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 죽기 위하여 - 7 번째 수업
“안녕하세요? 한 주 잘 지내셨어요!
글은 좀 많이 쓰셨나요? 이제 글쓰기가 좀 익숙해졌다 싶으시죠? 오늘은 시작 전에 글쓰기 일정 먼저 확인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두 달 안에 원고를 완성해야 하는 것 기억하고 계시죠? 이제 원고를 마무리할 시간이 2주 정도 남았습니다. 가능하시겠죠?
반 정도 쓰신 분들은 지금 페이스대로 쓰시면 완성하실 수 있고요. 1/3 정도 쓰신 분들은 조금 서둘러서 쓰셔야 합니다. 초고 쓰기 시작하면서 목차도 쓰고 글쓰기에 적응하느라 속도가 잘 안 났던 것인데, 후반에는 쓰는 속도가 좀 더 빨라지게 됩니다. 쓰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으신가요?”
한미숙 작가는 수업을 하면서 점점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어쩐지 점점 죄인이 되어갔다. 일정을 설명할 때는 그때까지는 절대 안 된다고 다들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지만, 강의실은 정적만 흘렀다.
수업 시작 조금 전부터 비가 왔기 때문인지 처음에 15명으로 시작했던 책쓰기 수업은 이제 10명이 겨우 넘는다. 이제 글쓰기가 재미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이제 글쓰기는 무거운 어떤 의무가 되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항상 맨 앞에 앉아서 열심히 메모를 하던 노년의 남성이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글이 생각처럼 잘 써지지 않습니다. 잘 쓰고 싶은 욕심만 들고, 마음만 복잡합니다. 잘 쓰는 요령 좀 알려주십시오.”
“어디서부터 설명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일단, 이 질문을 먼저 드려볼게요. 첫 책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으시거나, 불후의 명작을 쓰고 싶으신가요?”
“아니요.”
대답과 함께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글은 잘 쓰고 싶으시죠?”
“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은데, 내가 글을 잘 쓰는 일은 쉽지 않고요. 사실, 글은 자신의 경험을 넘기 어렵습니다. 보통 생각할 때 잘 쓴 글은 좋은 표현이 많아서 문학성이 높은 글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이 감동적이던가요? 대부분 어렵고 지루하게 느끼기가 쉽죠. 만약 노벨상을 노리시거나, 불후의 명작을 쓰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면, 문학성, 좋은 표현은 잠시 잊고, 마음으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은 놀랍게도 숨기지를 못해서, 작가의 영혼을 담거든요. 꼭 문학적으로 뛰어나지 않아도, 잘 쓴 글이 아니라도 감동을 줄 때가 있습니다. 할머니들 글자를 막 배워서 쓰신 시나, 편지 같은 거 보면 눈물 나잖아요. 굴곡진 인생으로 저희가 할머니들을 이길 수 있겠어요? 거기에 글자 막 배워서 처음 쓴 글은 마음을 얼마나 차곡차곡 잘 담았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눈물 나는 거죠.
글은 재주로 쓸 수 없습니다. 항상 우리보다 더 똑똑해서 얕은 재주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 있거든요. 마음으로 써야 하죠. 그리고 우리 책은 보는 사람이 적을 수 있잖아요. 그럼 돈도 못 벌고, 인기도 없는데, 마음을 덜어서 책으로 만들어야 우리가 원하던 꿈이 이뤄집니다. 맞는 거 같으신가요? 잘 쓰려는 마음 내려놓으시고, 저희, 투박하게 마음으로 써요. 마음으로 쓰는 글의 힘을 믿으시면 됩니다. 그 대신에, 매일 쓰셔야 하는 것 잊지 마시고요, 매일 쓰실 거죠? 아셨죠?”
마음이 텅빈 사람은 어떻게 써야 하나 생각하며 수업이 끝났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아직도 비가 오고 있었다. 강사랑과 이순자 아주머니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이명수가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다면서 비가 그칠 때까지 글을 쓰고 가겠다고 했다. 나도 마음 불편한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이명수와 글을 쓰다 가겠다고 남았다.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열람실은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공용 컴퓨터를 켜고 나란히 앉았다,
“저는 사실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명수가 고백하듯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귀신 같은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순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세상에 나 혼자 일리가 없다!’
“귀신일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어떤 세계,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냥 보이게 된 건가요? 언제부터 그럼?”
“한 달 전부터 갑자기 생겼습니다.”
“아 그럼, 갑자기?”
놀라서 묻고 있는데, 이명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자 기 야 왜 안 와 아 직 안 끝 났 어?
