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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Sep 18. 2024

기억 안아주기/최연호 지음/글항아리

 -외로울 땐 독서



-소확혐小確嫌,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


 저자는 현재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에서 소아소화기영양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로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소확혐小確嫌’이라는 표현을 했다. 소확행小確幸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어낸 단어라고 한다. 소확혐은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 혹은 작지만 확실히 싫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저자는 진료과정에서 아이들의 소확혐이 병이나 통증을 일으키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또 그렇게 된 데에는 부모들이 원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었고 큰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책에서는 아이들을 진료한 사례를 분석했지만, 아이들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로 읽혔다. 왜냐하면 여러 형태의 심리기전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확혐에 대해서 읽다 보니 작은 나쁜 기억들이 자칫하면 힘든 트라우마 trauma로까지 진행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의 문제가 어른이 된 이후에도 계속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소확혐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특히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 뇌가 하나의 경험을 비디오로 찍듯이 통째로 보관할 수 있다면 기억이 왜곡되지 않겠지만 인간의 기억은 뇌 곳곳에 보관된 자료를 다시 불러 모아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억은 늘 정확하기 어렵다. 특히 나쁜 기억은 사건 이후의 정보에 따라 자신의 관점에서 편향적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9쪽)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억이 무척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나치게 기억을 신뢰할 때가 많다. 우리는 기억에 의존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후각과 연관된 기억을 푸르스트 현상이라고 부른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시각이나 청각을 통한 기억은 단기 기억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후각과 연관된 기억은 장기 기억으로 많이 남는다고 한다. 우리는 이를 ‘푸르스트 현상’이라고 부른다.(112쪽)


 기억에 대한 긴 글을 읽었는데, 무척 공감이 가서 아래에 옮겨본다.


 인간이 사는 곳은 ‘지금’이다. 어제도 살았고 내일도 살겠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인간의 뇌가 세상에 대해 판단해야 하는 기준점이 된다. 대니얼 길버트는 현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인간의 경향성을 ‘현재주의 presentism’라고 칭했다. 인간은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그려볼 때 ‘채워넣기 filling-in’라는 실수를 하는데 그 재료는 항상 ‘현재’라는 것이다. 현재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과거 회상과 미래 예측에 투사되기 때문에 정확한 과거의 기억을 해낼 수 없으며 가능성 높은 미래를 상상해낼 수 없게 된다. 대니얼 길버트는 과거 기억의 빈 공간을 현재의 경험으로 채우는 경향성은 특히 우리의 과거 감정을 기억할 때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또한 우리의 상상은 현재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데, 이는 상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동시에 지각을 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우리가 미래를 상상해본다는 것은 사실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다. 소확혐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점은, 나쁜 기억은 과거에 경험했던 것인데 사실상 그 기억의 일부에는 현재의 감정이 끼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확혐이 두려워 다시 경험할 것을 꺼리는 우리는 잠재적인 손실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도 현재의 나쁜 감정이 포함된 과거의 나쁜 기억에다 현재의 나쁜 감정이 또 포함된 미래의 나쁜 상상을 하게 되므로 나쁜 감정은 더욱 강화되어 편집증적인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160쪽)



 그리고 편향에 대한 내용도 많이 나왔다.

편향에는 행동 편향부작위 편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 무언가를 해보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 이 심리적 기전을 ‘행동 편향action bias’이라고 부른다. (24쪽)


인간은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손해보다는 어떤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손해를 덜 나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부작위 편향 omission bias이라고 한다.(102쪽)


고정관념과 편견의 차이는 무엇일까?

저자의 자세한 설명이 도움이 되었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의미한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싫어하는 소수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유사하다고 믿는다. 이를 외집단 동질성 편향 outgroup homogeneity bias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범주화하는 사고방식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편견이 태도에 속하는 것이라면 고정관념은 인지에 속한다. 고정관념은 타인에 대해서 나쁜 쪽으로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키고 편견을 갖게 한다는 특징도 있다. 고정관념에서 시작되는 가용성 휴리스틱이 인간 심리의 모든 면에서 작동하는 것이라면 편견은 더 부정적인 정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34쪽)


- 외집단 동질성 편향 outgroup homogeneity bias이라는 것도 있었다. 위에 언급한 행동 편향과 부작위 편향과는 다른 형태의 편향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확증 편향에 대해서.


편견의 강화에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확증 편향이 작용한다. 확증 편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으로, 자신에게 도움되는 정보만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을 때는 외면하는 것을 말한다. 베이컨의 탄식처럼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보는 신호와 잡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잡음을 어떻게 걸러내는가가 인간의 정보 처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데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앞세울 때 인지 편향이 일어나다. 하지만 워런 버핏의 말처럼 “사람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확증 편향을 가진 사람은 올바른 신호마저 잡음으로 정보 처리를 한다. 그래서 잘못된 편견은 계속 강화되어 혐오와 범죄로 이어진다. (138~139쪽)


-편향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결국 우리들의 인지가 편향되어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소확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책 제목처럼 기억을 잘 안아주면 되지 않을까.

 저자의 글에서 어렴풋하게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쁜 기억의 두려움을 가진 나 자신이 느끼는 것이 말단신체의 감각이건 통증이건 간에 실체를 자각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를 아프게 만드는 것이 나 자신이거나 혹은 어떤 대상이어도 나와 그 대상을 믿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두려운 대상이 두렵지 않음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기억을 지우려는 노력도 회피하려고 억지로 해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당당하게 부딪혀 지우는 것이 올바른 자각이다. (318쪽)


인간은 통찰의 동물이다. 인간은 경험 혹은 상상으로부터 스스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소확혐에서 트라우마까지 나 자신을 괴롭히는 나쁜 기억에 대처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치유의 핵심은 자각이다.(319쪽)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전문용어들이 너무 많아서 좀 힘들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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