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여행으로 친구들과 온 짧은 4박 6일의 라스베이거스 여행은 일정이 빡빡했다. 다행히도, 우리 모두 졸업 전에 취업에 성공했고, 게임만하다 보내버린 대학생활이 이제야 아쉬워져서 무작정 미국이라도 가보고 졸업하기로 했다.
다섯이나 되는 녀석들 모두 미국을 가본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여행 경험도 적어서 미국으로 가기로 했으나 어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영화에서 본 뉴욕, 워싱턴 같은 소리나 하다가 차라리 카지노도 가고, 성인 공연도 보고, 광란의 파티를 즐기자면서 즉흥적으로 라스베이거스로 왔다.
라스베이거스는 화려하고 시끄럽고 얼마든지 광란의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지만 첫 해외여행을 온 우리는 기껏 비싼 돈을 내고 클럽에서 남의 파티를 구경하는 게 다였다. 그마저도 열심히 여행계획을 짠 덕에 피곤해서 자기도 바빴다. 여행은 만족스러웠지만, 우리에게는 광란의 파티가 필요했다.
새벽같이 그랜드캐년 투어를 가기로 한 날, 모두 늦잠을 자서 출발도 못 하고 말았다. 가장 먼저 일어난 녀석이 뒤늦게 나머지를 깨웠으나 빡빡한 일정에 지친 우리는 될 대로 되라면서 점심 무렵까지 늦잠을 자다 일어났다.
붕 떠 버린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이야기를 하다가, 한 놈이 생각을 읽는 사람이 라스베이거스에 왔으니 무조건 잭팟이라며, 이럴 바에는 여행은 때려치우고, 대낮부터 카지노에 가서 돈이나 잔뜩 따자고 제안했다. 다른 친구들도 멍청하게 그런 생각을 지금까지 못 할 수가 있냐면서 당장 돈을 따러 가자며 흥분했다. 여행을 함께 온 친구들은 내가 생각을 읽는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데, 20대 남자들의 생각은 읽을 필요조차 없는 뻔한 것이었기 때문에 친구들도 생각을 읽히든 말든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거나 곤란할 때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생각을 읽어달라고 졸랐다.
그 길로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카지노로 향했다. 잭팟을 터트리러 가면서 택시비를 아끼려고, 그 더운 날씨에 20분이나 걸어가면서도 돈을 따면 영화처럼 다 뺏기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하기도 하고, 돈을 따면 어디다 쓸지 떠들었다. 마침내,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 호텔에 도착해서 촌놈들처럼 화려한 외관에 감탄하면서 카지노에 빨려 들어갔다. 잭팟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덥고 눈이 부신 여름이었던 세상은 카지노로 들어가는 순간, 다시는 월요일이 오지 않는 영원한 금요일 밤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화려하고 캄캄한 파티로 가득 차 있었다. 카지노는 완벽하게 낮의 흔적을 지운 영원한 밤의 세계였고, 20대였던 우리가 딱 원하던 곳이었다. 규모가 매우 큰 홀과 쇼핑몰이 함께 있었는데도, 일부 구역은 카지노에 처음 온 관광객들이 몰려서 매우 소란스러웠다.
우리는 자신만만하게도 관광객들이 몰려있는 구역을 벗어나서, 베팅 금액이 큰 진짜 도박꾼들의 테이블로 가고 싶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금액이 커지고 분위기도 달라졌는데, 구경이나 해보자며 패기있게 가장 안쪽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곳은 관광객들도 별로 없고 진지한 표정의 도박꾼들이 조용히 각자의 도박에 집중하는 곳이었다. 말을 하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생각조차 멈춘, 조용한 곳이었다.
정적 속에서 사람들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금액이 높은 도박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호수처럼 고요했고 이따금씩 ‘스페이드 에이’, ‘하트 7’ 같은 카드 숫자만 들릴 뿐이었다. 호기롭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알아듣는 사람도 없는데 귓속말로 물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어?’
