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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삼천일백서른두번째 어른날

2017 03 10

나는 어느날 갑작스레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때 나의 이름은 '꼭지'였다.


그 이후로는 항상 의젓해야 하고 똑똑해야 했고 심부름도 군말없이 해야했다. 좋아하는 만화를 할 때에도 좋아하는 음식이 차려져 있을 때도 늘 사람들은 나를 찾았다.


'너가 잘하니까'

'너가 꼼꼼하니까'

'저 언니 봐라 얼마나 얌전하니'


나이를 먹은 어른들은 그렇게 칭찬처럼 나를 찾았고 나는 그런 어른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나는 열 살 배기도 안되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내 몸은 곧잘 앓았다. 속 열이 끓어 겉으로 펄펄 났고 형제들은 한 번도 하지 않은 수술도 했었다. 그렇게 작은 몸에 아프면서 내 탓에 시간과 돈이 들었다는 매운 소리를 들은 후엔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 준비도 못한 채 어른껍질을 입었다.


어려야만 했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시간들에 작은 사탕을 받아도 투정을 부리지 못했고 내 사탕을 누군가에게 줘버릴때에도 그 정도쯤은 참아내어야 했다. 혹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린 날에 어른스럽지 못한 아이여서 미안했다.


그 후로 나는 많은 것을 혼자 했고 대부분의 것에 미안해 했다.


처음 내 방이 생긴 날에도 처음 교복을 맞춘 날에도 대학을 가고 첫 직장이 생긴 차마 고마운 그 날들에도 나는 익숙하게 미안해 했다.


그리고는 무서워졌다. 이미 어른껍질에 맞을만큼 나이를 먹어버렸지만 너무 오래 사용하여 낡고 바스락히 얇은 그 껍질은 조금만 생채기가 나도 파삭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뒤에 드러날 모를 내가 두려워서 부딛혀오는 모든 것을 멀리했다.


그렇게 너를 멀리했다.


한 날 지친 오후에 퉁명스러운 한 마디였을뿐인데 순간 난 '꼭지'로 돌아가 있었다. 어른스러운 꼭지는 의젓해야했고 참아내야해서 제일 먼저 말수가 한참을 줄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가 되었고 보고싶다는 투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너는 불안해 했다.


그런 너에게 나는 또 미안해 했고,


그래서 너를 다시 멀리했다. 그렇게 좋은 너를 멀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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