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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Jul 06. 2021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마종기 산문집/(주)넥서스

  -외로울 땐 독서


오랜만에 산문집을 읽었다.

마종기 시인의 산문집이어서 더 호기심을 가지고 펼쳤다.

그의 나이가 벌써 여든이 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여전히 힘차고 싱싱하게 느껴졌다.

산문 속에는 작가의 진솔한 삶이 담겨 있었다.

미국에서 의사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낸, 대단한 작가다.


그의 산문에서 여전히 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인상적이었던 글을 몇 개만 옮겨 본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인간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스스로 일깨우고, 자기 감성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자유의 귀함과 필연성을 위해서 나는 자주 내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정리해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겠지요.(18쪽)


나에게 있어서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의 나눔이고 생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한세상 시를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시의 목표가 사랑이 아니라면 그런 시는 내게 필요 없는 것이겠지요. 왜냐면 세상은 보기보다 잔인하고 외롭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시는 삭막한 세상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6쪽)



아름다운 시란 아름다운 단어를 집합시켜 놓거나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물에 대해 쓴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을 찾는, 아름다움으로 가는, 아름다움으로 가고 싶은 희망 때문에 고통받는, 평범한 단어들이 걸어가는 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닿을 수는 없어도 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으로 아직 살아 있고 숨 쉬는, 싱싱하면서도 두드러지지 않은, 괴상하지 않고 어디에서 따오지도 않은, 초벌의 오리지널 한 상상이나 의견이나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 아름다운 시라고, 오래 살아갈 좋은 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330쪽)



문학은 내게는 신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시는 사람들의 정신으로부터 불꽃이 솟아 나오도록 힘들여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믿고 있지요.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시 쓰기는 모든 지혜, 모든 철학보다 더 드높은 계시라고 믿으면서 밤을 지새우는 고통을 감수합니다. 좋은 작품과 그저 그런 작품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고 간발의 차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좋은 작품은 오래 살고 그저 그런 것은 열흘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독자의 가슴을 헤치고 들어가 한주먹 먹먹하게 날리는 감동은 힘과 정성의 매운 맛이 들어 있어야지요. (333쪽)



마지막으로 산문집에서 다시 만난 그의 시 <바람의 말>을 옮기며 글을 맺는다.

오늘처럼 미친 듯이 바람이 부는 날에 읽어보니 더욱 공감이 되는 시다.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꽃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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