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덕분에 - 다섯 번째 수업
다섯 번째 책 쓰기 수업을 하던 날에는 점심을 먹고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제 막 시작된 7월 초의 더위는 도서관의 시원한 에어컨으로 식힐 수 있을 것이고, 막 쓰기 시작한 소설도 집중해서 쓰고 싶었다. 책 쓰기 수업 전에 시민기자 활동도 해야 해서 더 서둘렀다.
평일 낮이라 겨우 차 몇 대만 자리한 텅 빈 주차장을 지나서, 시원한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다. 입구에는 이번 달 갓 나온 이런저런 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작고 평범한 로비에도 캠핑용 파라솔과 캠핑 의자를 여러 군데 놓아서 여름 분위기가 물씬 나도록 꾸면 놓았다. 딱 하나밖에 없는 세미날실 앞에는 책 쓰기 수업 광고가 여전히 세워져 있고, 문은 열려 있었지만, 불은 꺼져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서둘렀기 때문인지, 막상 도서관에 도착해서는 여유롭게 로비에 진열된 잡지나 책을 이것저것 열어보다가, 책을 빌려볼 수 있는 자료실로 갔다. 찾는 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아이쇼핑을 나온 사람처럼 오랜만에 흥미도 없는 신간들을 이것저것 둘러보고 싶었다.
평일 낮의 도서관은 조용하고, 시원했다. 자료실 입구 쪽의 복도를 제외하고는 어디나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책장들이 높게 줄지어 있었다. 열람실은 책들에 적당히 가려져 너무 밝지도 않고 적당히 어두웠으며, 책장이 끝나는 곳에는 짧은 등받이 없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서 있거나 쪼그리고 앉아 아래쪽에 책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사람이 없는 탓에 어떤 남자는 구석의 긴 소파를 차지하고 누워서 책을 읽다가 나를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각자 조용히 카지노나 교회처럼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심지어 사서조차도 자리에 앉아서 책에 빠져들어 있었다.
얼마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읽는지, 마음의 소리는 연신,
‘어떡해!
사랑하는데 왜 말을 안 하냐고!
나 같으면, 벌써 말하고 오해를 풀었겠네, 빨리 말하라고!’
애타게 주인공에게 말을 걸고 있었고, 길게 늘어서 책꽂이 사이사이에서도, 사람들은 책과 대화하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이번에 가면 나도 재밌는 일 많이 생기겠지?’
‘오 이건,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 이 책 빌려 가서 따라 만들어야겠다.’
‘3권! 3권! 3권 어딨지, 아 씨 없네, 대출 예약하고 올걸! 일단 다른 책 빌려 가야지’
작고, 평범한 시골 도서관조차 우리는 그 어느 곳보다 무한한 다른 세상에 서 있었다. 그 좁고 작은 빽빽한 서가 사이에 수백 수천의 꿈 꾸던 세상이 꽂혀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듣는 것이 이렇게 벅찬 곳이 있던가,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겨우 도서관에 돌아온 나를 타박했다.
한참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듣다가, 이 서가에 얼른 내가 만든 세상을 끼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료실을 나와 글을 쓰기 위해 열람실로 들어갔다. 열람실은 작은 편이었는데, 12개의 컴퓨터가 각각 칸막이로 나눠서 양쪽 벽을 따라 놓여 있어서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낮시간이라서 동네 어르신 몇 분이 돋보기를 쓰고 뭔가를 열심히 하시거나, 이어폰을 연결해서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었다. 도서관은 더운 여름에 시원한 도피처이기도 하다.
가운데는 컴퓨터가 없는 빈 책상이 길게 놓여 있었고 전원을 여러 개 연결할 수 있도록 멀티탭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긴 책상의 맨 안쪽에서 이순자 아주머니가 노트북을 놓고 글을 쓰고 있다가 들어오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하면서 이순자 아주머니 옆에 가서 노트북을 펼쳤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목소리를 낮춘 이순자 아주머니가 물었다.
