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화/ 엘리자의 내일(2017년)

- 나 홀로 시네마

by 푸른 오리



이 영화는 제52회 시카고 국제영화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 그리고 제24회 함부르크 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작품이다. 크리스티안 문쥬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신의 소녀들>(2012)로 각본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루마니아 영화는 처음이다. 낯선 이국의 정치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영화의 여러 가지 매력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





의사 로메오는 젊은 시절 동유럽 최악의 지도자인 차우세스쿠 치하에서 루마니아 개혁을 위해 정부와 싸웠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이 종결한 후에도, 루마니아는 여전히 불의와 부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로메오에게는 외동딸 엘리자가 있다. 로메오는 딸이 희망 없는 루마니아를 떠나 선진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 꿈은 딸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의 젊은 시절의 꿈이기도 했다. 엘리자는 모범생으로 영국 유명 대학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로메오의 집 창문에 누군가가 돌을 던졌다. 창문은 금이 갔고, 로메오가 급하게 뛰쳐나가지만 범인은 뒷모습만을 보이고 사라져 버렸다. 이 장면은 로메오의 삶에 불길한 암시를 던지는 것이었다.


로메오는 아침에 엘리자를 등교시켜준다. 운전 중에 로메오의 휴대폰이 계속 울려대자, 엘리자는 아빠가 바쁘시면 학교 근처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로메오는 딸을 내려주고 급하게 어떤 집으로 들어간다. 내연녀의 집이었다. 그런데 로메오가 내연녀의 집에 있는 동안 엘리자는 괴한에게 강간 미수 폭행을 당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졸업시험을 하루 앞둔 날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졸업시험 성적을 잘 받아야만 영국 유학을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로메오의 걱정은 오로지 시험 걱정뿐이었다. 그는 충격에 빠진 딸에게 꼭 시험만은 보라고 애원한다. 그에게는 딸의 현재 상처보다 딸의 미래가 더 절박했던 것이다. 딸의 미래가 곧 그의 미래이기도 했기 때문일까?


로메오는 딸이 시험을 잘 치르게 하기 위해서 그의 모든 인맥을 이용해서 불의를 저지른다. 그의 아내와 딸은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는 오로지 딸의 미래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부정부패로 물든 루마니아에서 보기 드물게 청렴한 의사로서 명성을 가졌던 그가, 딸을 위해서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한국의 부모를 그대로 보는 듯했다. 안타까운 부성이지만, 그 부성은 과연 옳은 것인가?


딸은 아버지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계획한다. 딸은 오토바이 강사와 사귀고 있었고, 로메오는 딸의 남자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이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착잡해 보이는 로메오의 표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 갈등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는 기성세대를 통해 루마니아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지만, 딸 엘리자를 통해 밝은 내일을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부정부패와 불의, 부모 자식 간의 세대 갈등, 양심과 정의의 문제 등은 루마니아만의 것이 아닌 듯하다. 너무나 익숙한 장면들이 마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것 같아 불편하면서도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자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미래는 열려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희망을 가져본다.

*이 영화의 원제는 <대학 수학능력시험>이고, 영어권 제목은 <졸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엘리자의 내일>이다. 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


KakaoTalk_20200526_104824984.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댄서 Dancer(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