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소박한 사람이었다. 큰 욕심도 없고 남들 사는 것처럼만 살기를 바랐다. 남들 사는 것처럼 아이들 잘 크고, 가끔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크게 바라는 것 하나 없는 소박한 행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경쟁심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하고, 반장도 했는데, 공부 잘하는 것 다 소용없더라. 공부 못해도 잘만 살더라.’면서, 이제는 연락도 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오랜 친구들과 끊임없이 경쟁했다. 남들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서.
옆집 아주머니가 피아노를 산적이 있었다. 우리집에는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머니도 피아노를 샀다. 그래서, 우리도 피아노 학원에 다녔고, 윗집 아주머니가 전축을 사는 바람에 들을 음반도 없는데 전축을 샀고, 관심도 없던 수족관을 사는 바람에 주말마다 수족관 청소에 동원 되어야 했다.
그래도, 완벽하게 남들처럼 살 수는 없었다. 우리는 우리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남들처럼 살 수는 있지만, 그들이 될 수는 없었다.
사실 나는 어머니를 꼭 닮았다. 어쩌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이 능력은 어머니에게서 왔을지도 모른다. 능력이 없어도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았다.
‘윗집 아들이 서울대를 갔다더라.’, ‘누가 차를 샀다더라.’, 같이 동네에 떠도는 가십들을 모으는 능력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었고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어머니가 원하는 만큼 남들처럼 살기는 힘들었다.
어머니는 현명하게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보여주기 싫은 것이 있다면,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있거나,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방법이 있다. 최대한 화려하게 보여서 숨기고 싶은 것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방법을 주로 썼다. 언제나 차림을 신경 썼고, 남들 하는 것은 지지않고 다 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완벽하게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았다.
시선을 돌리는 것은 대충 아는 사람에게는 잘 통하지만, 가족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외도나 우리가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것은 숨길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다. 당연히 서울대에 갈 수 없는 성적이었는데도 서울대에 이미 합격한 것처럼 자랑해댄 어머니 덕분에, 대학에 입학하던 해 명절에는 할머니 댁에 나는 따라갈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 장학금 받으려고 지방대에 갔다는 거짓말을 내가 보는 데서 아무렇지 않게 하셨다. 다 나를 생각해서 어머니가 대신해주는 변명이었다. 결혼이 늦었던 동생은 한참동안 명절에 시골에 내려갈 수 없었다. 우리가 잘 돼야 하는 이유는, 물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서였지만, 없는 체면을 차리기 위한 것임을 숨기지도 않았다.
집안 곳곳에 함께 찍은 사진으로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사실은 남들처럼 살기 위해 떠난 싸움만 가득했던, 어머니만 즐거웠던 여행들이었다. 그 사진들은 집안 곳곳에 앉은 오래된 흉터 같은 것이었는데도, 손님이나 친척들이 올 때마다. 어머니는 즐겁게 그때를 자랑하고는 했다. 오래된 상처로 가득한 집안은 과거에 갇혀버린 듯 답답해서 잠을 이룰 수 없다가, 새벽녘이 다 되어서 겨우 잠들었다.
이른 아침 잠결에 천천히 삐그덕 거리는 소리들이 간간히 거슬리게 들려서 잠이 깼다. 한참이나 그 소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고 비몽사몽 하다가 어머니 방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아차렸다. 느리고 조심스럽게 드르륵 거리거나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분주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어머니 방을 노크하면서 물었다.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어머니가 대답했다.
“벌써 일어났어?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나 때문에 깼나 보다.”
“들어가도 돼요? 뭐 하세요?”
“별일 안 해 들어와.”
방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반쯤만 겨우 열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온통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화장대며 안마의자, 화분들이 다 바닥에 내려와 있었고, 침대마저 자리를 이탈해서 삐딱하게 방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두 달이나 다리를 못 쓴다고 해서 테이블을 치우고 안마의자랑 책상을 침대에 옆으로 옮겨놓으려고 했지, 누워만 있기는 너무 불편해서.”
