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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Jul 02. 2024

작가 되기, 첫 수업

첫 수업

집을 나서기 위해 문을 열자 내 방만 빼고(정확하게는 내가 잠시 빌린 방만 빼고),  온 세상은 눈부시게 환했다. 등을 돌려 방안을 돌아보니, 갈 곳 없는 나를 받아준 '7평짜리 아늑한 은신처'가 

갑자기 동굴처럼 답답하게 보였다. 


이제 걸어서 도서관에 가야 한다. 몇 달 전 마지막으로 타던 낡은 차도 처분해서 가까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이 요즘의 유일한 낙이다. 3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은 걸어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다. 자주 가지는 않았어도 몇 번쯤 들려서 낯설지는 않다. 지금까지 돈도 들지 않고, 하루를 쾌적하게 보낼 수 있는 도서관에 갈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오후 7시에 책 쓰기 수업이 시작된다. 3개월간 책 쓰기 수업이 진행되는데, 3개월이나 걸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월세를 2달치만 먼저 냈는데 3달을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3개월 만에 책을 한 권을 쓸 수 있다면, 책 쓰는 일이 생각보다는 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3개월을 온전히 지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걱정은 미래가 있는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습관이다.  내일이 없이 오늘만 살게 된 나는, 드디어 걱정이라는 사치를 내려놓고, 6월의 오후 햇빛 아래 서서 오늘을 위해 오늘을 사용했다. 


차를 팔고 나서는 갈 일이 없던 큰길도 지나고, 걷는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을 따라 걸으면서 최대한 천천히 걸어서 도서관에 도착했다. 

작은 방 안에 갇혀서는, 나의 개탄스러운 운명과 불합리한 세상, 사람의 욕망과 정치, 우주와 신의 법칙을 생각하느라 먹먹한 가슴과 복잡한 머리로 명료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제와 똑같은 바람과 풍경조차 쉴 새 없이 산들거리며 빛나서, 마음속 잡음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도서관 입구에는  <90일 작가 되기> 수업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책 쓰기라고 해도 될 텐데, <작가 되기>라니, 강사가 스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속물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특히 나처럼 보지도 않은 사람을 폄하하는 생각을 듣다 보면, 쉽게 미쳐버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미친 것은 아니다. 가족들과 떠나간 친구들과 여러 번 실험을 하면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 혼자만의 망상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들이 떠났으니까. 

만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실수로 마음의 소리에 대답하는 일이 가끔 있었는데, 오늘은 혼잣말을 하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     


 시골 마을에 있는 2층으로 된 작은 도서관은 특별히 세련되지도, 너무 낡지도 않고 딱 필요한 것만 단정하게 갖춰져 있었다. 하얀 스크린과 책상, 의자만 있는 3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간단한 세미나실은 이미 열려 있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도 한 둘 있었고,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도서관 사서가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름에 사인을 해달라며, 출석부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벌써 열려 있었네요.” 인사하면서 사인을 마쳤다. 

“7시에 시작하니까 편하신데 앉아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사람들도 하나둘 도착했고, 20분 정도를 남기고 도착한 강사는 눈인사만 건네고 자리에 앉아서 자료만 보고 있었다. 그다지 사교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은 또 얼마나 바쁜지 오늘 할 강의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빠르게 되새기는 소리가 들렸다. 몇 번씩 강의 내용을 반복해서 체크한다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를 헷갈리게 만드는지,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점점 조급하게 복기하기를 멈출 줄 몰랐다. 나는 이미 같은 수업을 몇 번이나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다 오셨나요? 이제 시작해도 될까요?

혹시 책 써보신 분 있으신가요? 있으시면 손 들어보시겠어요?

저희가 3개월 과정이라 긴 것은 알고 계시죠? 

오늘 첫 시간이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오셨을 테지만, 첫 시간부터 저희가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제대로 인사도 안 드리고, 소개도 안 했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작은 문학상에서 『여행작가의 기록법』으로 등단한 한미숙입니다.”

강의는 이렇게 두서없게 시작되었다. 


강사는 키가 150 초반이 겨우 되어 보이는 작고 아담한 체구에 큰 눈과 긴 머리를 하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남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40대 정도의 나이에도 큰 눈 때문인지 작은 키 때문인지 어딘지 아이 같아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눈빛과 목소리는 매우 명랑한데도, 왠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 서늘했고, 작가보다는 경찰에 어울리는 사람 같았다. 날카로운데 아이 같은 사람이었다. (코난)    


“바쁘지만, 저희 서로 인사는 하고 시작해야겠죠, 저희 인원이 총 15명으로 많지 않으니까요. 앞에서부터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시면서,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 말씀해 주셔도 좋습니다.”

모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3~40대가 제일 많았고, 5~60대도 몇 명 되었고, 20대도 두 명 있었다. 그중에는 자서전을 쓰고 싶은 사람, 경험을 쓰고 싶은 사람, 커리어를 위해서 책을 쓰고 싶은 사람, 다행히 책을 쓰고 싶은데 나처럼 주제를 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책을 완성하실 때까지 열심히 돕겠습니다.”

“3개월 안에 책을 쓰려면, 일정이 빠듯합니다. 오늘 당장 돌아가셔서, 목차부터 쓰셔야 하는데요.....”

라고 시작해서, 강의가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초고를 한 달 반 안에 완성해야 하고, 정말로, 추가 비용 없이 무료로 종이책을 완성할 수 있으며, 책을 완성한 이후에는 도서관 지원사업비로 인당 5권씩 책을 구매해 준다는 것, 책 쓰기, 표지 디자인 등 모든 과정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한 달 반이면, 원고가 완성된다는 말이 가장 반가웠다.      

강의가 끝나자 질문이 이어지다가, 사람들은 각기 마음속으로 자신이 쓸 책의 구상을 하기도 하고, 강의를 평가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모두가 조금은 어리둥절해하면서 어색하게 흩어졌다. 




해가 져서 깜깜한 도서관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걸어서 돌아가는 사람은 나뿐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걸어가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3달 동안 사용할 노트와 볼펜, 간식들을 나눠줬는데, 모두가 풍족한 세상에서 나만 말라죽어가고 있는 것이 서글프다가도, 며칠 전부터 기다려온 수업을 마쳐서 개운했다. 

첫 수업도 잘 마쳤고, 강사도 그럭저럭 마음에 들고, 갑자기 혼잣말을 내뱉어서 곤란한 상황을 맞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잘 차려입고 나와서 몇몇 사람은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회사 홍보실에서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일하던 그때 이후로 잘 듣지 못하던 칭찬을 들어서 기분도 좋았다. 


길이 한적해서 앞서가던 부부의 대화가 우연히 들렸다. 

“매주 같이 와도 괜찮아, 끝나면 깜깜해지는데 어떻게 혼자 온다는 거야?”

“괜찮아, 다음 주부터는 혼자 천천히 걸어갈게, 걱정 안 해도 돼”

“수업은 어떻게 들을 건데?”

“수업은 녹음하면 되고, 정 힘들면 선생님한테는 말해야지, 큰 비밀도 아닌데.”


부인이 남편을 걱정하는 대화였다. 남편은 키는 크지 않아도 단단하게 살이 쪄 덩치가 좋은 편이었는데, 다 큰 어른이 저녁에 집에 돌아가는 것을 왜 걱정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 자세히 들어보려는데 길가에 주차된 차에 타버려서, 운전석에 앉은 아내 쪽의 마음을 들은 것이 전부다. 

‘왜 굳이 혼자 오려는지, 말을 안 듣는지 모르겠네’ 하면서 쓸쓸한 듯한 이 마음의 소리만 남기고 차도 떠났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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