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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Jul 23. 2024

무료한 영혼을 위한 교회

 

오랜만에 나들이를 다녀와서인지강사랑과 보낸 시간이 미묘한 긴장을 만들어서인지집에 돌아오자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었다알 수 없는 의욕이 생겨서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소설을 쓰겠다고마음을 먹은지 거의 한 달이나 지났지만변변찮게 쓰지는 못하고 있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을 나와 비슷하게 생각을 읽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나와는 다르게 가까운 사람과 비밀을 공유한다인물은 설정했지만어떤 사건을 만들어가면서 이야기를 써야 할지는 정하지 못했다몇가지 짧은 에피소드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마음에 드는 전개를 만들지 못하고 계속 새로 쓰기만 하고 있었다작가로 글 안에서 신이 되어서세상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을 읽는 사람이 성공하는 스토리를 써야겠다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었지만다른 사람 생각을 읽어도 바꿀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아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생각을 읽어서 유리한 점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생각을 읽는 능력은 별로 쓸모있는 능력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의 생각은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대부분 읽을 줄 알고,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은 쓸모가 없다게다가 쓸모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진짜 쓸모 있는 생각은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내용이 많다정말 쓸모 있는 것은 생각보다는 행동이다.     


 주인공의 삶을 성공시키려면 생각을 읽는 것이현실적으로 쓸모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생각을 읽는 능력이 쓸모 있는 곳이 어딜까?그동안 마음을 듣는 것이 유리했던 곳은 식당 정도밖에 없었다시끄러운 식당에서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도 쉽고 빠르게 주문을 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현실에서 쓸모 있었다음식 메뉴를 묻지 않고 마음에 들게 주문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거창해보이는 능력의 실체다그러나 그것조차 쉽지 않다사람의 생각은 구름 같아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모양을 바꾼다마음은 간단한 음식 메뉴를 고를 때 조차 금세 변덕을 부린다.      


직장 생활에서는 마음을 듣는 것이 조금은 유리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세상 모든 일에는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균형이 작용하는지마음을 듣는 능력이 쓸모없는데도 부작용이 있다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사회생활에 조금 유리한 대신에상처가 되는 말을 걸러 들을 수가 없다비판의 말싫어하는 사람의 말들불평같이 사람들이 입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날 선 말들을 다 들어야 한다


덕분에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틀 안에 갇혀서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항상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능력있고친절하고센스 있는 사람으로 사느라 내가 누군지 잊은지 오래다소설 속 주인공만은 특별한 능력을 잘 활용해서 성공시켜야 한다생각을 읽는 것이 유리한 어떤 상황이 분명 존재할 텐데.     


생각났다카지노였다도박을 즐기는 편은 당연히 아니고심지어 규칙도 잘 모른다적당히 아는 사람들과 여행 중에 유명한 카지노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일행들은 간단한 카드게임도 모르는 나에게 복잡한 규칙을 설명해 주면서경험 삼아 게임을 해보라고 권했다별생각없이 구경삼아 따라나섰는데 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화려한 카지노에 들어서면여행의 흥에 취한 사람들을 따라 붉은 카펫이 깔린 바닥과 호화로운 실내에 감탄하며 자연스럽게 넓고 환한 도박장으로 흘러들게 된다영화 속에서 본 다양한 카드게임이나주사위 게임들이 테이블 위에서 쉴 새 없이 진행되고 있고다른 쪽에는 화려한 슬롯머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거대한 홀 안에 앉을 곳이라고는 게임중인 테이블이나슬롯머신 기계 앞에 놓인 의자뿐이다그조차도 도박에 관심이 없는 관광객이 오래 앉아서 쉬지 못하도록높고좁았다피곤한 관광객들은 짧은 게임을 몇 번 하거나 호텔과 카지노 구경을 끝내고무료 음료를 한두 개 챙겨 들고는 쉴 곳 하나 없는 호화로운 카지노를 빠르게 빠져나간다카지노가 호화로운 것은 곤충을 유혹하는 식충 식물같은 것이다대부분은 화려함에 이끌렸다가도 카지노는 이런 곳이구나!’하고 빠져나가지만너무 깊숙이 들어간 몇몇만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카지노는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는 흥분의 도가니 같으면서도도박꾼들이 방해받을 만큼 시끄럽거나 산만하지 않다안쪽에 위치한 고액 배팅 테이블들은 관광객이 둘러보기에는 너무 멀리 위치해 있어서오히려 인적이 드물고어떤 경건한 종교적 장소라도 되는 듯 고요하기까지 하다.