“글을 많이 못 썼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글 써야 해서 왔어요”
이렇게 간단히 대화하고는 한참을 나란히 앉아 집중해서 글을 썼다.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가서 쉬었다가 할래요?”
“네. 그러죠”
대답하면서, 노트북을 챙겨서 같이 나왔다.
“많이 쓰셨어요?”
열람실을 다 빠져나오기도 전에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닙니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나도 그래서 오늘은 일찍 왔지, 오늘도 안 쓰면 포기하겠다 싶더라고. 소설 쓴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요?”
“맞습니다. 잘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글을 쫌 쓰니까 소설을 쓴다고 했겠지, 나는 내 이야기만 쓸려고 해도 어떻게 쓸지를 모르겠는데, 오늘 많이 쓸려고 했는데, 잘 써지지도 않아요.
아 맞다! 지난주에 오조 포구 기사 올린 것 봤어요. 글도 잘 쓰고 사진도 잘 찍고, 사진은 작가가 찍은 것처럼 잘 찍었던데요.”
“사진은 강사랑씨가 찍었습니다. 잘 찍으시더라고요”
같이 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글도 잘 썼더구먼, 다음에는 꼭 같이 갈게요. 맨날 가던 데도 그렇게 써놓으니까 멋지더구먼, 이제 비 오기 시작하면 바쁜 것도 다 끝나서 괜찮아요”
“네. 다음에는 같이 가시죠”
열람실 앞에 휴게실 대용으로 마련된 테이블 앞에 앉으려는데, 아주머니가 물었다.
“점심은 먹고 나왔어요?”
“네, 집에서 먹고 나왔습니다”
“아니, 시민기자 모임 끝나고, 책 쓰기 수업 바로 하면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먹을 걸 싸 왔는데, 혹시 몰라서 넉넉하게 싸 왔지. 같이 먹고 해요”
“아. 저는 사 먹을까 해서 준비한 게 없는데요.”
“괜찮아요. 우리끼리 나눠 먹으려고 넉넉하게 싸 왔어요. 여기 도서관 앞에 벤치에 가서 먹고 글 좀 쓰고 있으면 사람들 오겠네”
도서관에서 나와 야외에 있는 큰 나무 아래 벤치와 돌로 된 테이블로 와서 앉았다. 그새 4시가 넘어가면서 열기는 식고 바람이 불어오면서 야외에 앉아있기 딱 좋은 날씨였다. 아주머니는 가방에서, 빵과 김밥, 캔 음료 몇 개와 과일 도시락까지 꺼내 놓았다. 시민기자 활동을 하는 넷이서 먹으려고 싸 오신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 대신 가서 기사도 썼는데, 당연히 대접해야지”
“우리 아저씨 돌아가고 나서는 맨날 혼자 밥 먹는데 같이 밥도 먹고 좋네.”
“아이고, 바깥어른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셨나 봅니다.”
“네, 올 초에 돌아갔어요, 갈 때도 멋지게 갔지. 멀쩡하다가 아침에 깨우려고 보니까 갔더라고, 자다가 갔지. 내 남편이지만, 참 잘 살았지.”
“좋은 분이셨나 봅니다.”
“네. 그랬어요. 나한테만 빼고, 좋은 사람이었지, 지금도 우리 아저씨 생각하면 눈물 날 것 같아요. 우리 아저씨, 멋지게 살았지,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 농사꾼이 트럭 타고 다니면서도, 항상 흰 바지에 구두 신고 다녔으니까. 돌아가실 때까지 그래서 동네서 유명했어요”
“이 동네에서 멋쟁이로 소문나셨었나 봅니다.”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당황하면서, 적당히 대답했다. 남편을 욕하는 것인지, 그리워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아저씨는 지금 살던 집에서 나고 자라서 그 집에서 죽었지, 해외도 많이 못 가보고 젊을 때 타향살이 한번 못 해봤다고, 자기 같은 못난이가 없다고 했지만, 어떻게 사는 게 멋지게 사는 것인지 아는 사람처럼 살았지요,
원래 우리 동네 입구서부터, 노인회관까지 다 우리 땅이었거든, 근데 사업한다고 팔아먹고, 보증 서주고 팔아먹고, 이제 겨우 집 한 채랑 농사지을 하우스만 한 동 남았지, 그래도 죽기 전까지 꼬박꼬박 다방 가서 다른 사람 커피 사주면서, 젊은 아줌마들이랑 꼭 붙어 앉아서 멋지게 살았어요. 아마 가는 순간까지 후회한 적이 없었을 거야.”
