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내는 토마토!
나의 해고는 가족들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모든 것이 딱 보통이었다.
평범한 직업에 보통 수준의 수입, 일반적인 학력, 외모 키 모든 것이 넉넉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경쟁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살 생각도 없으면서 더 부자로, 더 잘난 사람처럼 살지 못해서 언제나 열등감에 쌓여 있었다. 남들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 부모님의 꿈이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는 말을 자신들 스스로 믿으면서, 나를 아바타처럼 움직여서 못 이룬 꿈을 이루고 싶어 했다. 내가 하나씩 얻어낸 학벌과 직업과 연봉, 준수한 외모는 자식 잘 키워낸 부모님의 자랑거리였고, 남들처럼 사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소름 돋는 마음을 듣는 능력 때문에 자녀들에게 절대 밝히려고 하지 않았던 친척들 간의 불화나 아버지의 외도를 들켜서, 집안에서는 기분 나쁜 재앙을 대하듯이 나를 대했지만, 밖에서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잘난 아들이었다.
그래도 해고 소식을 듣자 어머니가 본가로 와서 며칠 쉬고 가기를 권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좋게 끝난 적이 없었다. 가족들은 내 능력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분 나빠했다. 가족들은 내가 모든 생각을 들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곤란한 이야기는 애써 못 들은 척 연기해주었다.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더 생각나는 것처럼 들어서 안 되는 더럽고, 아프고, 절망적인 모든 생각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사이에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등을 돌린 이번에는 가족들이 내 편이 되어 주기 위해서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오랜만에 어머니가 사는 집에 며칠 가 있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니,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어서 와, 오랜만에 온다고 해서 음식을 좀 했다.”
장을 보는데 얼마가 들었느니, 하는 김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했다며 좋아하기도 하고, 이 나이 먹어서 며느리도 없이 아들 밥해주기 싫다며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어머니는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주방에서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힘들게 뭘 이렇게 준비하셨어요.”
“너 온다고 해서 했지, 며칠 동안 장보고 준비한다고 힘들어 죽겠다. 나이 들어 음식하는 거 쉬운 일 아니다. 하는 김에 현지네 것도 하고, 앞으로 더는 못하겠다.
그러게 남들처럼 빨리 결혼도 하고 했으면 이 고생을 안 해도 됐을 텐데, 애초에 니가 그런 희한한 능력만 없었어도, 이런 일 없이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았을 텐데.”
어머니는 반가운 것인지 타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넋두리 같은 말로 맞아주셨다.
‘오늘 차는 뭐 타고 왔니, 옆 동 사는 고모가 너 오는 줄 아는데’
아들을 걱정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체면치레를 못 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다 불렀는지 동생도 도착했다. 여동생은 앉지도 않고
“왜 잘린 거야? 뭐 실수라도 했어? 아니 일밖에 모르는 사람을 해고하는 회사가 어딨어?”
하면서 어머니보다 더 호들갑스럽게 걱정을 하면서 들어왔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절대 꺼지지 않던 형제 사이의 경쟁심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애초부터 정상은 아니었잖아, 잘됐네, 아니 잘 된 건 아닌데 쌤통이다. 안됐긴 안됐지만 오래 버텼지!
설마 진짜 미친 건 아니겠지?’
“그래서 이제 뭐 먹고 살거야?
엄마랑 나랑 걱정을 얼마나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나 속시원하게 말해봐”
“설마 아직도 다른 사람 마음이 들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것 때문인 거야? 아 답답해 뭐라고 시원하게 이야기를 좀 해봐”
“알았어, 이야기 해줄 테니까 일단 좀 앉아.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다그치는 동생을 일단은 진정시켰다.
“아휴 못 살아. 알았어. 엄마 아직 멀었어?”
하면서 주방으로 가서 식사 준비를 도왔다.
소파에 앉아서 어머니와 동생의 대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무 문제라고는 없는 어느 화목한 가정의 어느 오후를 엿보는 것 같았다. 모녀의 끊임없는 수다는 가족 이야기에서 제철 먹거리, 요리법, 이웃들의 소문 같은 주제를 넘나들었고 일상적이고 지극히 평범했다. 이런 말은 이상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유독 가족들과 섞이기 힘들었고 오늘은 골칫거리가 되었다,
“올 때 보니까, 주차장에 오빠 차 없던데, 차 어디다 댔어?”
