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수업이 끝나고 시원한 밤길을 걸어오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의 외출이 즐거웠으나,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다시 혼자만의 세상에 고립된 것도 편안했다.
글은 내일부터 써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오직 무엇을 쓸까 하는 생각만 계속 맴돌아서, 책상에 앉았다.
무엇을 써야 할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몰랐다.
자서전을 쓰기에는 이룬 것이 없고, 에세이를 쓰자니 상처뿐인 실패를 들여다보면서, 되돌릴 수도 없는 과거의 원인을 끝없이 찾기도 싫었다. 심지어 나는 솔직할 수도 없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쓰면 소설이 될 것이 뻔하다. 이제 와서 실용서를 쓸 필요도 없고, 시는 생각하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이 세상 어디가 그렇게 아름답다는 말인가. 후회로 가득한 구구절절한 하소연과 세상을 향한 원망이 어떻게 시가 되고, 욕 한마디도 못 하는 내가, 무슨 수로 욕하지 않고 시를 쓴단 말인가.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왜 쓰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심지어 남은 돈도 없으면서, 왜, 그날 밤에 책을 쓰려고 했는지, 짜증이 났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제목도 모르는 노래를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로 부르듯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듯, 울분이 폭발해서 눈물이 쏟아지듯이 막을 수도 없이 그냥 쓰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을 아무도 보지 않아도, 참을 수 없는 재채기같이 터져 나오려고 하고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답답할 뿐이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 때문에 그 흔한 에세이조차 쓰지 못하는 기가 막힌 신세가 처량했다.
만약 내가 에세이를 쓴다면 이런 황당한 제목이 될 것이 뻔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쓸모없는 능력에 대하여.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의 자서전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도 패배한다.
종이 위에 마음의 소리에 관련된 제목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마구잡이로 낙서를 하다가, 슬슬 화가 났고, 마침내 폭발하기 직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진실을 이야기해도 소설이 될 것이 뻔하다면, 소설을 써야겠다.
‘소설이라, 소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면, 평생 간직해 온 비밀을 드디어 고백할 수도 있겠다. 그것만으로도 후련할 것 같다.인생을 실패로 이끈, 이 특별한 능력에 대해 잘 쓰면, 그럭저럭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속에 잘 섞여 사는 사람이면 다르겠지만, 세상에서 철저히 고립된 사람이라면, 지난 삶이 사실이었다는 증거는 오직 나라는 증인뿐이다. 예전에 입던 옷들이나 몇 가지 남은 물건들이, 나의 과거가 망상이 아님을 증명하고는 있지만, 그것들마저 사라지면 나라는 사람은 기억하는 대로 존재하게 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오직 나 자신뿐이라면, 온갖 실패 끝에 숨어든 것이 아니고, (유명세에 지쳐서 은둔의 삶을 선택한 어떤 현명한 사람으로 기억한다면,) 그 증거가 오직 스스로의 기억뿐이라면, 내가 기억하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망상이라도, 진짜 나와 소설 속의 나를 가끔이라도 헷갈린다면, 아니면, 글을 쓰는 잠시 동안이라도 소설로 내가 만든 주인공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아. 글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두 번째 기회,
작가라는 신이 되어 자신에게 두 번째 생을 주고, 성공을 주고, 시련 없이 완벽하게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 혹여 어떤 이가 나는 모르고 내 소설만 안다면,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숨기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욕심껏 다 품고도,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소설로 성공한 삶을 써야겠다. 소설로 다시 살아야겠다. 새 심장으로 첫 박동을 시작한, 막 태어난 아기처럼 심장이 뛰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으로 인생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를 궁리해 보기 시작했다. 이번에 내가 만드는 인생은 무조건 성공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