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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pr 28. 2020

감정의 노예

-  마음의 고샅길


 며칠 동안 괜히 심란하고 우울했다. 이 우울은 제법 주기적이기까지 한데, 갑자기 몰아치며 나를 덮칠 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대비책이 없다. 그냥 목줄에 매인 개처럼 무기력하게 끌려 다닌다. 

한편, 내면에는 이런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여름철 갑자기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그냥 맞고 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내게 남겨진 삶의 나날들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예전의 어른들과 비교해보면 이미 꽤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사춘기 소녀처럼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둘려 시간을 낭비할 때가 있다. 어쩌면 내 삶의 시간에 이런 소모적인 감정의 시간도 부록처럼 매달려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시달릴 때는, 책을 읽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꽃을 바라보는 일도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마치 정신이 어딘 가에 꼼짝없이 결박당한 것 같은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저절로 그런 결박이 슬그머니 풀려버린다. 이유 없이 묶였던 결박이 이유 없이 풀리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내 감정이긴 하지만, 여전히 분석이 불가능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감정의 노예 상태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흔이면 ‘불혹’이라고 했던가. 이미 그 마흔을 넘은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나는 인생 초보처럼 헤매고 있다. 이런 미숙함은 내 삶의 종결 지점에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내게는 매일매일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未知의 새 날 같을 때가 많다. 그러니 늘 초보일 수밖에. 


 다만, 바라건대 더 이상 감정의 노예가 아닌, 감정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을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삼고 싶다. 어쩌면 그건 너무 어려운 것이어서, 이생에서 이루기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목표가 있으면, 좀 더 정진하는 자세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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