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을 간절히 원했던 때는 중고등학생 때부터였다. '두발 단속'이라 불리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마치 일제강점기 시대에나 나올 법한 규제가 나는 정말 싫었다. 거기엔 '왜?'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왜 머리를 잘라야 하는데?'라는 내 의문에 시원하게 답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생각해도 그럴 만한 합리적인 이유는 여전히 없다. 이유가 없는데 강요하는 학칙이 어떻게 설득이 되겠는가.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는데 그 점이 오히려 선생님들의 심기를 건드리곤 했다. 다른 학생들은 그렇다 쳐도 반에서 1등 하는 학생이 머리를 안 자르고 반항한다는 그 사실에 분노하는 몇몇 선생님들이 계셨었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 규제를 끝까지 버티거나 마지못해 억지로 자르거나 했었던 기억이 있다.
두발 단속이 마뜩잖았던 과거의 나는, 지금 mz세대가 울부짖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시스템'을 원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감정은 사회에 나와 회사를 다니면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회사라는 조직도 이해되지 않는 수많은 의사 결정이 판치는 곳이었다. 이렇게 당사자와 아무런 커뮤니케이션 없이 인사 발령을 낸다고? 허울뿐인 억지 동의를 받아 놓고 복지 제도를 고친다고? 우리의 성과에 비해 턱 없이 적은 성과급을 준다고? 물론, 회사는 이익 집단이며 사적인 소유이기 때문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나와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 그리고 회사에 다니는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다들 비슷한 감정을 갖는다. 회사를 가장 떠나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 하면, 업무량이 미친 듯이 많거나 사람 때문에 힘들 때도 물론 해당되지만, 회사가 '멍청한 의사결정'을 할 때 가장 정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투명한 과정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처리해버리는 여러 의사 결정도 마찬가지.
진정한 MZ세대는 00년생 이후부터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학교 급식에도 정식적인 절차로 의문을 제기하고 업체도 바꿀 수 있는,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고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세대라고. 얼마 전 우리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이 책임급에게 일을 배우며, "이렇게 갑자기 요청하시니 당황스럽네요. 다음부턴 미리 요청해주시겠어요?"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 신입의 말투가 되바라진 것은 사실일 수 있지만, 나는 알맹이에 문제는 없다고 본다. 아무리 신입사원이라도 존중받아야 할 영역은 분명히 있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선배의 불합리한 요청에 대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그들이 결과적으론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의 옳고 그름은 의문으로 남아있지만.
가끔 회사의 어르신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MZ세대라고 회사를 놀면서 다닐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커리어 개발에 진심이니까.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면 며칠씩 야근을 해도 좋다. 하지만 의미 없고 이유 없는 일에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회사도 다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알지만 묵인 하는 걸까. 어쨌든 나는 여전히 합리적이고 똑똑한 세상에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