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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Sep 08. 2024

꽃과 시간

- 마음의 고샅길




 지난 주말에 딸이 생일 선물로 꽃바구니를 가져왔다.

이 더위에 웬 꽃이냐고, 딸에게 잔소리부터 했다. 내가 꽃을 좋아한다고 일부러 마음을 내서 가지고 온 선물에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꽃을 보니 좋긴 했지만, 더위 때문에 금방 시들 것만 같아서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딸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꽃가게에서는 꽃들이 시원한 냉장고에 있었겠지만, 우리 집은 그만큼 시원하지는 않으니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집에 온 아이들을 어쩌겠는가. 잘 보살펴주는 수밖에 없다.

햇살이 강하지 않을 때는 꽃바구니를 앞 베란다에 내어놓고, 햇살이 강해지면 그늘진 뒷 베란다로 부지런히 자리를 옮겨주었다. 수시로 살펴보고 마르지 않게 물을 부어주고 스프레이 해주었다. 꽃들을 싱싱하게 유지하려면 내가 꽃집사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꽃바구니를 받았을 때는 일주일만 가도 다행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9월 들어서면서 아침, 저녁이 제법 시원해졌다. 그래서인지 꽃들이 대체로 싱싱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꽃들을 살펴보았더니 장미꽃들의 가장자리가 살짝 시들어있었다. 어제만 해도 아주 싱싱했던 꽃들이었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 몇 송이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바구니에서 빼내었다. 하루 사이에 꽃들이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사람이 나이가 드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늘 그대로인 줄 알았던 얼굴이 갑자기 확 늙어버린 것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시간은 사람에게나 꽃에게나 다 공평하게 흘러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영원하다고 믿으며 순간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다. 지금이 아니면 진짜 삶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미망의 삶을 살기 쉽다.

 꽃들이나 사람이나 다 한시적으로 시간을 쓰다가 가는 존재들이다. 꽃들을 바라보며 문득 삶의 유한성을 느꼈다. 깨어있을 때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들이 아직은 아름답다. 꽃들이 시들기 전에 자주 보고 만져주고 향기도 맡아야겠다. 내가 꽃과 보낸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가슴속에서 아련한 향기를 가진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사랑했던 순간은 기억 속에 오래 각인되니까 말이다.

 저 꽃들이 꽃바구니의 모양을 이루고 있듯이,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순간 역시, 내 삶의 한 모양을 만들고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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