“아니 그런데 보고 싶으시다고…….”
아주머니 마음을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도, 혼란스러웠다.
그리운 마음은 진심인데, 아주머니에게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니,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시집올 때는 좋았지, 다들 부잣집으로 시집간다고, 신랑이 인물이 좋다고, 부러워했지만, 갓 20살에 옆 마을로 시집와서부터 지금 사는 집에 쭉 살았어요, 시집은 부자였는데, 시부모님이 무섭고, 아이 낳고 하면서 주눅 들어 살다가 이제 좀 애들 다 키우고 살만하니까, 우리 아저씨가 돈 날리고, 바람피우고, 자식들 건사하느라, 내가 적극적으로 농사짓고, 품 팔고 하면서 먹고 살았어요.
남들 보증은 서도, 생활비는 안주더라고, 부자라고 소문은 났어도 땅만 있지 돈 나올 데가 있어야지. 그래서 돈 주는 데라면 안 간 데가 없이 벌어서 겨우 애들 키워 놨는데, 애들은 없는 집도 아닌데, 제대로 못 가르쳤다고, 부모원망을 하더라고. 내가 무식해서 몰랐지, 알았으면 어떡해서라도 해줬을 텐데, 입히고 먹이고 학교 보내는 게 다인 줄 알았지.
그래도 자식들도 다 나가 살고, 나이 드니까 미워도 우리 아저씨밖에 없더라고요. 우리 아저씨 생각나서 아직도 아침에 눈 뜨면 울고, 혼자 밥 먹으면서 울고, 지금도 글 쓰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나다가도 보고 싶더라고요. 이해가 안 되지요?
매일 혼자 밥 먹는 것이 아직도 쓸쓸하다고 하다가, 여기까지 왔네. 미안해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눈물을 참으시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아닙니다. 덕분에 저도 간식도 먹고 좋습니다. 그래도 고생 많이 시키셨는데 보고 싶으신가 보네요.”
가슴이 먹먹한 사랑은 맞는데, 온갖 고통을 제공했지만, 평생의 기억을 공유한 유일한 사랑,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아주머니의 마음은 애증도 아니고, 믿음보다도 짙은 시간만이 설명해 줄 수 있는 어려운 감정이었다.
40년 동안 끼고 있었던 반지를 빼고 나면, 반지가 없어도 반지 모양으로 손가락이 움푹 파여버린 것 같은, 몸의 일부를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이었다. 이순자 아주머니의 마음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혼자만 두고 먼저 갔냐며, 간다는 말도 안 하고, 그렇게 혼자만 편하게 갔냐며, 인사라도 하고 가지’
온통 절절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안해요. 오늘 글 쓰면서 생각하다 보니까,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다 생각이 나더라고, 그러다 보니까 먹을 것 앞에 놓고 하소연만 했네, 어서 먹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황혼을 앞두고 인생을 돌아보려는 것일까, 돌아가신 남편을 생각하면서 사랑의 편지라도 쓰시려는 것일까, 아니면 적적한 시간을 글로 채우려는 것일까? 갑자기 다른 사람은 왜 책을 쓰렸는지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러면, 책은 왜 쓰기로 하신 겁니까?