비 오 니 까 데 리 러 갈 게.”
여전히 기계음이 문자를 읽어줬다.
“봐요. 이렇게 잠시도 자유시간이 없다니까요. 하하. 들어가 봐야겠네요. 비가 안 그치니까 태워다드릴게요. 이 이야기는 다음에 마저 들려드리죠”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두고, 이명수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잠시 후 도서관에 도착한 차 안에는 그의 아내와 두 아이들, 강아지까지 타고 있었다. 이명수는 누구보다 많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혜인이. 안녕!”
혜인이가 신이 나서 아는 척을 했다.
“엄마! 그때 이 아저씨도 아이스크림 만들러 같이 갔었어! 그쵸? 아저씨!”
“응. 같이 갔지”
반갑게 대답했지만, 그 소리가 묻힐 정도로 시끌벅적한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가는 모습을 빌라 현관에서 잠시 서서 바라보다가 쥐새끼처럼 재빨리 누가 볼 새라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딱 한 명일 리가 없다. 다른 사람도 능력을 가졌다면, 나는 최소한 미친놈은 아닐 수 있다. 집에 들어와서도 온갖 생각이 밀려들어서 도통 뭔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가족과의 다툼, 집, 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만 생각할 수도 없고, 그저 시간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와중에도, 이명수가 가진 특별한 능력에 대한 궁금증도, 절망의 틈을 비집고 간간히 튀어나왔다.
지금에 와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도 있을까. 그나마 안정적으로 이 집에 있을 수 있는 날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은 보는 대로 보이는 법이라고 했지만, 선택지가 남지 않은 내게, 긍정적으로 세상을 볼 힘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지금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절망하지 않고 글쓰기를 서둘러서 작가가 되는 것뿐이었다. 모두의 마음을 들을 수 있지만, 세상에 단 한명도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나야 말로 책을 써야 한다. 마음으로 쓰고, 마음을 담는 것이라면 나보다 더 절실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왜 쓰고 싶은지 알 수 없었지만, 마음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첫 책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다면, 누군가 내 마음을 들어주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잠들 수도 없는 이 밤에, 글쓰기 말고는 할 만한 것도 없다. 어쨌거나 책상에 앉아 피곤에 지칠 때까지 글이나 쓰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사치이기 때문이다.
어젯밤 거의 동이 틀 무렵까지 글을 쓴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아침부터 빌라 단톡방에는 새 집주인이랑 통화한 이야기와 각자의 사정, 푸념들이 몇백 개나 공유되어 있었다. 이 건물 전체가 불안에 휩싸였다. 집에 있기는 힘들어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기로 결정하고 집을 나섰다. 눈뜨자마자 집을 나섰는데도, 벌써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도서관 열람실에는 이미 이순자 아주머니가 와 계셨다. 옆에 나란히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강사랑이 들어왔다.
“어머 두 분도 글 쓰러 오셨어요? 저도 일 일찍 마치고 글 쓰러 왔어요.”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는 한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아이들이 학교를 마쳤는지 우르르 열람실로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고는 속닥이면서 무언가를 하다가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밖에서 누군가를 찾으러 들락날락하기도 하고 소란스러워졌다.
“얼마 쓰지도 못했는데, 정신없어서 못 쓰겠어요. 가야겠네요.”
하면서 이순자 아주머니가 일어났다. 강사랑도 덩달아 일어나며 말했다.
“저도 집중이 안 되는데, 같이 저녁이나 드시러 가실래요?”
우리 셋은 다 같이 나와서 가까운 바닷가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갔다. 겉보기에는 단독주택처럼 보이는 2층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살리려고 바다 쪽을 모두 창으로 만들어서, 넘실대며 움직이는 거대한 바다 그림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창가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면, 사람 뒤로 바다가 꽉 차서 비현실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여자들끼리는 이야기가 잘 되는지 강사랑과 이순자 아주머니는 글쓰기 이야기로 시작해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종잡을 수 없이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우리 앞집 아줌마도 다리 수술을 했어, 근데 수술이 잘못된 거야. 다른 데는 멀쩡한데, 다리가 아파서 못 걷게 된 거야. 그래서 자식들이 요양원에 보내서 한 달 있다 왔거든, 이제 괜찮아져서 온 건 줄 알고, 들여다보러 갔지. 그랬더니 아직도 다리가 성치 않아서 앉아서 밥 해먹고 있는 거야. 다리 좀 낫고 오지 왜 벌써 나왔냐고 했더니, 요양원 갔더니 다들 오늘 내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까 서럽고, 금방 죽을 것 같아서 못 견디겠어서 나왔다는 거야.
