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라 -세 번째 수업
“안녕하세요. 오늘은 시작 전에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지역 홍보를 위해서 시민기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지방이라 인원이 부족합니다. 매주 목요일 글쓰기 수업 끝나고 한 시간씩 남아서 SNS나 지역 신문에 글을 쓰시거나 홍보 글을 팀별로 쓰시면 됩니다. 신청 인원이 부족해서 책 쓰기 수업 뒤로 시간을 배정했으니까, 시간 되시는 분들 수업 끝나고 시민기자 활동 신청 좀 부탁드립니다.
활동 기간은 6개월이고, 매달 활동비도 드립니다. 어려운 미션은 안 드리니까 시간 되시는 분들 꼭 좀 참여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 강의 시작 전에 시청 직원이 나와서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고 들어갔다. 시큰둥하게 이야기를 듣다가 활동비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게시물을 올리면 활동비를 준다니, 저렇게 간곡하게 부탁까지 하는데,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내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수입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란 희망 때문에, 수업 초반에는 강사님이 이야기를 하는데도 한동안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강의가 끝나고, 다시 시청 직원 두 명이 들어왔다. 출구 쪽 테이블에 앉아서 질문에 대답도 하고, 나가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시민기자 활동이 가능한지 묻기도 했다. 먼저 붙잡지 않아도 이순자 아주머니가 가장 먼저 테이블로 가서 질문을 쏟아냈다.
“저도 신청하고 싶은데, 목요일에는 보건소에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활동비는 뭐에요. 돈으로 주나요?”
“네, 매달 현금으로 입금해 드려요. 한 달 활동하시면 세금 떼고 한 18만 원 정도 받으실 거예요.”
“뭘 해야 하는데요? 어려운 건 아니죠?”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직설적으로 빠르게 물었다.
“책 쓰기 수업 끝나고, 잠깐 시간 내셔서 기사를 같이 쓰는 것이 주 활동이고요. 팀별로 기념사진이나 인증사진 찍어야 할 때도 있고 한데, 어려운 일은 없을 겁니다. 책 쓰기 수업 끝나고, 8시 10분부터 늦어도 9시 전에는 끝날 거예요. 나중에는 팀별로 시간을 따로 정해서 만나셔도 되고요”
“그래요? 그럼 일단 신청했다가 못하면 그만둬도 되나요?”
“그럼요. 일단 신청하시고, 팀원들이랑 시간 조율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간절하고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의 직설적인 대화 덕분에, 남은 사람들은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신청할게요.”
나머지 한 명의 직원도 “시간 되시면 신청하고 가세요.”하면서 나가는 모두를 붙잡았지만, 다들 빠지고 4명만 신청했다. 처음 공지를 들었을 때부터 활동비라는 말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나는, 쭈뼛거리면서 나갈 것처럼 굴다가 붙잡혀주었다. 60만 원 있는 사람에게 한 달에 활동비는 의미가 크다. 책을 완성할 시간을 벌어 줄 것이다.
“그럼 신청하신 분들, 잠깐 남으셔서 이야기하고 가세요. 얼마 안 걸릴 겁니다. 이메일로 신분증 사본, 사진 보내주시고요”
앞으로 활동내용과 필요한 것들을 간단히 알려주고 마쳤다. 시민기자 활동을 신청한 사람은 이명수, 이순자 아주머니, 강사랑, 나까지 네 명이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고 우리뿐이었다. 붙임성 좋은 강사랑이 시내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이순자 아주머니와 강사랑은 각자 차를 타고 떠났고 이명수 씨와 방향이 같아서 함께 걷기로 했다. 이명수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책은 많이 쓰셨습니까?” 이명수가 물었다.
“쓰고는 있습니다만 진척이 없습니다.”
책상에 앉아는 있지만, 무어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저도 쓰고는 있는데 컴퓨터 다루는 것이 서툴러서 배워가면서 하려니 쉽지가 않네요. 평소에 책도 안 읽고, 어린 왕자도 안 읽었었는데, 아내와 딸을 생각하니 갑자기 동화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아너 그룹 핸드폰 납품 하청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죠, 수당 받겠다고 추가수당에 야근에 뵈는 것 없이 ‘돈 돈’ 거리면서 돈만 벌었죠. 돈을 벌어다 줘야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아닙니까, 우리 아이들 미래라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주님께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셨습니다. 결혼하셨습니까?”
“아직 못했습니다.”
“뵈는 게 없어야 결혼을 하고, 결혼하고 나면, 돈밖에 뵈는게 없는 사람처럼 ‘돈 돈’ 거리면서 돈 버는 기계가 됩니다.”
진지한 이야기도 농담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재주가 있는 밝은 사람이었다. 그때, 이명수의 핸드폰이 울리면서, 기계음이 문자를 읽어줬다.
