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봄날의책 세계 산문선
일본 근현대 작가 26명이 쓴 산문집으로 총 41편이 실려 있다.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같은 이미 많이 알려진 작가들 외에는 모르는 작가들 작품들이 많았다.
번역가인 정수윤이 엄선한 산문들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러나 글도 취향을 많이 타는 것이어서, 어떤 글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어떤 글은 그저 그랬다. 산문에서 드러난 감정선들이 대체로 아주 섬세했다. 일본 문학을 그다지 접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일본 문학의 특징일까.
책 한 권으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맛볼 수 있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이 책은 다른 작가의 책에서 언급된 것을 보고 읽게 되었지만,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책날개에 실린 추천의 글이 더 좋았다. 뭐, 이런 일이 드문 일도 아니지만.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산문은 제일 처음에 실렸던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거 일기>였다.
소세키가 영국 유학 갔을 때 자전거를 배우며 일어났던 일에 관해 쓴 글이었다. 묘사가 어찌나 생생하던지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내용은 유머가 넘쳤다. 멋진 산문의 본보기가 될 만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길 가던 사람이 드문드문 서서 구경을 한다. 히죽히죽 웃으며 걸어가는 이도 있다, 저기 떡갈나무 아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유모가 벤치에 앉아 아까부터 줄곧 감탄을 한다. 뭘 보고 감탄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땀 줄줄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자전거와 씨름하는 갸륵한 모습을 넋 놓고 보는 중이겠지. 홀로 타향에서 자전거라는 좋은 친구 하나 얻는데 정강이 두세 군데 긁히는 것쯤 무어 그리 대수인가 싶어, “한 번 더 부탁하네. 이번에 더 세게 밀어줘. 또 넘어질 거라고? 넘어져도 어차피 내 몸인데 뭐 어떤가.” 항복했던 과거도 잊고 맹렬히 불꽃 튀기는 연습을 하는데, 돌연 뒤에서 Sir!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길에서 모르는 서양인이 다가오는 일은 좀처럼 없는데 싶어 돌아보니, 당황스러울 만큼 덩치 큰 경찰이 떡하니 서 있는 게 아닌가. 나로선 그런 사람 곁에 다가가고 싶지 않지만 저쪽은 나 같은 촌뜨기 땅딸보에게 다가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유로 말할 것 같으면, 이곳은 말을 타는 곳이지 자전거를 타는 곳이 아니니 자전거 연습을 하려거든 밖에 나가서 하라는 얘기였다. 올라잇,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격식이 있는 영어 없는 영어 다 섞어가며 나의 박학다식함을 모조리 드러내는 대답을 하고는 곧장 감독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오늘 내가 겪을 굴욕은 충분히 겪었다 생각했는지 감독관은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탈 줄 모르는 자전거를 손에 끌고 집으로 돌아가니 아주머니가 어땠냐고 묻는다. 나는 패배의 여운을 담아 읊조렸다. 자전거 울자 해 떨어지고 귓가에 가을 소리 들리지 아니한가.*(14~15쪽)
*『당시선 唐詩選』에 실린 여온의 오언절구 앞부분을 패러디했다.
‘말 울자 해 떨어지고 칼날에 가을 소리 내 마음 둘 곳 없어 강가를 거니네.’
글에도 활력(活力)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1902년 가을에 쓴 글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했다. 글 속에서 글쓴이의 숨결이 오롯이 남아있는 듯했다. 작가는 죽었으나 글은 살아 있었다.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작가들은 영생을 누리는 듯했다. 불멸에의 욕구는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이번에는 굉장히 기발하고 특이한 산문을 소개하고 싶다.
다카무라 고타로의 <촉각의 세계>이다.
그의 산문이 아주 독특해서 산문 전체를 베껴두었지만, 너무 길어서 여기서는 발췌한 앞부분만 옮겨본다.
나는 조각가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나에게 세상은 촉각이다. 촉각은 가장 유치한 감각이라고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가장 근원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각은 가장 근원적인 예술이다.
나의 약지 안쪽은 매끈매끈한 거울 표면에서도 요철을 느낀다. 이건 최근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유리에도 가로세로가 있다. 눈을 감고 평범한 유리의 표면을 어루만져 보면, 흡사 나뭇결이 살아 있는 오동나무 나막신 같은 무늬가 느껴진다. 잘 닦인 거울 표면 같은 경우는 나막신까진 아니지만, 겨우 15센티도 안 되는 너비에 두 개가량의 물결무늬가 있다는 걸 손끝은 알고 있다. 약지에는 경사를 느끼는 감각이 있는 것 같다. 거울 표면의 파동을 느낄 땐 흡사 배가 파도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느낌이다. 약간 기분 좋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인간에게는 오감이 있다지만, 내게는 오감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다. 하늘은 푸르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있다. 하늘은 촘촘한 결을 가졌다. 가을 구름은 희다고 한다. 하얀 건 맞지만 동시에 은행나무 목재를 사선으로 자른 듯한 광택이 있어 편백나무 결이 있는 봄날 뭉게구름과는 완전히 다르다. (103~104쪽)
놀랍지 않은가? 대상물을 촉각으로 느끼는 그의 감각이! 조각가의 눈이 의당 그래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글을 읽으며, 글은 ‘기술’ 이 아니라 ‘사상’이나 ‘사고방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도 자꾸 하면 나아진다고들 하지만, 글 쓰는 이의 사고가 남과 달리 뛰어나거나 독특한 면이 없다면, 글은 그저 그런 평범한 수준에 머물고 말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여전히 ‘몹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름답거나, 기억해두고 싶었던 몇몇 글들을 옮기고 마무리 지을까 한다.
이즈미 교카의 <따뜻한 물 두부>
소나기는 금세 그쳐 희미한 햇살이 쏟아졌다. ······단풍나무 잔가지에 남은 잎만 붉게 젖어 아름답다. 한꺼번에 지는 것들은 모두 아쉽다. 손을 뻗으면 좁은 뜰에 진 단풍잎에 금세 닿을 듯하다.(61쪽)
-순간의 풍경을 아주 섬세하게 아름답게 표현해서 가끔씩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글이다.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나의 고독은 습관입니다>
고독은 천재의 특권이라 했던 쇼펜하우어마저 밤에는 아내를 벗 삼아 얘길 나눴다. 진정한 고독 생활이란 애초에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인간은 친구가 없으면 개나 새에게라도 말을 건다. 필경 인간이 고독한 것은 주위에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리라. 말하자면 천재의 특권이 아니라 비극이다. (271쪽)
-쇼펜하우어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쿠타 슌게쓰의 <실내 여행>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를 대할 때조차 서먹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책과는 그럴 일이 없다. 싫증 나면 언제든 덮어버릴 수 있다. 여기다 책에 바치는 기나긴 찬미를 쓰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책도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는 것도 알고 있다. 너무 많은 양의 독서는 『구약성서』에도 나와 있듯 몸을 피로하게 하며, 그보다 더 나쁜 건 독창성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305쪽)
윗글에 동의하며... 독창성을 상실할 정도로 책을 읽지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