“아니, 아침에 말씀하시면 다 옮겨드릴 텐데 조금만 기다리시지 그러셨어요.”
“새벽에 일찍 일어났는데 텔레비전도 재미없고 할 일도 없길래, 무겁지도 않아서 금방 옮길 줄 알았더니 소리도 크고 다른 것도 옮겨야 해서 이렇게 됐네. 괜찮아. 일단 아침 먹자. 아침 먹고 니가 좀 도와주면 되겠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화가 치밀었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어머니 목발 있어도 짚으면 안 돼요. 지금 약 먹어서 잠깐 안 아픈 거예요. 이러면 진짜 수술해야 할지도 모른다는데 왜 그러세요.”
“알았다. 이제부터 안 움직일게.”
“일단 나오세요. 식사 먼저하고 옮겨드릴게요. 차라리 심심하시면 뭐 필요한 것 사다 드리든가 할게요. 저 있는 동안 집안일 할 것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알았다. 별것 아니라 너 귀찮게 안 하려고 그랬지.”
아침을 먹고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방을 정리하고 나니 점심때가 다 되어있었다. 점심 무렵에는 대여해둔 휠체어가 왔다. 휠체어가 도착했을 때 어머니가 한결 낫겠다면서, 잠시 웃은 것을 빼고는 어머니는 목발을 짚고 어기적거리면서 가끔 방 밖으로 나왔고, 나는 분노도 짜증도 애정도 드러내기 싫어서 뻣뻣한 양철 로봇처럼 어디 앉지도 않고 구석에 서서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하거나, 같이 식사를 하는 이외에는 내내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어머니도 더 움직이고 싶은 것 같았으나 내 눈치를 보면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몇 시간을 겨우 보내고 어머니가 내 방을 노크했다.
“안 바쁘지? 잠깐 선반에서 물건 좀 내려줘라.”
“네. 지금 나가요.”
다급히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어머니는 주방에 목발을 짚고 서 있었다.
“뒷 베란다 선반에서 스텐 다라이좀 내려줘라. 제일 큰 거 세 개랑 제사 때 쓰는 큰 도마도 같이.”
“알았어요. 저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그거.”
뭘 하실지 걱정은 됐지만 일단 큰 스텐 그릇을 내려놓고 물었다.
“이걸로 뭐하시게요.”
“현지 휴가 갔다 오기 전에 김치 좀 담고 반찬 좀 해줄려고. 장을 가득 봐 왔는데, 벌써 사 온 지 닷새나 돼서 오늘 안 하면 다 상하게 생겼어. 오기 전에 미리 해놓으려고.”
“아니, 그 발로 어떻게 음식을 하시려고요?”
“앉아서 할 거야. 김장비닐 깔고 앉아서 하면 돼.”
“아니, 발이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하시려고요.”
“조금만 할 거야 안 힘들게 할 거야. 현지 내일이면 올 텐데. 애 데리고 이거 하려면 너무 힘드니까, 먹을 만큼만 할 테니까 걱정 마라.”
“아휴~ 이거 나중에 현지 오고 하세요.”
“걔는 또 걔대로 할 일 많아. 며칠만 더 지나도 이거 다 버려야 하는데 어떡하니.”
“그럼, 먹을 만큼만 하세요. 도와드릴게요. 뭐 도와드려야 해요?”
“그럼, 바닥에 돗자리 깔고, 김장비닐 좀 깔아주고…. 김치냉장고에서 젓갈이랑…….”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서 어머니의 요구대로 이것저것을 가져다가 거실에 준비해 드렸다. 어머니는 먼저 배추를 절인다면서 배추를 손질해서 절여두고, 김치 양념을 만든다면서 무, 양파, 당근, 파 같은 것을 찾으셨다. 그런 재료들을 씻고 다듬는 일도 직접 하지 못하게 하고, 씻고 다듬어서 한쪽에 준비해 드리다가 이른 저녁을 먹고 어머니를 만류해서 낮잠도 한소끔 자고 일어났다.