“글쎄요. 우리 아저씨 돌아가고 얼마 안 있다가. 미뤄뒀던 허리 수술을 했어요. 큰 병원으로 허리 수술하러 가는데도, 딸은 멀리 있어서 못 오고, 아들은 일하느라 못 오고, 막내는 애가 어려서 못 오고, 동의서를 써야 하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별수 없이 애들한테 전화를 했더니 지들끼리 서로 못 간다고 전화를 돌리다가 아들이 와서 동의서 쓰고, 수술 끝날 때까지 겨우 있다가 간병인 붙여주고 가더라고. 수술 끝나고 의사가 설명을 해줘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간병인도 찾으면 어디 가고 없고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아저씨라도 있었으면 따라와서 핀잔이라도 줬을 건데, 하면서 매일 울었지. 지금도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려 그러네.”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수술하고 나니까 이제 몸 성할 날도 얼마 안 남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순자 아주머니는 아저씨를 그리워할 때보다는 담담하게 말했다.
“남편이 살뜰히 챙겨주지는 않았어도 자식들 나가고는 같이 별말 없이 밥 먹고, 옛날이야기도 하면서 살았는데, 먼저 가고 나니 매일 눈물만 나고, 그러다가 아버지 생각이 나더라고요.”
도서관 입구 쪽에서 아주머니 뒤쪽으로 걸어오는 이명수가 보였다. 이명수가 우리를 지나치지 않도록 일어나서 불렀다.
“이명수님, 이쪽으로 오세요”
“다들 일찍 오셨네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십니까.”
“우리는 책 쓰려고 일찍 왔는데, 많이는 못 쓰고, 떠들고 있었어요.별 이야기는 아닌데, 책을 왜 쓸 생각을 했냐고 물어서, 옛날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 생각나서, 그래도 막내딸이 편하게 살지는 못했어도, 좋은 맘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쓴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아주머니가 이명수를 쳐다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설명했다.
“아버님이 막내딸이라서 귀하게 키우셨나 봅니다.”
“네. 그랬지요. 옛날에는 이 근방이 다 촌이라서 신작로도 없었잖아요. 명수씨 여기 사람이죠?”
“네 여기서 나고 자랐죠. 그래도 저 어릴 때만 해도 다 포장돼서 지금이랑 별 차이는 없었어도 촌이었죠”
“나 어릴 때는 신작로도 없었어요. 비 오면 신이 다 빠져서 학교 가기도 전에 엉망이 된단 말이야, 그러면 아버지가 학교 가라고 업어서 큰길까지 데려다주고, 학교 다녀오면은 할아버지가 나무 그늘에서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집에 갔지.
올 초에 우리 아저씨가 돌아갔거든, 구박도 많이 하고, 바람도 피우고, 돈도 날리고 할 수 있는 고생은 다 시켰는데, 우리 아저씨 가고 나니까 먼저 간 것이 원망스럽고, 보고 싶어서 아침저녁으로 울어요. 내가 요새.”
아주머니는 여전히 아저씨를 원망하는 말을 하면서도 그리운 듯이 말했다.
“아버지가 부잣집으로 시집보낸다고 골라서 보냈는데, 엄한 시댁살이, 남 같은 남편 살이, 매일 같이 밭에서 일하고, 60 넘어서까지 품팔이하라고 그렇게 학교 갔다 오는 나를 기다리지는 않았을 건데, 정 없이 구박만 하던 남편 없다고 우는 나를 보면,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실까 싶어서 책을 쓰기로 했지요. 잘난 사람으로 살지는 못했어도, 남들한테 피해 안 주고, 손해 보면서 우리 애들 키우고 살았어요.
평생을 우리 아저씨 밥 차려줄 생각만 하고 살다가, 막상 내 밥을 내가 차려 먹어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나 먹으려고 밥 차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이 살았던 거야. 이제부터는 어릴 적 꿈이었던 글도 쓰고, 나를 위해서 살아야 우리 아버지한테도 할 말이 있겠다 싶었지요.”
“아버님이 책 쓰시는 줄 아시면 좋아하셨겠습니다.”
