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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r 18. 2021

내 멋대로 시 읽어보기 3

-마음의 고샅길

             손을 부비며 


                               세르게이 예세닌



비뚤어진 미소는 집어치워,

나는 지금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어.


너는 아니다

너는 너 자신이 알고 있을 거야

잘 알고 있고말고.


내가 쳐다보는 것은 네가 아니다

너에게 온 것도 아니다


네 옆을 그냥 지나쳐도

내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아.

다만


창문을 들여다보고 싶어 졌을 뿐이야.






왜 비뚤어진 미소인가? 너무 슬퍼서이다. 연인의 마음이 변한 것을 느껴서일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왜 굳이 하는 걸까. 진짜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다. 

그는 연인이 더 이상 자기에게 미련을 갖지 말라고, 제발 자기를 잊어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이처럼 독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독함이 상대방에게 진짜 ‘독’이 되어 죽음 같은 절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사랑하는 건 ‘너는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의 마음은, 역설적으로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아니면 의도적으로 연인을 만난 화자는 연인을 외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생겨서, 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지금 널 쳐다보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자는 그녀를 보러 와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네 곁을 그냥 지나쳐도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사실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미칠 듯한 심정이면서, 독설을 내뱉는 것이다. 그리고 네 곁을 지나치는 것은, 창문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진짜 마음은 그녀를 너무나 보고 싶어 곁눈질이라도 하고 싶으면서. 

그는 그녀 곁을 지나쳐 창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 창문은 실제의 창문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의 창문일 수도 있다. 그는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에 간절히 닿고 싶은 것이다. 


 독설로 가득 찬 말들이지만 왠지 눈물 나는 시다. 그 독설이 화자의 가슴속에서 지독한 고통으로 흘러내리는 피눈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 보면 우리도 자신의 진짜 마음과는 달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엉뚱한 말을 할 때가 있다. 사실은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인간의 심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조용필의 노래 중에 ‘미워, 미워, 미워’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말은 반어적인 표현으로 정말 너무 좋아한다는 뜻일 게다. 

 온전히 자기 마음을 다 드러내지 못할 어떤 상황과 말 못 할 이유 때문에, 화자는 가시 돋친 말로 상대방을 마구 찌르지만, 사실은 그의 마음속에 흘러내리는 피눈물을 감추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시는 묘하다. 어떤 시는 내가 겪은 일을 어렴풋이 상기시킨다. 비록 똑같은 일은 아니지만, 기억의 한 모퉁이에서 오랫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어떤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느낌을 공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감은 소통의 다른 말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요즘처럼 이웃도, 친구도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사람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 우리는 주변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친구를 만나기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럴 때 시는 우리 가슴 깊숙이 스며들어와 언 가슴을 녹여주고 등을 토닥여주며,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격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시는 내게 다정한 소울 메이트(soul mate)로 다가온다.




https://youtu.be/9cGeeuLGl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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