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
2009년 8월 초. 홋카이도 하코다테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하코다테를 시작으로 후라노, 오타루 그리고 삿포로를 거치는 1주일의 여정이 처음으로 혼자만! 떠났던 해외여행이었다.
당시 나는 몇 년간 서비스 사업장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여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어느새 마음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렇게 일과 육아, 모든 걸 그냥 여기서 다 때려치울 거 아니라면 이 마음을 좀 꿰매야 했다.
‘그래 혼자 물 건너로 날아가 보자!’ 그렇게 상처투성이 워킹맘은 떠나기 위해 방법을 모색했다.
1주일의 여름휴가를 내고 초등학생 아들은 여름 캠프를 보내고 모두에게 나를 찾지 말라! 를 선언한 후 하코다테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혼자 여행의 첫 행선지가 하코다테였냐고 물으신다면?
바로 드라마 <런치의 여왕> 때문이었다. 도쿄의 네 명의 훈남 형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발랄하고 시원한 성격의 한 여인이 들어와 일하게 되면서 겪는 갈등과 사랑의 스토리. 아마도 세상에서 오므라이스를 가장 맛있고 사랑스럽게 먹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여주인공 모습이 인상적인 드라마이다.
마지막 회에서 그녀가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먹은 오므라이스를 찾아서 떠나는 하코다테의 거리는 내 마음을 끌어당겼고 ‘언젠가 꼭 가봐야지!’ 하며 찜해 놓은 터였다.
사실 나는 아는 길도 돌아가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지독한 길치였기 때문에 혼자 헤매고 다닐 생각을 하니 출발 전부터
등골이 오싹 해져왔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의 구글맵으로 찾아다니던 때도 아니었고 거의 가이드 북의 지도를 의존했던 시절. 다시 생각해보니 나 같은 길치가 어떻게 여기저기 찾아다닌 건지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렇다고 일본어를 잘했을 리도 만무했다. 그나마 당시 일본 드라마에 막 꽂혀 있던 때라 정말이지 드라마에서 귀동냥한 수준의 생존 일본어 몇 마디 할 정도였으니 말해 뭐할까?
그러나 마침내,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그곳에 도착하니 초가을 같은 쾌청한 날씨에 코카콜라 광고를 휘감은 빨간 트램이 유유히 지나는 고즈넉한 도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쭉 뻗은 언덕길 아래 눈부신 바다가 펼쳐져 있는
거리를 걷고 있자니 답답했던 내 마음 사이사이를 청정하고 상쾌한 공기가 싸악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아... 이 해방감! 아들아! 캠프에서 잘 지내고 있지? 좀 미안하지만 에미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구나!’
나는 이런 미칠 것 같은 여유로움이 정말 현실인가 하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거리를 만끽했다.
하코다테는 항구 도시여서 서양 문물이 먼저 들어오던 곳. 거리에는 유럽풍의 엔틱 한 건축물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가득 자아냈고 항구 주변을 따라 자리한 빨간 벽돌의 멋스러운 상점가에는 다양한 식당과 예쁜 가게들이 즐비했다.
또 때마침 거리엔 여름의 화려하고 흥겨운 축제 행렬이 이어졌고 나도 잠시 모든 걸 잊고 흠뻑 빠져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의 혼자 여행은 서두를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덧 하코다테의 마지막 날, 그 모양이 마치 우리나라 지도와 흡사하게 보인다 하는 하코다테 야경을 보기 위해 비가 지나가 촉촉하게 젖은 저녁 무렵의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웬일로 순탄하게 길을 찾는다 싶던 나는 어느새 방향 감각을 잃어 헤매고 있었고 때마침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당황하고 있던 나에게 다가오셨다.
난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국적불문의 언어로 전망대가 어딘지 물어댔고 할머니는 영 안 되겠는지 안타까운 얼굴로 내 손을 꼬옥 잡고는 따라오라고 하셨다.
순순히 손을 잡고 이끌려가는 나를 전망대 케이블카 입구까지 데려다 놓으시고 할머니는 유유히 손을 흔들며 사라지셨다. 그때 참으로 따뜻하고 폭신했던 할머니의 손. 할머니... 안녕하신가요?
홀로 여행을 하고 있어도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그 누구도 아닌 오롯이 나만을 위해 보냈던 치유의 시간.
사실 나는 드라마 속 오므라이스는 먹지 못했다. 그러나 도착 후 처음으로 먹었던 바삭한 치킨버거와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도 충분했다.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여행, 나를 향해 걸어오는 우연, 더 이상 나의 여행은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나를 위안하며 그 속에서 뜻밖의 우연을 만나기 위해 홀로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