안쓰럽더라고, 남 일 같지 않고, 근데 이번 주에 우리 선생님이 첫 책으로 이루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나도 이제 아저씨도 없고 한데, 우리 애들 힘들게 안 하고 요양원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만약에 요양원가면 서러워 안 하고, 내가 쓴 책 일일 드라마같이 머리맡에 놓고, 울었다 웃었다 할려고, 그러다 치매라도 오면 하루종일 이 아줌마는 누구길래 이렇게 험하게 나랑 똑같이 살았나 하면서 보려고요.
그때는 내가 쓴 책이 제일 재밌지 않겠어요?”
“아니 왜 벌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니 앞집 아줌마도 아직 젊은데 너무 일찍 요양원을 갔다 오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요양원 가면 그러겠다는 거지~
하여간, 앞집 아줌마한테 가서 요새 책 쓰느라 바쁘다고 했더니, 너무 부러워하는 거야. 자기는 무식해서도 못 쓰지만, 이제는 앉아있기가 힘들어서도 못쓰겠다는 거야. 책도 건강할 때 써야 하는 거더라고.
책 쓰려고 앉아있기 힘들지 않아요?”
“맞아요. 저도 힘들어요.”
“우리 아저씨처럼 멋지게 사는 것이 뭔지 몰르고, 살면서 반장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죽을 때는 멋지게 죽어야지, 작가로 죽으면 멋있잖아.”
“어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중에 그렇다는 거지.”
“맞아요. 작가가 멋있기는 하죠.”
창밖으로 넘실대던 바다 위로 어느덧 석양이 지고 있었다. 식사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순자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내일 아침에 비가 많이 올 것 같아서 해지기 전에 하우스 창문 닫으러 가야겠네. 젊은 사람들이 같이 밥 먹어줘서 고마워요. 천천히들 먹고 가요. 나는 먼저 갈게요.”
인사할 틈도 없이 급히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가셨네요. 소설은 많이 쓰셨어요?”
아주머니가 가고 난 빈자리에 정적이 멋쩍어진 강사랑이 물었다.
“지난주에 집에 일이 있어서 많이 못 썼습니다. 이번 주부터 속도를 내볼까 합니다. 사랑 씨는 많이 쓰셨나요?”
“거의 다 마무리 돼가고 있어요. 반려견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민감한 문제도 좀 있고, 표현 같은 것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더라고요. 외국 자료까지 찾아보면서 쓰니까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하나씩 정리하면서 저도 공부가 되고 좋더라고요. 책 쓰기를 잘한 것 같아요.”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나중에 잘 될 때를 생각해서 표현도 바꾸고, 절대 발목 잡힐 일을 안 만들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책이 있는데, 설마 동유럽에서도 안 팔린 책을 설마 누가 알아보겠어. 일단 마무리하고 생각해야지. 아이디어를 빌려 쓰는 것뿐이니까. 다시 쓰는 건 나잖아. 번역해서 매끄럽게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고생한 만큼 책이나 잘 팔렸으면 좋겠다.’
강사랑은 표절을 자기 합리화하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데, 현실이 암담해서였을까, 기회가 절박해서일까 세상과 타협하고 있었다.
“아 외국 자료까지 찾아보면서 글을 쓰고 계시군요.”
살짝 비꼬면서 대답했으나, 강사랑은 오히려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오랫동안 알아 온 반려견 협회 협회장님이 계시거든요. 훈련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분인데 지난주에 뵀을 때 인사드리면서 책 쓰고 있다고 했더니 나중에 추천사를 써주시거나 추천해주실 것 같더라고요. 다 쓰고 나서 정식으로 부탁드려보려고요. 아마 그럼 책도 잘 팔릴 것 같아요.”
‘애견 행사에서 협회장님을 급하게 쫓아가서 명함도 드리고 인사드릴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거절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관심은 없으신 것 같지만, 책 나오면 가져와 보라고 했으니 찾아가 보기라도 해야지, 그런 분이 추천사 써주실 리는 없겠지만, 말이라도 해보지 뭐.’
강사랑은 유명인이 친한 사람인 척했지만, 상대는 강사랑을 모르는 것 같았다. 긍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꿈에 취한 것인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왜 이런 쓸데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등대 앞에서 솔직했던 강사랑과 허영 때문에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거미가 집을 튼튼하게 짓기 위해서 든든한 가지를 찾듯이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강사랑은 스스로 든든한 가지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