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2014년 5월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안 가족 모두의 지주와도 같았던 아버지의 영면에 온 가족은 말할 수 없는 큰 슬픔에 잠겼다.
내 인생의 가장 슬프고 괴로웠던 일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도 멀리 유학 길에 오르게 되었다.
커다란 공허함으로 늪처럼 가라앉던 내 마음에 변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마침 10여 년간 하던 일도 접고 휴식기에 들어간 기간. 조금은 긴 3개월.
아주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고 그렇게 선택된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였다.
그곳을 택하게 된 이유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생뚱맞지만 스콧 메킨지의 <샌프란시스코>라는 오래된 팝송
가사 몇 줄 때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머리에 꽃을 꽂고 가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샌프란시스코에 오는 사람들에게 여름은 사랑을 줄 거예요…'
자고로 인생이란 것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그곳에 머물 동안의 계획 따위는 접어 두더라도 영어는 좀 할 줄 알아야 할 텐데... 망. 했. 다!
그렇게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어학원 단기 코스를 준비해두고 드디어 그곳으로 날아갔다.
2015년 12월 26일 이른 아침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12월의 유니언 스퀘어 광장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우뚝 솟아 있었고 주변 백화점 쇼윈도의
장식 덕분에 더욱 화려해 보였다.
높은 빌딩들이 빽빽한 다운타운 거리는 분주하게
들뜬 사람들의 물결…
샌프란시스코의 지형상 가파른 언덕길을 타고 내려오는 오픈된 트램은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땡땡
종을 울리며 지나갔다.
나의 걸음은 시차에 정신이 붕 뜬 듯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 그렇게 몇 블록을 걸어가고 있을 무렵, 왠지 점점 인적 뜸한 어둠의 기운이 스멀스멀 드리우며 사뭇 다른 느낌의 거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낡은 이불 더미들 속에 무기력해 보이는 노숙자들과 나뒹구는 쓰레기들, 간간이 덧대어진 철창문에 알 수 없는 낙서들... 분위기 대반전의 거리가 공존해 있던 거였다. 그랬다! 그 순간 <샌프란시스코>라는 노래 가사는 나에게 배신! 배반형이었다!
반짝이는 풍경 속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 바로 뒤편에는 극과 극의 암울함이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나는 그 거리를 걸어 어학원의 첫 수업을 가야 했다. 어학원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고 심지어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휴게실에서 만나면
서로 ‘웨얼 아유 프롬’을 던지고 몇 마디 하다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대화는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에 예쁜 한국인 친구가 새로 들어왔다. 잘하면 엄마 뻘도 될 수 있는 나이 차이였지만 질풍노도의 영어 홍수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우린
베프가 되었고 그때부터 다단계 같은 친구 사귀기가 즐겁게 시작되었다. 모두 20대 초중반이었던 친구들...
각자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안고 열심히 달리고 있었고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대하는 그들에게서 나도 더욱 겸손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 쌓아간 하루하루는 저 밑으로 꺼져 있던 내 마음을
어느새 풍요롭게 채우고 있었다.
또 낯선 곳에서 서툰 언어로 좌충우돌 헤쳐나가는 동안 내 안에선 작지만 단단한 용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1시간을 기다려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 타르트를 맛보다가 나는 문득 뭐라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소소하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갓 구운 빵의 행복을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해 줄 수 있을까...
1년 후 나는 제주도 바닷가 마을의 베이킹 강사가 되어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낭만만 있던 것도, 찬란한 여름도 아니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불혹으로 들어선 내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선사해준 것이다.
행복한 길을 걸어가는 내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신 아버지가 곁에 계셨다면 나의 슈크림을 달게 드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