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제주의 날씨는 파랑파랑이다. 잔잔한 파도에 잠시 멍한 시선을 두고 있다가 내일 제과 수업에 사용 할 재료들로 퍼뜩 눈이 간다. 작고 예쁜 디저트를 먹는 건 단 몇 분이지만 만드는 과정이 보통 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사실에 수강생들은 일제히 혀를 내두른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복잡한 과정도 허다하다. 수업 준비를 마쳐 놓고 테라스를 열고 나가 바다 내음을 맞는다. 그런데 조금씩 하늘이 왠지 수상해진다.
다음날 아침. 어제의 그 푸른 하늘은 어디로 갔는지, 건물 앞 야자수들이 당장이라도 뽑혀 나갈 듯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게다가 짙은 회색빛의 파도는 잔뜩 성이 난 채 일렁이고 억수같은 비가 섬을 두드린다. 섬 날씨라는 게 변화무쌍해서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소녀의 질풍노도 변덕 같다.
앞으로 수업까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여전히 비는 그칠 기미가 없는데 수강생들마저 하나 둘 도로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며 난처한 소식을 전해온다. 난 결국 단체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오늘 악천우로 여러분 안전을 위해 휴강하겠습니다.” 그나마 항의 없이 모두 납득해 주어서 다행이었다. 자연의 심술 궂은 성질 머리를 한낱 나약한 인간이 어찌 맞설 수 있으랴!
작업대 위엔 준비된 재료들이 자기 자리를 착실하게 지키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와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러나 이내 난 냉장고에서 생크림과 마스카포네 치즈를 꺼냈다. 유통기한이 짧은 이 재료들을 살려보자! 우묵한 볼에 생크림을 올리고 또 다른 볼에는 계란 노른자를 톡 깨뜨려 넣은 후 설탕, 그리고 우유 풍미 가득한 마스카포네 치즈를 섞어 주니 금세 부드럽고 진한 크림 완성. 자, 비오는 날에는 역시 커피 향이지. 유리 용기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듬뿍 적신 케이크 시트를 깔고 그 위에 크림을 한 층 얹는다. 그렇게 반복하며 층을 쌓은 뒤에 코코아 파우더를 솔솔 뿌려 주면 티라미수 완성!
이탈리아어로 ‘나를 위로 끌어 올리다’라는 뜻의 티라미수. 한 스푼 푹 떠서 진한 커피 향 가득 입속을 채우며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풍미가 지금 이 순간, 바닥으로 가라앉았던 기분을 한층 끌어올리며 나를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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