그것은 작은 성공 하나하나가 가급적 분에 넘치는 치안을 받아야 마땅하고 실수도 할 수 있는 하나의 절차다. (181쪽)

부엌 세계에서의 반스의 절절한 경험이 느껴지지 않는가?


문득 요리라는 것을 삶에 견주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도 정확한 레시피가 있다면 맛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세상에는 삶에 대해 조언을 늘어놓는 좋은 책들이 넘칠 만큼 많다. 그렇지만 그 책들을 읽었다고 독자들이 멋진 삶을 살 수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차피 글쓰기나 요리처럼, 삶 역시 창작하는 것이다. 멋진 레시피에 실패의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가 더해진다면,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멋진 창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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