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했던 베이킹 실습 중에 잊을 수 없는 애증의 구겔호프.
유럽의 전통 구움과자 구겔호프는 마치 왕관의 형태를 닮아 우아하다.
여러 지방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라 레시피도 다양하지만 나의 수업에서는 럼에 절인 건포도와 말린 과일 등을 반죽에 넣어 파운드 케이크처럼 굽는 것이다.
수강생들에게 다양한 도구들을 접해 볼 수 있도록 나름대로 수업 준비에 신경쓰고 있던 차, 미국으로 여름 휴가를 다녀오며 묵직한 주조 알루미늄의 구겔호프 틀을 획득!
그 당시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웠던 제품이었다.
앞으로 강의 실습에서 고급스러운 구겔호프가 만들어질 것에 설레이며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지며 제주도까지 가져왔다.
나는 강의에 앞서 새로 장만한 틀에 구겔호프를 여러 차례 구워보며 테스트를 거쳤다.
틀의 소재와 크기 등에 따라 오븐에서 굽는 온도와 시간등을 살펴 레시피를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움과자 틀은 사용하기 전에 길을 잘 들여 주어야한다.
역시나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져 틀에서 빠져나온 영롱한 구겔호프.
이 정도면 됐다!
드디어 수강생들과 실습시간.
“어머나! 선생님. 구겔호프 틀이 정말 예뻐요!”
눈을 반짝이며 기대 가득한 수강생들.
케이크가 다 구어지면 틀에서 분리가 잘 되도록하기 위해 이형제를 바르고 열심히 만든 반죽을 각자 틀안에 주르룩 부었다.
드디어 강렬한 오븐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 구겔호프.
열을 식히고 우아한 왕관모양의 구겔호프들이 하나씩 틀을 빠져 나올때 마다 수강생들의 감탄사가 터진다.
뿌듯하고 화기애해한 실습시간이 끝을 향해 갈 무렵.
“어라?!“
본드로 붙인 듯 틀에서 빠져 나올 기미가 전혀없는 마지막 차례의 구겔호프.
‘그.럴.리.가…. 치,침착하자.’
마음 속 주문과는 달리 머리털이 쭈뼛서고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수강생은 난감한 표정으로 틀과 씨름하는 나를 지켜 보고 있었다.
결국, 내가...졌다!
테스트 할때는 아무 문제 없었건만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스러웠다.
우째, 이런 일이...
완성된 구겔호프를 가져 갈 수 있다는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 버린 수강생의 표정.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신단 말입니까!'
나는 예쁜 구겔호프를 다시 만들어 다음 시간에 꼭 전해 드리겠노라고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수강생은 이해해 주었다.
아…도대체 이게 무슨 굴욕이란말인가?
수강생이 모두 돌아가고 텅빈 실습실.
나는 뒷정리를 미뤄둔 채 망연히 앉아 구겔호프 틀을 노려보았다.
반짝이던 녀석의 우아한 자태가 그렇게나 밉살 맞을 수가 없었다.
약속대로 구겔호프를 다시 구워 수강생에게 안겨 드렸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털이 쭈뼛 솟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