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대단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중요한 일들을 해나갔다. 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 마음의 소리에 더 집중해야 했다. 그들이 빙빙 돌려서 하는 말을 믿었다가는 어림없이 문제가 생겼으니까. 그들이 보기에 능력 있는 사람은 많았다. 유능하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편이 되어 원하는 것을 해결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네한테만 하는 이야긴데’
‘이번만 특별히 잘 처리하면,’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 자네만 믿겠네.’
‘문제만 없으면 될 거야.’
성공한 사람들의 언어는 매우 복잡하고 섬세했는데,
절대 똑바로 말하지 않았고,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고, 작은 성공도 수없이 크게 말했고, 남을 비난할 때조차 힘을 적게 들이면서,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성공한 사람들처럼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없었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듣기를 바라면서도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현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알아듣기 어렵도록 꼭꼭 숨겨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의중이 뻔히 드러나지 않도록 언제나 무표정한 미소를 띠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를 모르면 칭찬을 받고 있는지, 혼나고 있는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음을 듣는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미 기대 이상의 성취에 도달했는데도, 이들에게 전염되어 더 멀리, 더 높이 가기 위해서 이때부터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고, 능력이 극대화되었다. 집중하지 않아도, 대화 중에도, 거리가 멀어져도, 남의 마음을 크고 선명하게 잘 들을 수 있었다. 능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되면서, 높은 사람들은 눈치만 줘도 알아서 일 처리를 해주는 사람,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아는 능력 있는 젊은 친구로 여겼다.
더 성공하고 싶은 욕심은 없다고 겸손한 사람인 척 굴었지만, 기대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직급과 좋은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듣는 것에 집착했고, 그러다가 문제가 생겼다.
마음의 소리의 볼륨이 조금씩 커지다가, 어느 날부터는 실제 하는 말과 마음의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불평, 불만은 소리 내어 말할 리가 없으니 쉽게 구분이 되었지만, 마음의 소리가 실제 소리와 똑같이 크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어떤 말이 생각인지, 어떤 말이 진짜 소리 내 한 말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옆자리 직원이‘커피라도 가져와야겠다’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내 커피도 가져다주면 안 될까?” 부탁을 하거나, 회의 중에 ‘보고서를 냈나?’ 하는 속마음을 듣고, “보고서 어제 보냈습니다” 하면서 큰소리로 맥락 없이 끼어들어 대답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사람들은 내가 이상해진 것을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했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잘 눈치를 채지는 못하는데도,
“자네는 가끔 보면 내 생각을 읽는 것 같구만”
이런 농담을 하시는 임원분이 생겼고, 직원들은 좀 더 예민하게 내가 달라진 것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생각을 읽는 거야 뭐야, 소름 끼쳐’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정확하게 파악한 사람도 있었고,
‘상무님 요즘 산만해진 데다 왜 자꾸 혼잣말을 하시는 거지?이상해’
하면서 짐작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으면서, 더 집중해서 다시 정상적이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도록, 실제 말소리와 마음의 소리를 구분하려고 더 집중했다. 그럴수록 다른 사람들 마음의 소리는 더욱 크고 뚜렷해졌는데, 마음을 듣는 능력이 극대화 되면서 냉정한 속마음은 작아도 크게 선명하게 들리는 속성 때문에 특히 회사 같은 업무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장소에서는 마음의 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파고들었다. 해법은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에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를 찾는 것이 중요했는데, 학벌, 집안, 인맥 무엇하나 기댈 데가 없는 사람은 윗사람 눈치, 아랫사람들의 평판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에는 실제 말소리보다 마음의 소리가 커지는 바람에, 사람들의 말은 무시하면서, 대답하지 말아야 할 속마음에 대답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또 다른 문제는 생각의 소리들이 점점 커져서 내가 말할 때의 목소리의 볼륨이 일상적으로도 매우 커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마치 이어폰을 끼고 큰소리로 노래를 들을 때 조용조용 말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큰소리로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이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병원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지만 이내 청력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때쯤에는 나와 대화를 청하는 사람들은 한마디 꺼낼 새도 없이 그들의 마음의 소리에 즉각 대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일상적인 생각까지 너무 잘 들리게 되면서,
머릿속이 언제나 시끄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가 보기 전에 얼른 쇼핑해야겠다.’
‘밥 먹어야지,’
‘오늘은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
‘이번 달은 카드값이 너무 나왔네’, ‘
‘우리 자기한테 카톡 해야지’
사람들이 소리 내서 하는 말들은 속삭임처럼 멀어져 버리고, 사람들의 잡다한 마음의 소리로 주변은 소음으로 가득 차서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속마음과 그사이에 간간히 섞인 나에 대한 평가 속에 갇혀버려서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꼴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반응해야 할 때 반응하지 못하고, 반응하지 않아야 할 때 반응하는 일이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향수 냄새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프네!’
