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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y 13. 2021

사람에 대한 예의/권석천/어크로스

-외로울 땐 독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소중하다. 자신의 소중함을 제대로 안다면 다른 사람들의 소중함도 제대로 알 것이고, 또 그들에게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차릴 것이다.

 한 사람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최소한 상식적인 선에서 대하지 아닐까? 요즘 너무 막돼먹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계속 무엇이든 글을 쓰는 삶을 살게 된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거미줄처럼 쳐진 관계의 그물에 주목하고 싶다. 그 관계의 그물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주시하고자 한다. 남의 잘못은 중요하고 나의 허물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나를, 다른 이의 막말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웃자고 하는 소리”로 남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나를, 무시(無時)로 반칙하며 살면서도 세상엔 원칙의 청진기를 대는 나를(...)
 ‘모르고 짓는 죄’가 ‘알고 짓는 죄’보다 나쁘다. 알고 짓는 죄는 반성할 수나 있다. 모르고 짓는 죄는 반성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우리는 숨을 쉬듯 누군가를 손가락질하지만 당신과 나 역시 한 발만 잘못 디뎠어도 다른 삶을 살게 됐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우리가 살았을 삶을 대신 살고 있는 자들을 비웃으며 살고 있다.
 ‘나도 별수 없다’는 깨달음. 인간을 추락시키는 절망도,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도 그 부근에 있다. 바라건대, 스스로를 믿지 않기를.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믿는 순간 편견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지고, 믿는 순간 맞은편 차량과 추돌한다. 한 고비 돌 때마다 가능한 길게 클랙슨을 울려야 한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어찌할 수 없는 사고도 있다. 맞은편에서 돌진해오는 그것이 애써 눈여겨보지 않았던 나 자신의 어떤 이면이라면. 그러니, 다만 기도할 뿐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16~17쪽)

 

 글을 쓰는 삶을 사는 사람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으니, 보통의 삶을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힘든 일인 듯하다.

저자는 프롤로그의 끝맺음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했지만, 끊임없는 시험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제대로 직시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자기 기준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간혹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일순 기준이 무너진다 해도 괴로워하며 다시 그 기준을 일으켜 세운다. 자기 기준이 없는 사람은 늘 정리되지 않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자기가 한 행동에 기준을 맞춰갈 수밖에 없다. (202쪽)


 자기 기준이라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가치관은 자기 철학이기도 한 것이고. 자기 철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바쁘게 살다 보면 하루하루를 생각 없이 살게 될 때가 많다. 자기 성찰의 시간을 일부러 가지지 않는다면 그냥 막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기를 안다는 건 또한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 나아가 자신이 속한 집단까지 객관화해서 볼 수 있어야 진짜 전문가다. (217쪽)


 자신의 삶을 함부로 살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기는 불가능하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먼저 자신에 대한 예의를 차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삶도 함부로 여기게 되지 않을까.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반듯하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즉 예의를 제대로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접어든 이후, 빈부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거의 모든 가치 있는 것의 판단 기준이 ‘돈’이 되어버린 요즘, 사람의 몸값이 공공연하게 매겨지는 것 같다. 

 산업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재해사고의 피해자는 대부분이 하청근로자들이다. 그들의 죽음은 이제 너무 흔한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런 현상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매스컴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을 의심해보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을 의심해보게 하는 것, 낯선 눈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문학이 지닌 힘이라고 믿습니다. 이 글을 읽는 작가, 작가 지망생, 그리고 한국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께 부탁드립니다. 때로는 우릴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눈을 돌려 우릴 소름 끼치게 하는 것들을 바라보기를. 곤히 잠든 이들을 흔들어 깨우는 작품을 쓰고 읽어주기를. 그리하여, 강철로 된 방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작은 희망의 느낌들을 떠올려주기를. (245쪽)


 그동안 무디어져 있던 사람들의 감각을 날카롭게 흔들어 깨우는 듯한 말이다. 정상도 아니고, 당연한 일도 아닌 일에,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아무런 감정을 못 느끼고 그냥 습관적으로 사는 것 같다.

 저자의 말은, 사람들의 무감각에 균열을 내고, 다시 한번 냉철하게 주변 상황을 바라보게 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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