영혼을 걸고 운을 시험하지 않으려는 자에게는 잠시 쉬어갈 의자 한 칸도 내어주지 않는 곳수많은 관광객을 홀리듯 불러들여서 그중 가장 무료한 영혼을 낚아채는 통발 같은 함정그곳이 카지노였다.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나에게카지노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수능 시험장같이 벌레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곳이라 하더라도사람이 많으면 마음도 많아서항상 시끄럽다그런데 카지노는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경건한 곳이기라도 한 것 마냥 고요했다관광객들과 들어갈 때는 흥분해서 모두가 소리 내서 떠들어댔고마음의 소리도 매우 시끄러웠다그런데 카지노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마음의 소리가 잦아들었다생전 처음 가는 카지노에서 도박을 해 볼 계획을 세우던 관광객들도자주 카지노를 드나드는 도박꾼들도심지어 유니폼을 차려입고 여러 가지 업무를 하는 직원들까지 마음을 잃고마음의 소리를 내지 않는 곳홀린 듯이 무념무상에 빠져들어 마음까지 잃게 되는 곳이었다.

     

이 무렵이 마음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머릿속이 항상 시끄러워서 교회에 자주 갔는데교회에서만은 화난 사람도투덜거리는 사람도 별로없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간절하고 고요하게 소원을 빌었다화려한 카지노 안의 간절하고 경건하기까지 한 마음의 소리들은 교회와 꼭 닮아 있었다간혹 정적 속에서 수를 읽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간간히 절망적 푸념이나승자의 환호가 이따금 들려온다는 점만 약간 달랐다심지어그들의 소원까지도 똑같았다.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기도는 카지노와 교회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제발

한 번 더

젠장

 외마디만 남은 카지노는 마음을 잃은 자들이 오직 행운을 기도하는 성전이었고경건한 마음으로 교회에 가는 사람들처럼길을 잃은 사람들이 안식을 얻는 공허한 이들의 성전이었다


일행들의 권유에 포커게임 중 홀덤인가 하는 게임에 참여했는데대부분의 도박꾼이 실제로도 마음으로도 침묵하고 있다가패를 받는 순간에만 짧고 간결하게 패를 읽거나

스페이스 7’

하트 3’ 

젠장!’,‘좋아!’, 

같은 짧은 감탄사를 속으로 외쳤다


나는 게임의 룰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다른 플레이어들의 감탄사를 들으면서 배팅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게임을 이겼다같이 간 일행들이 매우 신기해하면서도박에 재능이 있다며 이런저런 테이블마다 데리고 다니면 게임을 시켰다당연히 다른 사람의 마음과는 상관없는 룰렛이나주사위 게임은 지는 수가 더 많았고다른 손님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카드게임은 생각보다 쉽게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일행들은 카드게임에 재능을 타고난 것 같다면서 적당히 돈을 딴 뒤에 자신들이 이긴 것처럼 희희낙락해서 돌아왔다나는 카드게임에 이긴 것보다도 고요하고 경건하기까지 한 그곳의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한동안 카지노가 그리웠었다   

  

카지노의 테이블 위에서는 마음을 듣는 능력을 유용하게 쓰는 재미도 있었다한동안 기회만 되면 다시 한번 카지노에 가보고 싶었지만한국에서는 카지노에 가기가 쉽지 않아서 잊고 있었다소설 속 주인공이 생각을 읽는 능력이 실용적인 곳을 생각하다가카지노에 갔던 날 100달러를 바꿔서 500달러를 벌어 나온 것이 기억났다생각을 읽는 능력이 그 어떤 곳보다 실용적인 곳카지노에서 소설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소설의 방향을 정하고 나니처음 책 쓰기 수업을 신청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두 번째 인생을 얻은 사람처럼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어떤 일이 일어날지모든 것이 궁금하고 설렜다다시 백지가 된 도화지에 이번에는 실패 없이 아름다운 그림만 그리겠다고 다짐하면서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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