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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May 14. 2020

기다림에 관하여

  -마음의 고샅길



 모든 게 느리게 움직이던 시절, 그 시절에는 ‘기다림’이라는 따스함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기다림은 하염없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런 시간 속에는 지순한 감정들이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여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속도의 시대가 도래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고, 속도가 미덕이 되었다. 시대의 거센 물결은 거칠게 흘러가며 많은 것을 휩쓸어갔다. 그 과정에서 물질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따듯한 감정들도 서서히 말라가거나 거세되기 시작했다. 


 편지를 보내 놓고 답장 오기를 간절히 바라던 아득한 시절이 있었다. 그 시간들은 종종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감정으로 채워지곤 했다. 

 지금은 LTE의 속도로 전해지는 문자를 주고받는다. 사람들의 감정도 문자 속도만큼이나 빨라지고 있고, 기다림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빠른 것은 가볍기 마련이고, 가벼운 것은 휘발되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감정도 비슷하게 될까 봐 두렵다.


 기다림은 인내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삶을 풍성하게 해주기도 한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가슴이 말라서 비틀어진 나뭇등걸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가 많은 것 같았다. 이런 메마른 나뭇등걸에서도 파릇한 여린 새싹 같은 감정이 새로 돋아날 수 있을까. 


 기다림은 어느새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듯하다. 기다림은 더 이상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영영 사라져 버린 듯하다.



<어느새 버찌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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