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안드레아 칼라일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원제는 There Was an Old Woman이다. ‘나이 든 한 여자가 있었다’.이다.
내 생각엔 원제가 글 내용과 더 적합한 것 같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는다. 그렇지만 이 책 한국어 제목처럼 늙기를 기다리기까지 할까 싶다.
작가는 늙기를 기다린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녀는 프롤로그에서 나이 듦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한때 가졌지만 다신 가질 수 없는 능력과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리움은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을 부정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내가 인생의 이 단계에 와 있다는 사실에 나보다 더 놀랄 사람은 없을 거다. 수백만 명이 그러하듯 나 역시 이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 당신도 머지않아 이곳에 도달할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우리가 바라보는 곳에 이름을 붙이고 여기서 보이는 걸 말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11쪽)
현대사회에서는 젊음에 가장 가치를 두고 늙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작가인 안드레아 칼라일은 노화를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조곤조곤 말한다.
가끔 카메라를 들고 혼자 산책로를 걸으며 강에서 어떤 풍경을 포착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나중에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거나 페이스북에 친구들을 위한 게시물을 올리기도 한다. 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만난 적은 없지만 존경하는 작가나 예술가, 사진작가와 같은 오랜 친구들과 소통하는 게 즐겁다.(19쪽)
-나이 듦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늘 하던 일상도 그대로 이어간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땐 할 수 있는 만큼 환경에 적응해서 살면 된다. 꼭 젊은이처럼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이 들면서 시간이 많아지면 젊을 때 포기했던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 나이 듦에도 이점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작가는 유튜브를 통해 스케치를 시작했다.
스케치하는 행위는 팬데믹을 치료하는 찜질약이 되었다. 지금 내게 닥친 무서운 순간의 독성을 제거하고 그 대신 내가 바라보기로 선택한 걸 온전히 흡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익숙한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법을 배우느라 집중하는 동안 두려움이 가라앉았다.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면 평화가 찾아왔다. 수십 년 동안 ‘난 할 수 없어’, ‘난 안 할 거야’, ‘재능이 없어’라는 생각으로 꽉 막혀 있던 뇌의 통로가 열린 기분이었다. 의도한 결과나 그에 근접한 결과를 얻었을 때는 만족감이 묻어나는 숨을 내쉬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감각적인 즐거움과 놀라움, 그리고 기쁨을 느꼈다(...) 일흔다섯의 손이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며 대담하게 빈 공간을 채우는 느낌이 좋았고, 또 일흔다섯의 뇌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처럼 침착하고 아무렇지 않게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간다는 사실이 좋았다(...)
글과 다르게 그림을 그릴 땐 움직일 수 있었다. 연필과 스케치북을 들고 밖을 돌아다니면 불편했던 허리가 내게 고마워했다. 나무 앞에 서서 나무껍질과 이끼를 그리곤 했다. (54~55쪽)
-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취미생활을 할 수 있고, 삶은 여전히 확장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야 전에 명확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이가 든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여권을 바꾸고 다른 나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평생을 살아오며 품어온 자아 그대로를 지닌 채 나이가 든다. 해가 뜨는 게 놀랍지 않듯 나이 듦은 더 이상 놀라워할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된다면 그건 마침내 드러나는 우리 안의 노인이다.(123쪽)
-그렇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자신의 자아는 그대로 있을 뿐이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우리 안의 노인이 어떤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 역시 본래의 그 자신일 뿐이다.
노년은 잘 무장해야 진입할 수 있는 낯선 세계가 아니라 친숙하던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시기이다. 노화는 개인적인 것이어서 각자 자신이 잃고 있는 것과 이미 잃은 것, 즉 여기서 무언가를 빼고 저기서 무언가를 더하는 구체적인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허영심을 동원하고 심지어 산업적 동반자와 함께한다고 해도 노화에서 벗어날 순 없다. 인생 내내 우리에게 닥쳐온 신체적 변화를 멈출 수 없었던 것처럼.(144쪽)
-노년이 낯선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시기라고 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신체적인 변화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생명 있는 모든 것에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난 곧 죽게 될까? 죽을 때 이 모든 생명체와 내 인생의 다른 존재들, 어쩌면 몇몇 인간까지도 그 황혼 속에서 날 맞이해줄까? 아니면 이 모든 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예전 같으면 이런 생각을 좇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제 나는 나이 들었다. 요즘은 가끔 예전과 다르다. 하루하루가 가져다주는 모든 걸 헤아릴 필요가 없다. 그저 다가오는 대로 살면 된다. 나이 든 여자가 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255쪽)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죽음이 언제 올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나이가 들었으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다가오는 대로 살면 된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니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나이 든 여자가 된다는 것을 ‘놀라운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