배추가 다 절여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배추를 씻고 물기를 짜서 스텐 그릇에 넣어 두었다. 해도 이미 지고 나서야 어머니는 김치 양념을 만들겠다며, 천천히 하니까 하나도 안 힘든다면서, 무나 양파 같은 것을 소파에 기대앉아서 채 썰고 있었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아서, 방에 들어가지도, 돕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식탁에 앉아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들어가서 쉬어. 이제 나 혼자도 할 수 있어 천천히 하면 돼. 눈치 보여서 살겠니? 힘들면 부를게.”
어머니가 연신 이렇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잠깐 들어와 눕는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사이 동생이 예상보다 하루 일찍 도착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예 한두 달은 어머니 집에서 보내려고 조카도 시댁에 맡겨놓고 짐을 챙겨서 서둘러 왔다. 어머니가 목발을 짚고 나가서 문을 열어줬고, 동생은 짐을 내려놓자마자 언성을 높였다.
“엄마, 괜찮아? 아니 다쳤는데, 왜 김치를 담고 있어? 못살아 오빠는 뭐 하는데? 병원에서는 뭐래?”
“발등뼈가 부러졌대.”
“깁스는 얼마나 해야 하는데?”
“두 달.”
“어머! 휠체어까지 있어야 하는 정도야?”
“아니, 두 달만 빌렸어. 꼭 필요는 없는 데 있으면 편하대.”
그 소리를 듣고는 잠에서 깨서 거실로 나갔다.
“왔어, 빨리 왔네. 피곤하겠다.”
동생을 향해 인사를 건넸는데, 동생은 쳐다보지도 않고 단답형으로 냉랭하게 대답했다.
“어.”
‘마음의 소리를 듣기는 뭘 들어, 아니, 엄마가 다쳤는데 저렇게 일을 해도, 말리지도 않고, 잠이나 잘 수가 있어! 해도 해도 너무 하네!’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아니, 엄마 일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어머니가 말을 들으시잖다. 너도 피곤하겠다. 저녁은 먹었고?”
“어, 알았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대꾸하기도 싫어진 동생은 저녁 먹었느냐는 말에 맥락도 없이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말았다.
‘아니, 엄마가 오빠만 감싸고 살았는데, 어떻게 저래. 기가 막힌다!’
“알았어. 어머니랑 이야기해.”
모녀만 남겨두고 들어왔다. 동생은 어머니를 다그치다가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묻기도 하다가, 결국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김치 담는 것을 같이 마무리했다.
“못 살아! 휴가 갔다 와서 엉덩이도 못 붙이고 집으로 달려왔더니 이 꼴이 뭐야! 엄마, 이거 버린다고 큰일 나? 아휴~ 오빠도 그렇지 엄마를 말리지도 못해~ 돕지도 않아~ 어떻게 저래!”
“아니야, 지금까지 다 도와주다가 방금 들어갔어. 안 그러면 내가 이걸 어떻게 혼자 했겠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남의 마음의 소리를 듣냐고. 남의 마음을 짐작도 못 하는데…. 저질러 놓으면 맨날 내가 다 수습해야 하고, 엄마는 그래도 오빠만 챙기고.”
내가 들으라는 듯 언성을 높이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시 함께 웃다가 하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아침에 나와보니 거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뒷 베란다 앞에 다시 올려둬야 할 스텐 그릇들만 얌전히 포개져 있었다. 그릇들을 선반 위에 다시 올려두고 갑자기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사람처럼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물 한 잔만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가족들이 깰 때까지 지금 있는 여기가 어딘가를 생각하면서 멍하니 뜬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들 일어나고 나면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던 차에 주방에서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역시 어머니가 가장 먼저 일어나서 냉장고를 뒤적이고 계셨다
“어머니, 현지도 왔고 하니까 돌아가볼까 해요. 현지가 아예 어머니 나으실 때까지 있으려고 준비도 다 해왔다니까요.”
“그래, 그럴래? 그럼 우리끼리 병원도 가고 별일 있으면 부를께.”
