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비친 포구 - 네 번째 수업
네 번째 책 쓰기 수업이 끝나고, 지역 홍보를 위한 시민기자들만 따로 남았다. 글쓰기 수업을 듣지 않는 몇몇 다른 사람들도 도착하고, 담당 공무원이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인데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꼭 만나지 않아도 필요한 미션을 수행하실 수 있도록 자료를 공유해 드릴 거고요. 필요하신 경우에만 팀별로 만나서 홍보 글을 쓰거나 영상을 제작하는 등의 활동에 참여해 주시면 됩니다.”
시민기자 활동은 두 팀으로 나눠서 작업하게 됐는데, 편의상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 4명과 나머지 6명을 한팀으로 나눴다.
매주 각자 정해진 글을 하나씩 쓰거나, 팀별로 한가지씩 취재나 글쓰기를 나눠서 하면 된다. 매주 성산시에 필요한 홍보 글을 꾸준하게 발행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번 주는 발대식 소식을 각자의 채널과 지역 신문 홈페이지에 게시하면 되는 어려울 것 없는 활동이다.
다음 주에는 팀별로 성산시의 여행지에 방문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작성해야 한다. 이순자님과 이명수는 다음 주에는 참여가 힘들다고 해서 흔쾌히 강사랑과 내가 가서 나머지 사람 몫까지 사진도 찍고 기사도 한 번에 작성해서 올리기로 했다. 우리는 지역에 숨은 명소인 오조 포구와 오조리 습지를 둘러보고 식산봉까지 소개하는 일정을 계획했다. 이곳 토박이인 이순자님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이맘때쯤 가면 낚시도 할 수 있고, 물때에 맞춰가면 물 빠진 모습을 볼 수 있고, 근처에 어떤 식당이 맛있는지까지 꼼꼼히 알려주면서 다음번에는 꼭 참여하겠다고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주말에 가면 사람이 많을 테니까 금요일 낮에 시간이 되시면 내일 가면 좋을 텐데요. 안되시겠죠?”
강사랑이 물었다.
“아닙니다. 금요일 낮, 좋습니다. 그럼 내일 가죠. 한 시쯤 오조 포구에서 만날까요?”
가장 한적한 시간에 만나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선생님들! 식대가 일 인당 8000원씩 지급되니까 같이 식사도 하시고 영수증만 제출하시면 됩니다. ”
담당 공무원이 우리의 계획을 메모하면서 말해줬다.
다음날 우리는 오조 포구에서 만났다. 오조 포구는 집에서 차로 30분쯤 떨어진 곳으로 한 번도 대중교통으로 가본 적이 없어서 거의 두시간 가령 일찍 나섰다. 가끔 가까운 드라이브를 가던 곳인데, 버스로 가는 데는 거의 두시간이 걸린다. 가난한 삶은 돈뿐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도 모자라게 된다. 성산에 온 이후 가장 사랑하게 된 장소였던 오조 포구에 잠시 들르는 것도 이제 사치가 되었다.
30분이나 먼저 오조 포구에 도착해 근처 벤치에 앉아있는데, 강사랑이 먼저 나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주차는 어디다 하셨어요?”
“버스 타고 왔습니다.”
“네? 그럼 엄청 오래 걸리셨을 텐데. 안 힘드셨어요?”
버스를 타고왔다는 대답이 당황스러운 듯, 그녀의 속마음이 들렸다.
‘차가 없나? 설마?’
“네. 오래 걸렸는데, 여행 나온 것 같고 괜찮았습니다.”
“식사는 하셨나요? 1시라서 밥 먹고 오려고 했는데, 오전에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밥을 못 먹었어요. 근처에서 식사하고 시작해도 될까요? 혹시 빨리 끝내고 돌아가셔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렇게 하시죠. 급한 일 없습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밥부터 먹어요. 사실 식당도 봐뒀는데, 거리가 좀 있으니까 제 차로 가요”
차를 얻어타기는 싫었지만, 별수 없이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어색한 침묵 사이에서 강사랑은 속으로 계속 나를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다.
‘왜 버스 타고 왔지? 차가 없나?, 대기업 직원이 왜 여기 살까?, 그만뒀나?, 뭐야? 사업하다 망하기라도 한건가?’
끊임없이 내 신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듣기 싫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사진 잘 찍으시는 편이신가요? 제가 사진은 영 못 찍습니다. 괜찮으시면, 사랑 씨가 사진을 찍으시고, 제가 기사를 쓰면 어떨까요?”
