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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나 Aug 09. 2020

강낭콩을 심었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


  초등학교 4학년 과학 교과서에는 강낭콩을 심어 키우는 활동이 있다. 아이들은 꼬물거리는 작은 손가락으로 부드러운 흙 속에 폭 하고 구멍을 낸다. 그 다음 물에 한나절 불린 강낭콩 두세 알을 심는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강낭콩을 관찰하는 것이다.


  즐거움이 만연한 세상이다. 그래서 처음 아이들과 강낭콩을 심었을 때만 해도 고작 강낭콩에 관심을 가져줄까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말 그대로   관. 심. 폭. 발.



  아침 시간, 쉬는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 틈이 날 때마다 학생들은 창문 앞에 다닥다닥 붙어 서서 자신의 화분과 친구들의 화분을 요리조리 살폈다.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떡잎이 불쑥하고 얼굴을 내미는 것도 아닌데 바라보고 애태우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기다리다 못한 아이들은 혹시 내 강낭콩이 죽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잘 살아있는지 확인한다는 이유로 흙을 슬쩍 파 보기도 했다. 어떤 학생들은 물을 많이 주면 더 빨리 자랄까 싶은지 아침에 준 물이 아직도 흙을 축축이 적시고 있는데도 점심도 먹기 전에 또 한 번 물을 뿌려댔다.


  일주일 , 그렇게 아이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강낭콩들이 드디어 싹을 틔웠다.


  화분들마다 성장의 속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어떤 화분은 강낭콩이 두쪽으로 갈라지면서 떡잎이 흙을 비집고 나왔고, 몇몇 강낭콩들은 여전히 흙 속에 숨어 나올 줄을 몰랐다. 신기한 것은 그 부끄럼 많은 강낭콩의 주인들은 우리 반에서 강낭콩 키우기에 가장 열성적이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무관심하다며 친구들로부터 핀잔을 받았던 아이의 강낭콩은 벌써 떡잎 사이로 연둣빛 본잎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무심한 흙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다.



  왜 제 것만 싹이 안 날까요?



  난 할 말이 없었다.
  기다려야 한다는 말 외에는.


  그 말만으로 11살짜리 아이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아지도 자꾸 만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등 갖은 비유를 곁들인 뒤에야 아이들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화분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물도 흙이 마르지 않을 만큼만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갔다.







  강낭콩을 심은 지 보름쯤 되었을 때, 우리 반의 모든 화분들은 초록빛을 가득 품었다. 싹이 트지 않던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화분에서도 길쭉한 줄기가 올라왔다. 아이들은 죽었던 그린이와 강냉이(강낭콩들의 이름)가 살아났다며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보챈다고 해서, 애태운다고 해서 되는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심지어 강낭콩 한 알을 싹 틔우는 간단한 일 조차도 말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걷지 못하는 아이에게 빨리 뛰어보라고 아무리 등을 밀어도 그것은 아이에 부담과 상처만 남길 뿐 뛸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설사 그렇게 해서 뛰게 된다고 해도, 아이는 아마 뛸 때마다 자신을 밀어댔던 손을,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오히려 적당한 관심과 충분한 기다림이야말로 아이의 성장을 위한 가장 큰 양분이고 거름이 된다.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였던 루소는 교육을 사람을 피워내는 로 생각했다. 그의 자연주의 교육 철학이 잘 드러난 책, ‘에밀’에서 교사는 정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꽃이나 나무를 키울 때 물을 주고, 가지를 쳐 주듯 알맞은 교육환경을 제공하지만 그 이상의 강제나 강요는 없다. 자신의 역할을 한 뒤에는 그저 지켜보고 기다릴 뿐이다.


  기다림은 아이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상대방이 자신을 믿고 있다는 신뢰감을 준다. 그래서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높아지고, 해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실수하더라도 다시 시도할 시간과 여유가 있기 때문에 도전이 두렵지 않게 된다.


  반대로 재촉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상대방을 조력자가 아닌 감시자나 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빨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이 실망스럽고,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만나게 되면 타인과 스스로를 실망시키기 싫어 미리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싹이 트는 속도는 조금씩 달라도, 결국은 줄기가 돋고, 잎을 펼치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래서 성격 급한 나는 조금 느린 아이들에게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그 아이들이 언젠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오늘도 최선을 다해 기다리자고 다짐한다.



어떤 꽃이든 필 때가 되면,
피어난다고 믿으면,
결국은 피어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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