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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Jun 28. 2021

전락/알베르 까뮈/창비

-외로울 땐 독서


까뮈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부조리'와 '반항'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반항은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때 파리에서 잘 나가던 변호사였던 끌라망스는 밤길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쎈강 다리에서 젊은 여자가 투신자살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지만 무심코 지나가버린다.

그날 이후 그의 내부에서 그를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를 환청처럼 듣게 되며 몹시 괴로워한다. 그는 출세와 오만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가식의 세계에서 전락한다. 그가 굴러 떨어진 곳은 어둡고, 축축한 원죄의식의 세계였다.


그는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암스테르담으로 은신한다. 그는 그곳을 '돌덩이와 안개와 썩은 물이 펼쳐져 있는 광야'로 표현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러 그곳에 갔고, 어두운 절망의 나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죄 판사'의 삶을 살기로 한다. 양립할 수 없는 이상한 조합인, 참회자겸 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 먼저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것이다.


끌라망스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속죄 판사로 나름의 방식으로 반항하며, 진정한 자유를 찾아 죽음마저도 의연히 받아들인다.  

자기 식의 반항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로 읽힌다. 속물의 삶에서 각성과 깨달음의 삶으로 나아간 것을 '전락'이라고 표현한 것은, 굉장히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의 부조리한 삶의 방식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에서 그런 듯하다.






『전락』의 전개 방식은 모노로그 형식의 고백체이다. 끌레망스는 마치 자기 앞에 청자가 있는 것처럼 대화를 이어간다. 청자의 직업을 변호사로 설정하고 있긴 하지만, 청자는 어떤 대답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림자 청자는 허구의 대상에 가깝다. 그래서 그 청자는 곧바로 우리 자신, 즉 독자가 될 수 있다.

독자는 끌레망스와 독대해서 은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해서, 그의 독백이자 고백을 진지하게 듣게 되는, 아주 독특한 구조이다. 이런 과정에서 독자는 마치 한 인간의 고해성사를 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작가의 천재성을 느끼게 하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생각할 거리, 또한 만만치 않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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