식사를 시작하려고 식탁에 앉자마자 여동생이 물었다.
“회사 차 반납했어, 이제 그 차 안 타고 다녀.”
“아, 그래서 없었구나, 난 또...... 근데 왜 잘린 거야? 엄마가 얼마나 걱정을 한 줄 알아? 뭔데, 뭐 때문인 건데?”
“일이 좀 있었어. 걱정 안 해도 돼. 좀 쉬다가 다른 회사 알아볼 거야”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 우리가 돕지는 못해도 알아야 걱정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어떻게 사람이 자기밖에 몰라, 어릴 때부터도 온 가족이 오빠 눈치만 보게 하더니 끝도 없네,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오빠 편이야, 짤린 마당에 가족한테도 말을 못 해?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설마 또 마음이 들린다. 뭐 이런 거는 아니지? 말을 안 하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잖아, 오빠처럼 성실하고 반듯한 사람이 솔직히 말해서 짤릴 일이 뭐가 있냐고?
마음이 들린다는 사람이 가족들 답답한 마음은 왜 이해를 못 할까 답답해 죽겠네.”
“일하다가 실수를 좀 했어.”
“그러니까 무슨 잘못을 했냐고, 오빠는 가족들 마음이 다 들린다면서, 오빠는 말을 안 해주냐고, 세상 불공평하잖아.”
‘말 못 하는 것 보니까 회사에서까지 마음이 들린다면서 미친 소리를 했나 보네’
“니 말이 맞아. 마음의 소리 볼륨이 좀 커졌어, 실제 하는 말이랑 잠깐 구분을 못 해서 회사에서 실수를 좀 했어. 이제 괜찮아졌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맞네, 맞아, 언젠가 터질 줄 알았지.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온 게 운이 좋았던 거지’
“얼마나 심한데?”
“이제 괜찮아”
“딱 보니까 심하네, 전에는 이런 적은 없었잖아? 맞지?”
“어. 전에는 작게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지”
식사 준비를 하면서 어머니가 오빠랑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 부탁을 하긴 했지만, 식사가 아니라 취조를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들켜서 거북해하던 다른 사람들이 단번에 이해됐다. 덮어놓는 것 말고는 괴로워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기분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구석구석 상처를 헤집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라도 가봤어? 이제 괜찮아졌고?” 이제 어떡할 건데”
“병원은 도움이 된 적이 없었잖아. 그냥 좀 쉬니까 괜찮아졌어.마음의 소리 이제 잘 안 들려 걱정하지마, 좀 쉬고 생각해 봐야지”
“오빠!! 그건 오빠 생각이고, 병원에 가야지, 상담을 받던가, 약을 먹든가 해야지!!”
‘아 애 하나 보기도 힘든데, 오빠 뒤치다꺼리까지 못 해, 엄마도 이제 늙어서 오빠가 케어해 줘도 될까 말까인데, 못해, 절대 안 해’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너까지 고생시킬 일 없으니까, 밥 좀 먹자!”
동생의 속마음을 듣고는 버럭 신경질을 내고 말았다. 우리가 서로 도우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듣는 일은 듣는 사람이나 들키는 사람 모두에게 마음이 시린 일이었고, 항상 일을 그르쳤다.어머니의 중재로 천천히 이야기하자며 간신히 식사를 마쳤다. 오후에는 동생이 어린이집에서 조카를 데려오면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결혼이라도 했으면, 안심이 될 텐데, 여태 혼자라 그것도 걱정이고,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참!’
어머니는 이렇게 걱정을 하기도 했고,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데, 성공 못 하는 사람이 어딨나, 좀 똑똑하다고 잘난 체하더니, 한동안은 잘난 체 못 하겠네’
조카 덕분에 더는 취조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간간히 동생도 나에 대해 생각하는 이런저런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생각도 아니고 마음속까지 듣는다는 게 말만 들어도 괜히 찜찜해, 남편이 사고 친 걸 아무한테도 들키기 싫은데, 생각하기도 싫고, 아무리 오빠라도 기분 나빠. 생각을 말아야지. 마음을 듣는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동생은 생각을 들키는 것이 싫었는지, 조카를 데리고 오는 길에 토마토 노래라도 들었는지, 머릿속으로 계속 토마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카는 오랜만에 북적이는 할머니 집에 놀러 온 것이 신이 나서 동생의 주위를 돌며 아기 상어 노래를 소리 내서 부르고 있었다.
