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우리는 시간에 잠겨 있으며, 이따금씩 몇몇 순간을 향유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시간에 투사하고 시간을 재발명하며 시간과 함께 논다. 훌쩍 흘러가는 시간을 놓쳐 버리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시간은 우리 상상력의 원료다. 반면에 나이는 지나간 나날을 상세히 설명하는 방식이자 세월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만 이해하는 관점이다. 이렇게 나이를 통해 우리가 보낸 세월의 합계가 제시되면 우리는 망연자실한 감정에 빠진다. 나이는 우리가 확실히 아는(적어도 서구에서는) 출생일과 우리가 되도록 미루기를 원하는(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망일 사이에 우리 각자를 밀어 넣는다. 시간은 자유를 뜻하지만 나이는 제약을 뜻한다. 분명한 사실은 고양이는 이러한 제약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12~13쪽)
이미지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가 주목하는 가치를 얻으려면 장수長壽기록(말 그대로 덧없는 영화일 뿐인)을 깨거나 고령에도 불구하고 업적(운동 경기나 연기, 문학, 정치 영역에서)을 내는 것-결국 보통의 할아버지·할머니와 구별되는 소수의 예외가 되는 것- 이 필수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시대에 노인이 위신을 얻으려면 나이를 먹지 않아야 한다. 노화를 부정하는 기호 아래 곧 노년의 위신이 세워지는 것이다. (17쪽)
나이가 들수록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나이는 예민한 동물이며, 자신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그 침묵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화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많다. 따라서 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로부터 눈을 떼지 않는 게 더 현명하다. 요컨대 나이가 들수록 자존심을 거두고 노화를 환영하겠다고 선언하는 것, 인자하게 꾸러미에서 선물을 꺼내는 산타클로스처럼 겸손하고 열정적으로 선물 리스트를 챙기는 것이 최선이다. 특별한 순서 없이 나열하면 본질적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경험에서 나온 지혜, 성적 충동의 고뇌를 대체한 평온함, 공부의 기쁨, 일상 속 작은 즐거움이라는 선물을 얻게 됨을 뜻한다. 간단히 말해 고대 그리스인들이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를 ‘친절한 자들’이라는 뜻의 ‘에우메니데스’라 불렀듯, 순화된 방식으로 노화를 마주하면 나이가 들면서 얻는다고들 하는 이득을 떠올리게 되고, 그럼으로써 노화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19~20쪽)
루소는 글쓰기가 나이를 시간으로 대체하게끔 해주는 도구라고 썼다(...) 시간이 흘러도 계속해서 읽히는 작품은 질문거리를 제공하며 제 가치를 높일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은 더 이상 저자에게 귀속되지 않고 저자 역시 작품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저자가 더는 그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는 저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겸손하면서도 가장 야심 찬 꿈에, 그리고 저자가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하면서도 가장 무모한 환상에 들어맞는다. 그건 바로 나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도록 두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건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덜 외롭게 죽는 길이다. (66~67쪽)
‘나이’라는 단어의 단수형과 복수형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차이와 함께 밀접한 보완 관계가 존재한다. 미래를 펼쳐 보이는 기대나 과거를 재창조하는 기억을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진행되는 노화와는 무관한 인생의 시기들을 떠올릴 수 있다. 어느 경우든 필요한 건 시간과 함께 노는 상상력의 발휘일 것이다. (83쪽)
텍스트와의 관계는 생동적이기에 우리는 읽고 또 읽어야만 한다. 나이가 들지 않는 책이란 독자로 하여금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만드는 책이다. 그런 책은 독자에게 자신이 영원히 살아 있다고, 그렇기에 자신과 독자를 연결한 운명이 “평생토록 영원히” 이어진다고 속삭인다. (102쪽)
우정과 사랑, 비탄 등의 감정은 인생이 타자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 주는 기호다. 나이 듦은 우리가 여러 만남과 관계를 탐색하도록 해주며, 가끔은 그런 만남과 관계로 인해 고통을 겪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126쪽)
나이가 든다는 건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도하게 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지만 이는 알고 있으면 좋을 특권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노년은 윗세대가 느꼈던 감정을 궁금해하면서 상상해 오기만 했던 일들을 경험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들과 합류해 세대 간의 거리를 좁힐 기회가 된다. 노년이 되면 결국 무언가를 알게 되는데, 그건 바로 내가 어렸을 적에 노인들이 말해 준 것처럼 나이가 드는 게 크게 유난 떨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멀찍이서 바라본 타자와 같다는 점에서 노년은 이국적 정취 exotisme와 같다. 사실 노년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노년에 이를 때까지 쌓여 간 시간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순서대로 더한 축적물이 아니다. 시간은 쓰여 있던 글자 위에 다시 글자를 써넣은 양피지와 같다. 거기 기록된 모든 일이 다시 떠오르지는 않지만, 때로는 가장 먼저 기록된 일이 가장 쉽게 표면에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알츠하이머병은 망각이라는 자연선택 과정에 가속이 붙은 현상일 따름인데, 말기까지 남는 가장 끈질긴 이미지-사실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는 아니더라도- 는 대부분 어린 시절의 이미지다. 이런 관찰에는 잔인한 면이 있지만, 우리가 이를 반기든 개탄하든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모두 젊은 채로 죽는다는 사실 말이다. (127~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