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1
이 책에는 총 56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 시들은 모두 되새김하고 싶은 좋은 시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류시화가 선정했으니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책에 실린 시를 쓴 이들은 내가 거의 모르는 시인들이 많아서 더 반가웠다. 세상은 넓고 시인들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들의 세계가 더 넓게 확장되어서 기뻤다.
소개한 시 뒤편에는 엮은이가 시인에 대한 소개를 했고, 또 자신의 느낌을 덧붙였다. 소개한 시도 좋았지만, 류시화 시인의 덧붙인 글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이 담백하고 멋졌다. 좋은 시와 좋은 에세이를 동시에 접할 수 있어서 책을 읽는 즐거움이 더 컸던 것 같았다.
책에는 나도 알고 있는 시, 오르텅스 블루의 <사막>이 실려 있었는데, 그 작가에 대한 후일담이 간략하게 나왔다. 이 시는 파리 지하철 공사가 매년 공모하는 시 콩쿠르에서 8천 편의 응모작 중 1등으로 당선된 작품이었다. 류시화는 파리에 사는 화가 친구에게 그 작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오르텅스는 시 게재를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시가 완벽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느낀 외로움을, 자기 시에서 쓴 ‘너무도’만으로는 표현이 안 되었다는 거였다. 그녀의 시 <사막>은 그녀가 정신병원에서 쓴 시라고 했다. 그녀는 첫사랑과 헤어진 충격으로 정신발작을 일으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녀는 방문한 화가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눈 후에 마침내 자기 시를 책에 실어도 좋다고 허락했다고 한다. 이 시는 이미 많이 알려진 시이지만 다시 옮겨본다.
사막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위의 시에서 ‘너무도’ 부분을 다시 음미해보기 바란다. 이 시에 대한 류시화 시인의 덧붙인 글을 읽고 가슴이 ‘너무도’ 아팠다. 그런데 오르텅스 블루가 말한 것처럼, 나 역시 안타깝지만 ‘너무도’ 이상의 어떤 표현을 할 수 없었다.
이 책에서는 시 소개뿐만 아니라, 시를 쓴 시인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간략하게나마 덧붙어 있었다. 이런 책 구성이 시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가진 매력이다.
시가 우리 삶에서 무슨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정신없이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짧은 글 속에 함축된 삶의 지혜가 어떤 긴 말보다 충격을 주고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은 시로 납치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책 뒤편에는 류시화 시인의 글 ‘시가 그대에게 위로나 힘이 되진 않겠지만’ 이 실려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는 시인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쓰고, 독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읽는 문학이다. 이 시집은 전 세계의 시인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쓴 시들을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읽은 것이다. 내 해설에 구애받지 말고 당신만의 방식으로 이 시들을 읽기 바란다. 어떤 감상이 옳거나 그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 이 세계를 독특하게 해석하는 존재들이다.
이 글은 우리가 시를 어떻게 읽고 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이 세계를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고 있듯이, 시도 그렇게 읽으면 될 것 같다. 삶의 방식에 정답이 없지 않은가.
이 책 제목이 된 시가 제일 마지막에 소개되었다. 그 시를 옮기며 글을 맺을까 한다.
납치의 시
니키 지오바니
시인에게
납치된 적이 있는가.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당신을 납치할 거야.
나의 시구와 운율 속에
당신을 집어넣고
롱아일랜드의 존스 해변이나
혹은 어쩌면 코니아일랜드로
혹은 어쩌면 곧바로 우리 집으로 데려갈 거야.
라일락 꽃으로 당신을 노래하고
당신에게 흠뻑 비를 맞히고
내 시야를 완성시키기 위해
당신을 해변과 뒤섞을 거야.
당신을 위해 현악기를 연주하고
내 사랑 노래를 바치고
당신을 얻기 위해선 어떤 것도 할 거야.
붉은색 검은색 초록색으로 당신을 두르고
엄마에게 보여 줄 거야.
그래,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당신을 납치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