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마지막 입맞춤/대니 그레고리/세미콜론

-외로울 땐 독서

by 푸른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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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색깔로 그린 그림일기


화이트 러시안(칵테일의 일종)을 계기로 아내 패티를 만나게 된 대니는 만난 지 5년 만에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1년 후, 아들 잭을 낳았고 그들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모험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홉 번째 결혼기념일을 한 주 앞두고 패티가 지하철역에서 발을 헛디뎌 선로로 떨어졌다. 열차 세 칸이 패티를 치고 지나갔고, 패티는 척추가 부러져서 두 다리가 마비되었다. 그 일로 패티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그들은 패티가 혼자서도 모든 걸 할 수 있게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했다. 8층 아파트였다. 대니는 패티가 휠체어에 앉게 되면서 오히려 더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했다. 패티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패티를 필요로 했다.


패티가 선로에서 떨어진 사고가 난 후 15년 후.

패티는 봄이 오고 날이 화창해지자, 테라스 정원에 있는 튤립에 물을 주려고 했다. 침실 창문 밖에 있던 고무호스를 꺼내려고 몸을 창밖으로 기울이다가,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그대로 창문 밖으로 떨어져 추락사했다.


패티가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리고 나자 대니는 넋을 잃었고,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그는 마치 한쪽 팔이 없어진 사람처럼 어리둥절했다. 대니의 인생과 하나로 뒤엉켜 있던 아내 패티가 지금껏 그에게 해준 모든 것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일상적인 집안일을 꾸려 나가는 것, 생활하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문제들, 쓰레기봉투는 어떤 걸 사야 하는지, 저녁식사에는 누굴 초대해야 하는지, 여름휴가는 어디서 보낼지, 대출금은 언제 갚아야 하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대니는 패티를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곳곳에서 발견한 패티의 흔적과 기억이 수시로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주었기 때문이다. 대니가 패티를 생각하는 글들은 단순하지만, 그 아픔이 날것 그대로 전해져서 가슴이 저렸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패티는 곧잘 코코넛 오일만 바르고 일광욕을 했다. 그렇지만 이제 피부암에 걸릴 일은 절대 없겠구나. 또 패티는 장모님처럼 유방암에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1980년대에 나와 같이 파티에 가면 담배도 제법 피웠지만 이제 폐암에 걸릴 일도 없겠지. 그리고 패티는 겁 없이 무단 횡단을 하는데 선수였지만 이제 차에 치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패티가 탄 비행기가 폭파되는 일도, 잠자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거나 화재가 나서 죽는 일도 없을 것이다.
패티는 더 이상 치실을 쓸 일도, 비타민을 먹을 필요도 없고 햄버거를 줄일 필요도 없고 에어로빅을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여자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72쪽)


평소에 대니가 패티를 얼마나 꼼꼼하게 챙겼는지, 그리고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글들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순한 사랑 같았다. 그들은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한마음, 한 몸이었던 것이다. 패티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후의, 대니의 상실감이 몹시 아프게 느껴졌다.


미래가 텅 빈 백지처럼 되면서 나는 많이 바뀌었다. 지난 24년간 아내와 같이 세웠던 수많은 계획과 결정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대신 나는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지 새로운 그림을 구상해야 했다. 패티와 나는 나이가 더 들면 도시를 떠나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살자고 했었다. 거기서 나란히 수채물감으로 그림도 그리고, 잭과 잭의 아이들도 만나러 가고, 새로운 삶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우리의 창조성을 오롯이 발산하면서 살자고 했었다. 이제 그 모든 그림들이 갑자기 텅 비어 버렸다. 암울해지거나 황량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텅 비어 버렸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원할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길이 굽이지고 새로운 장애물, 새로운 기회, 못 보던 도랑과 계곡들이 나타난다. 나는 그것들이 나타나는 대로, 닥치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씩씩하게 고개를 들고 계속 길을 간다.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계속 앞으로 가고 있다.(79쪽)




미래에 대한 소박한 꿈은 그렇게 한순간에 끝나버렸다. 삶은 늘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현재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살고 있다. 삶의 마디가 어느 순간에 뚝 끊어져 버릴지도 모른 채.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일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가족들과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모든 일상이 사실은 기적이다. 우리는 그런 기적 가운데 살고 있다. 그러면서 늘 여기가 아닌, 다리 건너편의 무지개를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대부분의 인간들은 어리석은 삶을 살다 간다. 그것이 인간들의 슬픈 운명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주 가끔은 어떤 반짝이는 깨달음을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서, 길 위에서, 혹은 책 속에서.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심장은 통증에 시달렸다. 눈이 아니라 심장이 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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