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개를 만나다

- 빛이 머문 순간들

by 푸른 오리


아침에 산책하다가 길에서 흰 개를 만났다.

개는 짖지도 않고 멈춰 서더니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뒤에서 차가 달려왔다.

개는 서두르지 않고 잠시 옆으로 비켜섰다.

차가 지나가고 나서도, 개는 가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나도 그 흰 개를 바라보았다.

개는 짖지 않았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어둑한 아침이었다.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던 나는 손을 흔들며, “잘 가!” 하고 돌아섰다.


좀 걷다가 다시 돌아보니, 개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서있었다.

그 자세는 슬픔의 자세 같았다.

슬픔에도 자세가 있다면 말이다.


흰 개의 시선을 뒤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흰 개가 여전히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쓸쓸해졌고, 이유도 없이 슬펐다.

흐리고 쌀쌀한 아침이었다.




KakaoTalk_20200425_173331342.jpg <펜과 수채 물감으로 그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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