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란만장한 음주 일대기
술을 참 좋아했다. 내 인생 에세이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에는 엄청난 명대사가 나온다. '오늘의 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건 그나마도 어제 마신 술 밖에 없다.' 격하게 공감한다. 책을 덮고도 진한 여운이 남았을 정도로.
대학에서 마당극 동아리를 했다. 장구도 배우고 문학 시간에 배운 <양반전> 따위의 극에 출연하고 덩실덩실 탈춤도 추는 동아리. 누가 봐도 인기 있을 법한 동아리는 아니다. 보통은 취업에 도움 되는 학회나 밴드, 여행 동아리가 인기 있었다. 그런데 이 시대에 마당극을 한다는 그 시대착오적인 동아리는 어딘가 모르게 신비함이 도사렸다. 왠지 비범한 사람들만 있을 것 같고 (실제로 그런 선배가 많기도 했다.) 무엇보다 '술 잘 먹는 동아리'라는 타이틀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동아리 선배들이 나를 꼬시려고 술자리를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나에게 딱 맞는 동아리구나!' 싶었다. 부어라, 마셔라, 얼쑤! 술부심이 꽉 차오른 새내기가 바로 나였다. 취기가 올라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좀비처럼 끝없이 마시는 술버릇으로 주량이 센 덕분에 어느 술자리에서나 주목을 받았다. 동아리에서 내가 쓴 전설의 술자리 에피소드는 아직도 회자되곤 한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떠도는 구전설화처럼.
시간이 흘러 사회에 나와 지갑이 빵빵하니 나의 술 사랑은 한 단계 심화됐다. 더 이상 오로지 술만을 목적으로 대충 아무거나 시켜 먹던 대학가 싸구려 술집은 가지 않아도 됐다. 수제 맥주, 와인, 사케, 위스키 모든 주종을 섭렵했다. 세상에 반주로 할 음식은 왜 이리 많은지. 곱창, 치킨, 제철 회, 안주가 맛있는 이 세상 모든 멋진 술집들••• 게다가 서울에 취업을 하니 자연스레 본가에서 나가게 됐다. 드디어 부모님의 채근과 막차 시간을 걱정하지 않는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이다! 대학생 때는 11시만 되어도 빨간 버스를 타러 일어나야 했다. 10분만 더, 5분만 더, 매번 신데렐라처럼 술을 마시니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먹고 싶은 술과 안주를 맘껏 먹고 언제든지 택시 타고 집 갈 수 있으니, 바야흐로 내 인생의 완전한 '자유 음주 시대'가 열렸다.
그렇게 술자리 후 점점 기억이 끊기는 빈도가 잦아지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나날들이 지속될 때, 그러니까 나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이 얼마 안 남은 여름날이었다. 드디어 '그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원래도 남자 친구가 술에 취하는 흐트러진 모습을 좋아하지 않아서 몇 번의 경고를 받은 참이었다. 다시는 취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생일을 앞두고 회사 사람들과의 회식이 화근이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선배들이기도 하고 그들도 워낙 술을 즐겨해서 회식을 하면 취하는 일이 잦았다. 평소 가고 싶던 연남동 한식 주점에 벼르고 벼르다 갔다. 그동안 참아 왔던 탓일까? 그날도 어김없이 폭주하게 되었다. 신나게 먹고 집에 가는 길, 하필 지하철을 타고 말았다. 자주 타던 노선이 아니라 정신 차리고 내려보니 어느새 1호선을 타고 경기도였다. 서둘러 역사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외진 역이라 그런지 길에 행인도 없고 택시가 도무지 잡히질 않았다. 핸드폰 전원은 몇 초 뒤면 꺼질 것처럼 위태로워서 콜을 부를 수도 없었다. 결국 술에 잔뜩 취해 과하게 용감해진 나는, 무려 생애 첫, 히치하이킹을 하게 됐다. 친절한 분이 도와준 덕분이지 큰 사건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집에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약속을 번복하고 또 취한 모습을 보여서 남자 친구는 단단히 화가 났다. 나는 뱉은 말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친구들이 생일 파티를 해주고 찍어준 사진 속에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촛불 앞 내 표정은 지금 봐도 어쩔 줄 모르겠다. 그 해는 정말이지 내 인생 최악의 생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술을 확실히 경계하게 됐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놈의 술에 휘둘려 휘청거리는 내 삶이 싫어졌다. 어릴 때야 철없고 혈기와 용기가 넘쳐서 그랬다 치더라도 언제까지 비틀거리고, 기억이 끊기고, 다음날 회사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토를 해야 하는지. 그런 망나니 같은 어른이 되긴 싫었다. 그때부턴 스스로가 '술 조금 마셔야지'라는 알량한 생각만으로는 컨트롤되는 인간이 아님을 자각했다. 그리고 치밀하게 음주 환경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룰이 그 시작이었다. 술을 줄인다면서 이게 무슨 소리냐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주량이 어느 정도 되다 보니 도수가 낮은 술은 소주처럼 술이 술을 부르는 일은 막아줬다.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새로운 음주 습관에 적응했고 만취하는 일이 없어졌다. 점점 가볍게 술을 마신 다음날의 기분도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숙취가 심하지 않아도 묘하게 붕 떠 있는 기분, 자극적인 음식이 당기는 거짓 식욕, 침대에 딱 붙어 있고 싶은 무기력증이 내면의 잔잔한 평화를 침범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건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달리고 크게 부풀려 펑하고 터뜨리는 것이라 믿었다. 기어코 끝을 보겠다며 가득 찬 술잔에 흠뻑 담가졌던 나처럼. 하지만 한 차원 더 높은 사랑은 눈앞의 모든 걸 한 번에 꿀꺽 삼키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찬찬히 아껴주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여전히 애주가지만 더 이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퍼즐을 맞춰야 하는 술자리는 꺼려진다. 그보단 살짝 기분 좋을 정도로 알딸딸한 상태에서 앞에 앉은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술과 함께 상대방을 탐험하고 서로의 생각에 반하는 순간에 피어오르는 오묘한 빛을 사랑한다. 잘 안다고 자부했던 사람의 전혀 모르던 의외의 모습을 찾아낸 것처럼, 꽁꽁 숨겨 있던 술의 진짜 매력을 드디어 알아낸 기분이 든다.
경험상 사실 이럴 때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 찬 바람이 살살 불어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이 당기는, 취한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한 지금 이 방심의 타이밍을. 조만간 살짝 취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