‘당 신 끝 났 는 데 왜 안 와 아 직 안 끝 났 어?
데 리 러 갈까.?’
“집에서 찾네요. 잠시 문자 좀 보내야겠습니다.”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음성으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이 빅스비 문자 보내줘.”
“누 구 에 게 문 자 를 보 낼 까 요?”
“혜정이”
“혜 정 이 에 게 어 떤 내 용 으 로 보 낼 까 요?”
“오늘 조금 늦게 끝나서 가고 있어. 걱정마. 금방 도착해”
내가 곁에 있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음성 인식을 이용해서 문자를 보내고 말을 이어나갔다.
“문자를 음성으로 보내서 당황하셨죠?”
“아닙니다. 부부 사이가 좋으신가 보네요.”
“그렇습니다. 복 받았죠. 사실 제가 시력이 매우 안 좋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데, 혹시나 더 나빠질 때를 대비해서, 컴퓨터도 배우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미루지 않고 지금 다하면서 살고 있죠.
그래서 아내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를 오다가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하는 중입니다. 낮에는 그래도 괜찮은데, 깜깜하면 바닥도 잘 안 보이고, 빛이 비치면 또 안 보이고 다 잘 안 보입니다. 덕분에 아내가 어찌나 살뜰히 챙기는지, 저보다 더 사랑받는 남편은 없을 겁니다.
하하하하”
“그래서 걱정하시는군요.”
갑자기 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지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저녁에는 바닥만 조심하면 괜찮습니다. 아이들이랑 저녁 산책도 잘 나오는데, 혼자 나가면 괜히 걱정을 하더라고요. 아마 제가 맘고생을 많이 시켰나 봅니다. 아무리 행복해도 가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데, 책 쓰기 수업 들으러 오는 날이 자유시간입니다. 하하하”
눈이 잘 안 보이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몰래 놀러 나온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눈이 안 좋으신 줄 전혀 눈치를 못 챘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처음 보는 사이에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시민기자 활동할 때 혹시 도움이 필요할까 싶어, 계획적으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무작정 신청했어요.컴퓨터 사용이 서툴러서 책 쓰기도 진도도 안 나가는데 말입니다.”
“그럼 책도 음성으로 쓰시나요?”
“책은 타이핑해서 쓰기는 하는데 고치는 것이 힘듭니다.”
“힘드시겠네요.”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고 싶은데,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는 지금 같은 상황에는 남들도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이야기를 막무가내로 드려서 죄송합니다. 수업에 남자분들이 많지 않고, 나이도 비슷해 보여서 편하게 말이 나왔네요. 저는 이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이명수의 집 근처에 다다랐다.
“혼자 가셔도 되겠습니까.”
골목은 길지는 않았지만, 어두워서 길이 잘 안 보일 것 같았다.
“그럼요. 바로 이 골목 끝 집입니다. 지금쯤 아내랑 딸이 아마 나와 있을 겁니다. 아! 저기 강아지까지 데리고 나왔네요. 다음 주에 봅시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고서, 한 걸음에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시력을 잃을 것을 대비해야 한다니, 이명수와 나, 누가 더 절망적일지를 저울질하느라 순식간에 집 앞에 와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 시력이 나빠지게 된 것일까? 무엇이 건강해 보이는 체구에 유쾌한 사람의 빛을 빼앗아 갈 수 있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신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어둠 속에 우리를 던져 넣는다. 우리는 모두 신의 재물일 뿐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게 아닐까.
그날 밤 내내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기억에 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나은지, 온전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말라 죽어 가는 것이 나은지, 누가 더 비극적인지를 비교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이명수는 아픈데는 없지만, 불행한 나를 부러워할까, 절망적인 나를 보면서 고작 눈과 바꾼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까.
가로수 터널 사이를 지나갈 때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조각난 햇빛이 유독 아름다워서 손바닥에 햇빛을 잡아보고는 했다. 절대 잡히지 않는 햇빛이 약올라 땡볕 속으로 들어가면 뜨거운 열에 다시 그늘로 돌아오게 된다. 행복과 불행도 함께 할 때만 삶이 더 아름다운 것인지, 그늘 속에서 유독 반짝이던 햇빛처럼 절대 잡을 수 없는 것인지, 그늘이 행복인지, 반짝이는 햇빛이 행복인지, 한참을 생각하다 보니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절망인 줄을 모르게 되었다.
‘빛이 있으라’
신이 말한 것처럼, 작가는 글 속에서 신이되어 어쩌면 불가능했던 반짝이는 빛을 글 안에서 영원히 반짝이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쓰는 소설 속에서는 꼭 신이 되어, 어떤 이도 신에 장난에 놀아나지 않고, 인간의 의지로 꼭 완벽한 삶을 성공하게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