친구들은 사람들 생각이 읽히냐며 연신 물어왔다. 나도 왠지 누군가에 들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잘 들린다면서 크게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는 잭팟을 터트리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물어물어 칩을 사고, 힘들게 적당한 배팅을 할 수 있는 포커 테이블을 찾아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았고, 친구들은 긴장되지만 흥분된 표정으로 첫 게임을 지켜봤다. 그러나 몇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시작하자마자 처음으로 받은 카드 두 장을 내려놓으며, 게임을 포기했다. 친구들은 다급히 왜 시작하자마자 죽느냐며 다그쳤다.
“왜 생각을 못 읽겠어?”
“아니 잘 들려”
“근데 왜 죽었어, 미친놈아”
“영어 발음을 못 알아듣겠어, 생각이 너무 빨라”
“아 씨 뭐라고, 생각도 영어로 한다고? 아까는 알아들을 수 있다며!”
“아까는 그냥 듣기만 했는데, 이제 게임을 하려니까 생각이 너무 빨라서 무슨 카드를 받았는지 잘 못 알아듣겠어.”
잭팟이 눈앞에 있는데, 영어 때문에 게임을 시작도 못 한다니 말도 안 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여기까지 썼을 때, 오랜만에 웃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웃어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정말 오랜만에 피식거리면서 혼자 웃고 있었다. 유치한 농담 같은 글을 쓰는 것도 웃기고. 오랫동안 바라온 것, 마음을 듣는 능력을 비밀로 하지 않고, 특별한 대우를 받거나 소외되지도 않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드디어 글 안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을 보여주기를 그토록 원했는데, 남의 마음만 보면서 살았다. 주인공처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 들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않은 저절로 튀어나오는 마음까지 들어버려서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었다.
만약 나에게도 저런 멍청한 친구들이 있었다면 어쩌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100점이 되기위해서 일일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반응하느라 반 미친놈 취급을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저런 친구들과 함께라면 굳이 비밀을 만들지 않고도 미친 짓을 해가면서, 남의 생각 따위 신경 쓰지 않고도 멋대로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소설을 시작하자마자 평생 간직해 온 비밀을 고백했고, 내가 만든 세상에서는 아무도 생각을 읽는 것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앞으로는 능력을 활용해서, 카지노에서 돈을 잔뜩 벌지도 모른다. 무작정 쓰기 시작해서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 같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다시 20대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여행을 함께하고 막말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막 첫 부분을 썼을 뿐인데, 삶이 가져다준 절망에 끝에서, 어떻게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는 변명을 하고 싶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조차 자기기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쓰는 것은 달콤한 초콜릿을 녹여 먹는 것처럼 의미 따위 필요하지 않은 그냥 행복한 일이었다. 왜 쓰고 싶은지, 왜 즐거운지 모르겠으나, 이런 유치한 농담을 쓴 것만으로도 어느 때 보다 행복해졌다.
게다가 내가 만든 주인공들이 어찌 될지가 궁금해서라도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작가가 글 안에서 신이 되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제2의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실패한 인생에 어떤 알 수 없는 의미를 부여해서, 갑자기 의미 있는 삶으로 마무리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내가 그토록 원해온 것, 나에게만 투명했던 세계를 벗어나 나를 투명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글이라는 통로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누구라도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쓰는 편지이고, 투명해진 나를 들여다보면서, 나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모든 세계가 글 안에 있었다. 글은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일이었다. 전혀 관련 없는 지어낸 이야기 안에서 습관과 생각, 과거 같은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 내 마음의 소리가 되어 이야기가 된다. 나는 사탕이라고 썼으나 사람들은 달다고 읽는 것이 글이다. 뭐라고 쓰든 사람들은 내 마음을 듣는다. 글의 재료가 나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비밀 없이 마음을 들려줄 수 있는 것이 글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인간의 운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신에 반발해서 글 안에서 신이 되어 온갖 행운과 완벽한 세계를 만들려던 분노도, 알 수 없이 글을 쓰고 싶었던 욕망도, 작가로 신이 되어, 완벽한 제2의 인생을 살려던 것도 오만이었다. 글은 또 다른 세계다. 내 영혼을 덜어서 만드는 세계,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마음으로 만든 세계를 들려주는 일이다. 지금까지 듣기만 했으니 이번에는 들려줄 차례다. 영혼을 덜어서, 글 안에서 영원히 말할 수 있고, 세상과 드디어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 진심으로 나를 믿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