“그래도 될까요? 저도 기사 쓰는 것보다는 사진 찍는 편이 수월하거든요. 부담도 덜 되고요.”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하고, 잘 차려진 전복 솥밥을 먹고 나왔다.
돈도 없으면서, 어쩔 수 없이 2인 식사를 계산하려고 하는 찰나에 강사랑이 급하게 쫓아 나와서 대신 결제를 했다.
“사진 찍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으니까 제가 한꺼번에 영수증 제출하고 식대 받을게요. 기사 쓰셔야 하니까 귀찮은 일은 제가 대신 처리해 드릴게요.”
괜히 시청에 식대를 청구하는 것이 불편해서, 찜찜하게 밥값을 계산하려는데 센스 있게 나서줘서 다행이었다.
글쓰기 이야기도 하고, 강아지 이야기도 나누면서 오조 습지와 그 앞에 식산봉까지 사진 촬영을 마쳤다. 시민기자 활동이 대단한 것도 아니어서,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둘 다 서울에서 내려와 자리 잡은 사람이라서, 도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보기에 성산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시골살이가 얼마나 사람을 바꾸는지를 이야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사 내용도 정리가 됐다.
마지막 촬영 장소인 바다로 내려가서, 바다 쪽에서 보는 포구 사진만 촬영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식사하느라 조금 늦어진 일정 탓에, 포구 앞 물이 빠진 해변 바위에 들어가 바다쪽에서 포구 풍경을 찍으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드러나 있어야 할 바위에 얕지만 찰랑찰랑하게 바닷물이 차서 그냥 들어갈 수는 없게 되었다.
“물이 차서 사진찍기 힘들겠네요. 포구 사진은 포기하고 돌아갑시다.”
“아니에요. 지금 사진 찍어야 물에 그림자가 비치면서 사진이 더 잘 나와요. 제가 얼른 다녀올게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신발을 서둘러 벗으면서 강사랑이 말했다. 같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사진을 부탁했기 때문에 같이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럼 같이 가죠.”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물속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잠깐만요. 신발 신고 들어가시면 어떡해요. 금방 물차서 신발 다 젖어요. ”
강사랑이 나를 붙잡았다.
“게다가 톰브라운 신발이잖아요. 바닷물 들어가면 망가지니까 여기 벗어두고 가요.”
“아! 네. 그래야겠네요.”
당황해서 밍기적거리며 양말과 신발을 벗어 던져두는 나를 보고, 강사랑은 자신의 신발과 내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가볍게 첨벙거리며 나를 앞질러 갔다. 살짝 당황하기도 하고, 예정에 없이 바닷물 속에 들어와서, 처음 만났던 날처럼 다시 양철 로봇처럼 뚝딱거리며 따라갔다.
강사랑은 바짓단이 살짝 젖는 것에도 개의치 않으면서, 쪼그려 앉은 자세로 핸드폰을 최대한 수면 가까이 붙이고, 바다 쪽에서 보이는 포구의 사진을 찍었다. 포구가 바닷물에 그대로 비치면서 우리가 온 곳은 그림 같은 풍경이 되어있었다. 사진을 찍는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발등 높이도 안되었던 바닷물은 어느새 복숭아뼈 부근까지 차올랐다. 우리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바위틈에 붙은 성게며 작은 조개며 물고기들을 신기하게 들여다 보면서, 얕게 들어찬 맑고 시원한 물을 아이들처럼 첨벙거리면서 나왔다. 젖은 발을 말리기위해서, 두 명이 앉기에 딱 알맞은 좁은 포구 계단에 의식적으로 떨어져 앉아서, 맨발인 채로 생각나는 대로 아무 이야기나 떠들었다
“돌아갈 때는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오늘 저 때문에 늦어졌잖아요. 그냥 가시면 제가 불편해요.”
“아. 그러면……. 네, 감사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뒤쪽에 놓인 신발을 건네주면서 생각했다.
‘결혼했냐고 물어볼까.’
그 생각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 돌아가요.”
생각을 떨치듯 강사랑이 먼저 일어나면서 말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괜시리 불편한 생각이 들어서 내가 먼저 ‘오늘 기사를 어떻게 쓸 테니 사진을 보내주고, 소설은 어떤 내용을 쓰려는지 궁리 중’이라며 횡설수설 아무 말이나 떠들어 댔다. 그녀의 마음을 듣는 것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리가 끼어들 틈이 없도록 쉴새 없이 떠들었다. 강사랑은 친해진 것 같다면서 좋아했고, 사진과 기사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서 연락처를 교환하면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