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일을 연기할 수 있게 되면서 드디어 아들과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함께 여행을 다니는 편이긴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들이 따라다녀 주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방학 때마다 해맑게 여행을 제안하는 나에게 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늘 말한다.
“아, 이렇게 꼬박꼬박 같이 다녀 주는 아들 없는 줄 아셔.”
하긴, 아이가 점점 자라 제 생활이 생기면 부모와 함께 여행을 다닐 기회가 적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따라나서 주는 아들이 기특하긴 하지만 나도 자존심상 녀석에게 괜히 한마디 던진다.
“쳇! 돈은 내가 다 쓰는데, 왜 내가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어야 하는 거냐?”
그래도 이번 여행은 아들의 취향에도 부합하는 것이었기에 더 이상 말을 보탤 것 없이 바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일본 나고야와 도쿄를 거치는 여행!
때마침 나고야의 인근 지역에 ‘지브리 파크’가 생겼다지 뭔가?
우리는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찐 팬이다. 사실, 아들보다 내가 더 빠져 있긴 하지만...
이번 여행은 아들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계획했었다.
팬데믹으로 막혀있던 해외여행이 다시 개방되면서 얼마나 기뻤던지….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여행에 마음이 더욱 설레었다.
이왕이면 온천도 다녀오고 싶었다.
폭풍 검색을 하니 마침 ‘지브리 파크’에서 머지않은 곳에 '사납게 온천'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의 완벽한 코스.
그러나 그 온천 지역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참고할 정보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곳의 '긴센카쿠'라는 온천호텔은 당시에는 홈페이지가 일본어로만 되어 있어 호텔 측에 영어로 이메일을 보내 예약해야 했다. 인간 번역기인 아들의 옆구리를 찔러 예약 문의를 하고 몇 가지의 요청 사항을 몇 번 더 주고받고 나서야 드디어 예약 완료.
그곳에 도착하니 고즈넉하고 아담한 온천 마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에 온 듯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어쨌든 따끈한 온천에 피로를 풀고 난 후, 다채롭고 맛있는 정식 요리의 향연이 저녁 식사로 이어졌다.
오롯이 느껴지는 행복감에 아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꼬맹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커서 술친구가 된 걸까 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온천에서 여독을 풀고,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바로 꿈과 환상의 나라 ‘지브리 파크’에 입성!
솟아나는 나의 호들갑에 평소의 아들이라면 절레절레 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이다.
이번 여행이 더욱 즐거웠던 것은 공통적인 취향을 아들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파가 북적이는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들도 이번만큼은 기꺼이 감수하며 즐기고 있었다.
나도 그토록 기대하던 순간을 ‘카메라에 모조리 담겠어’라는 심정으로 어김없이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여기에 서 봐라, 저기에 서 봐라, 깨알 같은 내 요구에 아들 눈 밑에는 어느새 다크 서클이 드리운다.
이쯤 되면 브레이크를 걸어오는 아들.
“사진은 좀 적당히 찍으셔."
그러면 나는 여기에 늘 같은 대사로 응수한다.
“사진이 남는 거다, 뭐!”
투덕거려도 나는 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한 것을 아들도 알고 있다는 걸….
‘지브리 파크’에 이어 나고야 시내의 아이치현 미술관에서는 지브리 전시회도 열리고 있었다.
내친김에 전시회 관람까지 했으니 이번 나고야 여행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성지순례 같았다.
긴 시간 전시회 장을 관람한 후, 급기야 아들은 고백했다.
“저, 소신 발언 좀 하나 하겠습니다. 저도 지브리의 작품들 참 좋아하는데 말이죠,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 싶네요. 슬슬 현기증 납니다. 어머님!”
어머! 그랬어?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MBTI'로 보자면 이것은 E와 I의 조합이었던 것이다.
그래, 뉘 집 아들 쓰러지기 전에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우리는 나고야의 다음을 또 기약하며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달려갔다.
-5화에 계속-
지브리 파크 안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