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다녀왔습니다.
잇몸 보강 수술을 하고 난 뒤, 아픔에 집에서 쉬고 있는 저에게 동생은 위로 아닌 위로의 농담을 건넵니다.
"가만 보면 참 아픔을 즐기는 것 같아?
몇 달 전에는 쌍꺼풀 수술을 하고, 이번 달에는 잇몸 수술을 하고, 또 어떤 때는 아픈 피부 레이저를 받고. 참 대단해!"
매번 불편한 몸을 뚝딱뚝딱 고치는 저의 행동력에, 동생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었겠지만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니어서, 저도 모르게 아픈 와중에 웃음이 터져 버립니다.
"그러게, 나도 참 대단하네. 매번 아플걸 알면서도 나서서 뚜드려 맞는 걸 보니"
본능적으로 동물은 위험하고 불편한 것을 피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의문의 대상에 대해 경계를 한다거나, 위험할 것 같은 곳에 가지 않는다거나 그런 성향 말이죠. 그리고 사람도 일부분 동물이라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자꾸 위험한 것을 회피하고 불편한 것을 하지 않으려는,
안전한 것만을 추구하는 성향은 바로 이런 것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은 어쩌면 진화론적인 방법에서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인류가 오랜 역사 동안 미지의 새로운 것보다는 항상 먹던, 만나던, 하던 익숙한 것들 에서 더 많이 생존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일상생활의 울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유전자와 역사 속에 새겨진 '익숙함에 대한 선호'는 우리를 현실에 안주하게 하고,
만나던 사람, 가던 장소, 하던 행동패턴 만을 추구하게 합니다.
속된 말로 나의 "구역"을 쉽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뉴스를 보면 취업 시장에서 선호되지 않는 2-30대가 현 상황이 나옵니다.
물론 모든 2-30대 세대의 문제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MZ세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들은 적습니다. 그들은 MZ세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권리만 알고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라고. 왜 이렇게 되었을 까요.
좋은 재료가 좋은 도구로서 역할을 해내기에는, 수많은 담금질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재료로서의 사람이 태어났다면 성장의 과정에서 많은 담금질을 겪어야 하죠.
그러나 지금의 가정, 학교에서 그러한 역할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발달한 미디어와 SNS를 통해 우리는 서구의 가치관을 겉핥기식으로 받아들였고, "자유"라는 미명아래 무분별한 방임만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비단 MZ세대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위험하지 않는 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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