“상어다~ 뚜 루루 뚜루~ 도망쳐! 뚜 루루 뚜루~”
‘나는야 주스 될 거야!. 꿀꺽~’
“도망쳐!! 뚜 루루 뚜루~ 숨자~ 으악!”
‘나는야! 케첩 될 거야~ 찍!!’
“살았다 뚜 루루 뚜루”
‘나는야! 춤을 출 거야. 헤이!!’
“오늘도~ 뚜 루루 뚜루 살았다!!”
‘뽐내는 토마토! 토마토!!’
“살았다!! 뚜 루루 뚜루”
‘뽐내는 토마토! 토마토!!’
“살았다 뚜 루루 뚜루”
‘뽐내는 토마토! 토마토!!’
“도망쳐!! 뚜 루루 뚜루 ~ 숨자~ 으악!”
나를 향한 비난과 불만의 소리를 못 듣는 척 잘 참았지만, 둘의 계속 반복되면서, 동생이 속으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커져서 참지 못할 정도로 소리를 질러버렸다.
“토마토 노래 좀 고만 불러!!”
“누가 토마토 노래를 불렀다고 그래, 애도 있는데 왜 소리를 지르는 거야!”
“니가 머릿속으로 토마토 노래 계속 불렀잖아”
“오빠, 회사 왜 잘렸는지 알겠네, 토마토 노래를 누가 불렀다고 그래”
“니가 속으로 토마토 노래를 계속 불러서 시끄러워 죽겠어.”
“토마토 노래 안 불렀다니까 왜 사람 말을 못 믿고 오빠는 제멋대로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우리집에서 거짓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빠뿐이지, 마음까지 들리니까 우리는 감히 거짓말을 못 하잖아!”
화가 난 동생이 비꼬듯이 말했다.
“오빠는 얼마든지 제멋대로 생각하면서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몰지
정신 좀 차려 가족들 괴롭히지 말고, 이제 좀 괜찮은가 했더니 옛날보다 훨씬 심해졌네, 예전에는 재수만 없었는데, 이제 소리까지 지르네! 언제까지 오빠만 맞는 사람이야?”
동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조카는 겁에 질려 울고 난장판이 됐다.
“아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조금씩들 참아라, 애도 있는데”
어머니가 중재에 나섰으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아휴 내 팔자야, 니가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는 소리만 안 해도 우리는 평범하게 잘 살았을 텐데, 내 자식이라도 이렇게 감당이 안 되는데, 회사에서 참아줄 리가 없지.
결혼도 안 한 다 큰 아들이 미쳐서 회사도 그만뒀는데, 이제 어떡해야 하나, 병원부터 데려가야 하나?’
“어머니까지 그런 소리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어머니가 원하는 학교, 원하는 회사 들어가서 아바타처럼 살았는데, 이제 와서 미쳤냐니요. 제가 왜 시인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성공에 미쳤는지, 어머니는 그런 소리 하시면 안 되죠”
“오빠는 왜 혼자 마음대로 생각하고 가족들을 괴롭혀, 막말로 미친 걸 미쳤다고 안 하면 뭐라고 해”
“그래 너 안 미쳤다. 안 미친 거 안다. 그래도 병원은 가야지, 이대로는 어떻게 살래, 마음의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회사에서도 실수 했다면서, 지금까지는 이런 일은 없었잖아, 혹시 모르니까 병원 가보자”
‘애도 아니고, 병원 가자고 어르고 달래야 하나, 다 늙어서 무슨 고생인지 참!’
“걱정하실 거 없어요. 제가 잘 알아보고 상담받아 볼게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엄마 저거 못 고쳐, 남의 마음을 듣는 걸 어떻게 고쳐! 차라리 미친 거면 약이라도 있지!”
함께 더 있다가는 진짜 미칠 것 같아서, 그냥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한 마지막 식사였다. 성공도 가족도 어느 하나 내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아침에 모두 멀어져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