이명수는 따뜻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일만 하다가 굽어버린 인생이지만, 우리 아버지 이야기도 쓰고, 우리 애들 이야기도 쓰고, 내가 좋아하는 기특한 꽃나무랑 내가 잘 아는 밭농사 이야기도 쓰고 싶었지요.”
“쓰실 이야기가 아주 많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또 쓸려니까 다 부끄러운 이야기밖에 없어요.
처음에는 다 쓰면 부끄러워서 어떻게 쓰나 싶었는데, 시집살이 하던 거, 남편이 바람피운 이야기, 빚져서 땅 팔 때도 죽을 것같이 싫었는데 지금 보니 다 좋았더라고요,
드라마 보면 제일 재밌는 때가 싸우고 소리 지를 때잖아요. 영화도 보면 귀신 나올 때나 나쁜 놈이 다가올 때, 그때가 제일 재밌잖아. 살면서 어려울 때가 제일 재밌는 때더라고요.”
“맞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보는 사람도 재밌습니다. 다들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다 그러고 삽니다. 그래서 재밌는 거예요. 저도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인생이 드라마 같아요 하하하”
듣고 보니 그랬다. 드라마 같지 않은 인생은 없었고, 주인공이 아닌 인생도 없다.
“명수 씨는 아직 한창때니까 일도 많고 탈도 많은 거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인생은 60부터죠.”
“아니야, 나는 영화로 치면 불 켜지기만 기다리면서 자막이 올라가는 그런 때라니까, 이제 재밌는 것도 없고, 힘든 것도 없고, 싸울 남편도 없고, 자식들도 눈치 보이고, 불 켜지기만 기다리는 거지 영화 끝났으니까 빨리 나가려고, 인생도 그런 거지. 죽을 듯이 싸우고, 어떤 때는 좋아 죽고, 하면서 살았는데 불 켜지니까 영화였던 거지, 지금 내가 딱 그런 기분이 들어서, 책을 꼭 쓰고 싶어요. 어차피 사는 게 드라마 같은 거라면, 뻔한 일일 드라마라도, 개봉은 해야겠다 싶은 거지.”
“이미 작가님 같으신데요. 말씀을 너무 잘하십니다. 책 완성하시면 꼭 사겠습니다.”
“에휴 말만 많고 정작 책은 못 썼어요. 이번 달에 비 오기 시작하면 매일 써야지, 아직은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집에 못 붙어 있겠더라고요. 명수 씨는 책 많이 쓰셨어요?” 이순자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럼요. 쓰기 시작하니까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꽤나 썼습니다. 애초에 저는 동화라 많이 안 써도 되니까요. 우리 딸한테 아빠는 책을 써야 한다니까, 딸이 옆에서 음료수도 따라주고 벌써 작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아주 가정적인 아버지인가 보네, 요새 젊은 아빠들은 다정하기도 하더라고 그런데 이번 주 기사는 우리 뭐 써야 해요? 정작 중요한 것을 까먹고 있었네! 명수 씨가 맞장구를 쳐주니까 책도 안 쓰고 말로 다 해버렸네 ㅎㅎ”
“오기 전에 제가 내용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이번 주에도 외부 활동을 나가야 하더라고요. 디저트, 아이스크림, 향초 만들기 같은 활동을 체험하는 천도복숭아 농장 체험 시설에 다녀오면 됩니다. 놀러 가는 기분으로 가도 되겠던데요.”
내가 공지사항을 보고 온 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줬다.
‘우리 딸이랑 가면 좋겠다.’
말이 끝나가도 전에 이명수는 딸 생각부터 했다.
“아이들이 하기 좋은 체험 같은데 가기 전에 문의해서 자녀분도 같이 데려가시죠.”
이명수의 마음을 듣고 자연스럽게 함께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그가 시원하게 답하면서 다음 주 일정도 정해졌다.
“그러면, 제가 예약은 맡아서 하겠습니다.”
잠시 후 강사랑도 도착하면서, 다음 주에 천도복숭아 체험농장에 갈 계획을 마저 세우고, 책 쓰기 수업을 듣기 위해 도서관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