“오늘은 향수 안 뿌렸습니다.”
‘똑똑하면 뭐 해 배경이 없는데,’
“열심히 일해보고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백날 제자리인 겁니다.”
‘점심같이 먹기 싫은데, 밥이라도 좀 편하게 먹고 싶다.’
“저도 혼자가 좋습니다. 먼저 식사하러 가세요.”
‘사람이 좋으면 뭐 해? 싱글이라 퇴근을 안하니까 나까지 눈치를 봐야 하잖아. 짜증 나’
“할 일 다 하고 퇴근하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러니까 근무시간에 집중을 하세요.”
결국, 억울한 마음에 대답을 해버리거나, 조용한 사무실에서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소리치는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혼자만 몰래 들을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지, 내 마음을 여과 없이 큰 소리로 말해버리는,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회사에서 잘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호의를 베풀었던 동료와 직원, 반짝이던 때를 기억하던 상사들은 나에게 기회를 주었으나 그들도 금세 차갑게 지쳐갔다. 옷차림, 음식 취향, 농담 같은 사소한 것까지도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실력 말고는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지막 날도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다림질된 와이셔츠와 단정한 머리, 적당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고급 차를 타고 출근은 했지만, 업무는 아예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대답을 하면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좋았던 점은 해임되기 위해서 불려 갔을 때, 해고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이다.
‘해임한다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군’
“저를 결국 해임하시는 겁니까? 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할 때처럼, 시키기도 전에 알아서 척척할 뿐입니다. 이제는 업무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마음도 이해하고, 오해가 있어서 미리 대답해 주는 것뿐입니다. 본부장님은 이해하시지 않습니까? 저를 잘 알고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저 말고 본부장님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일을 똑바로 잘한다고 언제나 칭찬해주셨지 않습니까? 요즘 조금 산만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해결될 일입니다. 저는 아직도 유능하고, 회사를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요즘 산만한 이유는 사실 비밀입니다만, 본부장님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말 꺼내기도 전에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신입사원 때 사소하게 다른 직원의 아이디어를 훔치거나, 남들이 숨기고 있던 실수를 넌지시 불거지게 하기도 했지만, 그때뿐 이었습니다.
저보다 회사를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노력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마음을 들을 수 있다고, 절대 유능해질 수 없고,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다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남들보다 쓸모 있고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이 친구 요새 정신이 나갔다는 소문이 돌더니, 미친 사람처럼 구는군. 똑똑한 친구였는데, 안타깝게 됐군’
“본부장님조차 제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예전 일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모든 일들을 알아서 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 것은 이 특별한 능력 덕분인 것을 이해 못 하십니까?”
‘진정을 해야 사직권고를 하던지 해임을 할 텐데 걱정이군’
이후로도 한참을 더 호소했지만, 결국 스스로 사임했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해임이야, 이 상태로는 일을 못 하겠군. 자네도 이유를 알지 않나,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물론 본부장님은 나에게 한마디도 할 필요도 기회도 없었다.
‘저 친구 어쩌면 정말 마음의 소리를 듣는지도 모르겠군, 묘하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말만 한단 말이지’
막연하게 내가 미친 이유가 진짜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돌아 나왔다.
극도로 흥분하고 절망한 상태로 필요한 것들만 챙기고,. 책상을 정리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직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미쳤나 봐’
‘이게 무슨 일이야!’
‘요새 이상하더니, 그래도 오래 버텼네’
‘어쩐지 소름 돋더라니’
‘그렇게 잘 나가고 똑똑한 척하더니’
‘일만 하더니 미쳤나 보네,’
‘일밖에 몰랐는데 안 됐네’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지나면서, 고소해하는 사람, 안쓰러워하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으면서 정신을 차렸다. 나는 미친 것이 아니고 시끄러운 소리에 방해받은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처럼, 유능하다 인정받던 때처럼, 반듯하게 넥타이를 조이고, 흐트러지지 않는 규칙적인 걸음으로 그러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절망적인 표정은 지우지 못하고, 최대한 괜찮은 척, 반듯하게 걸어 나왔다.
유능하고, 성공한 데다가, 잘생기고, 매너와 인성도 좋고, 패션 감각이나 냄새조차 좋은 완벽한 사람이어야 했다. 잠시 지쳐 내가 이룩한 세계에서 나와 휴식을 취한 뒤 금세 돌아갈 것이다.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냉정한 마음에 소리들에 대답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처음 시작하던 그 날처럼 최대한 반듯한 모습으로 성공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