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할 뻔한
원하기만 했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비밀과 욕망을 들을 수 있는 나는, 원하기만 했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쉽게 성공할 수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능력을 사용 안 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생이 처음이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듯이, 능력을 가진 것이 세상에 오직 나뿐이라서, 어떻게 잘 써야 할지 몰랐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대단한 행운을 가졌다고, 성공한 인생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당신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직 모르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은 다섯 살 무렵부터 생긴 것 같다. 처음에는 속삭이듯 간신히 들려왔고, 중학생이 되기 직전에 가족에게 고백하고 함께 실험을 하면서 능력을 확인했다. 이 소리들은 성인이 되고서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는 결코 유용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채로 작은 속삭임에 머물러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 사는 데 유리한 것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능력이 극대화되었다. 이후 한동안 능력에 의지해서 성공의 발판을 만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릴 때는 이 능력이 나에게 매우 좋은 영향을 주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아이를 마음속으로까지 욕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데다가, 삐뚤어진 사람조차 아이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귀여워’ 같은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 말도 잘 듣고 공부도 곧 잘하던 나에게 들리던 생각들은 ‘똑똑하다’, ‘착하네’ ‘귀여워’ 같은 칭찬 일색이라서 행복하다 못해 기고만장한 기분으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대학 때까지는 친구들이나 선생님의 속마음을 듣고서 상처받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겪는 성장통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사회인이 되기 전까지의 세상은 그나마 우호적이었기 때문이었고, 어떤 나쁜 말들은 들어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원하는 대답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이제 기억이 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님의 기대와 현실적인 이유로 학교를 졸업하고, 국내 최대 기업인 아너사 홍보실에 입사했다. 명문대 졸업생들을 제치고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면접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입사하자마자 ‘원하는 대답’을 골라서 척척 내놓은 유능한 인재라면서 소문이 났고, 덕분에 지방대 출신임에도 좋은 부서에 배정되면서 신입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좋은 자리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 다른 대기업의 차녀, 차관의 아들, 교수의 자녀들은 흔했고, 그도 저도 아니면 장관 옆집에 살기라도 하는 좋은 사람들이 같은 기수의 동기로 들어왔다. 입사할 때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활용했지만, 이제 나도 같은 출발선에 서서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배경이 없으면 초조해진다. 면접 때 유용했던 능력은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비빌 언덕이 없는 사회 초년생을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남들보다 빨리 사회의 냉혹하게 길들여지게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의 소리가 너무 작게 들리거나 겨우 한마디 정도밖에 못 들었는데, 그런 사소한 한마디들 때문에 회사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일머리가 없네’, 라든가 ‘눈치도 없다.’ 같은 업무에 대한 평가부터, ‘옷걸이는 좋은데, 너무 싸구려로 입었네’, ‘아 진짜 지방대였어?’ 같은 소리를 언제나 노래처럼 들었다.
사람들은 친절한 가면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도 의도하지 않은 나쁜 생각을 쏟아내면서, 작용 반작용의 균형을 맞춘다. 때문에 악의적이지 않아서 더 차갑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마음의 소리는 언제나 시리게 와닿았다. 마음의 소리와 실제로 내뱉는 말이 같은 사람들은 드러내 놓고 못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나 별생각 없이 멍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아이들뿐이었다.
“처음치고는 잘하셨네요.”,
‘똑똑할 것 같았는데, 일머리가 이렇게 없어’
“점점 잘하고 있네, 다음에는 더 잘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얘는 왜 일이 안 늘어?’
그 시절 내가 실제 들은 말들은 냉정한 평가라기보다는 응원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이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능력뿐이었고, 실력을 갖춰 스스로 거센 바람에 맞서는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래 사회 초년생들을 모두 그런 시절을 보내지만, 업무와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때는 세상이 너무 좁게만 보이고, 절박해져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백분 활용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사람들의 사소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서, 좋은 아이디어, 업무의 문제나 해결 방법을 수집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영악하게 먼저 제안서를 쓰기도 하고, 상사의 마음을 읽어서 말을 꺼내기 전에 미리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어느덧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 해내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회사에도 적응하고 여유가 생겼지만, 그사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은 습관이 되었다. 사소한 인간적인 평가, 외모 같은 문제까지, 모든 사람이 다 내 편이 될 때까지, 모두가 나를 칭찬할 때까지, 세련되고, 매너 있고, 센스 있고, 능력 있고, 여유로운 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언제나 집중했다.
덕분에 똘똘한데 친절하기까지 한 사람이 되었지만 감이 좋은 몇몇 사람은 대놓고 얘는 애가 음흉하다며 농담을 하기도 하고,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재수 없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직장 동료의 아이디어를 몇 개 훔친다고, 직장 상사의 마음을 읽는다고 누구나 유능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남들보다 부지런했고, 마음을 들어서 알게 된 원하는 결과물을 남들보다 먼저 내놓았다. 누구보다 바삐 준비하고, 열심히 일했으며, 그들의 마음에 언제나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었다. 노력의 결과는 유능한 사람이라는 평가로 이어졌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먼저 호의도 베풀고, 인간적으로 챙기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습관처럼 비교했고, 숨 쉬듯 불평을 늘어놓았다. 절대 만족하는 법을 몰랐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실력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애초부터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가정환경에도 착하고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아이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이내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과를 내고 사람들의 차가운 마음까지 돌릴 수 있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끝없이 증명해야 했다.
내 마음을 들어주는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었지만, 작은 성공에 도달한 뒤에도 언제나 다른 이들의 마음을 듣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어릴 때 세상이 나를 대해준 것처럼 호의적으로 선의를 가지고 노력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전부는 아니라도 비난보다는 호의적인 평가가 많아졌다. 결국, 동기들을 모두 제치고 능력과 노력만으로 30대에 임원으로 승진하는 믿을 수 없는 성취를 얻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세상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고 그때는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