버럭 화를 내는 동생보다는 내 눈치를 살피는 일이 더 힘드셨던 것인지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내심 반기셨다. 그래도, 아침은 같이 먹고 가야 할 것 같아 다시 방에 돌아와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동생이 나와서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언성이 높아졌다.
“아침부터 뭐하고 계세요. 편안하게 늦잠도 못 자겠네.”
“아니, 오빠가 집에 간다니까 조금 싸서 보내려고.”
“오빠는 아침부터 엄마가 일하고 있는데 말리지도 않고, 집에 간다고 말하고 들어가 버렸어? 아니 며칠이나 있었다고, 나 오자마자 간데? 휴가 갔다 오자마자 김치 담아서 오빠까지 챙겨야 하는 거야? 남편 챙겨, 시댁 챙겨야지, 엄마랑 애까지 챙기고 어떻게 오빠까지 챙겨야 해? 나오세요. 내가 할게.”
언성을 높이면서도, 결국 어머니가 할 일은 동생의 몫이 되었다. 한참을 불편하게 있는데, 동생이 방문을 열고 말했다.
“나와서 밥 먹어.”
“응”
우리 셋은 정적 속에 식사를 시작했다.
“어머니, 아침만 먹고 가볼게요.”
“그래, 그래라.”
“하~~”
동생이 못마땅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을 달그락 거리기만 하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식사가 계속되다가 동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 요새는 무슨 일 해? 왜 성산시 가서 사는 건데?”
“요새는 좀 쉬고 있어.”
“병원은 다니고? 이제 다른 사람 생각은 안 들려?”
“쉬니까 괜찮아져서 병원은 안 다니고 있어. 요샌 괜찮아.”
“오빠, 왜 병원 안 다니는 건데, 엄마도 벌써 70대야. 오빠도 결혼도 안 하고 마흔 넘었고, 회사는 자꾸 그만두고서는 제대로 된 일도 못 하고, 사업한다고 손해 장난 아니지? 차는 진짜 수리 들어간거 맞아? 오빠 사업 망한 줄은 알고 있었는데, 차도 팔아야 될 정도인 거야?”
“아니야,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걱정을 안 하게 생겼어? 엄마도 맨날 오빠 걱정인데 어쩌려고 그래? 아직도 오빠가 잘 나가는 사람 같아? 왜 아직도 사람들 마음을 듣는다고 믿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일도 못 하지, 결혼도 안 했지, 돈은 계속 까먹지, 어릴 때부터 오빠가 엄마 자랑이기는 했지만, 오빠 그 마음의 소리 듣는다고 해서 나랑 엄마는 항상 오빠 눈치만 보고 살았는데, 아직도 이러면 어떡해. 하다못해 휴가 때라도 오빠가 믿게 해줘야 내가 맘 편하게 있다 오지.”
“니가 오라고 해서 엄마랑 병원 갔다 왔잖아. 더 있어야 되면, 더 있어도 돼. 니가 지금까지 고생한 것 알지만, 바쁘면 내가 있을게.”
“오빠 그 말이 아니잖아. 아니 이런 사람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엄마!”
이렇게 시작해서 아침 식사는 재앙이 되고 말았다. 다툼이 커져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서로에게 내고 말았다. 오늘 아침까지 진정한 외로움이 무엇인지 지금까지는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내 마음은 뻥 뚫린 채 비어있어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엄마! 엄마도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그렇게 평생 덮는다고 오빠한테 도움 되는 일이 아니에요. 엄마가 평생 오빠 말 다 들어줬어도, 보세요. 나빠지기만 했지.
오빠, 우리도 마흔 넘었으니까 이야기할 때가 됐잖아. 솔직히 오빠가 뭘 알아, 오빠가 무슨 마음의 소리를 들어.”
“현지야 그만해라. 오빠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닌데, 말 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만해. 너도 얼른 챙겨서 집에 가고.”
어머니가 중재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동생은 단단히 화가 났는지 오늘은 끝장을 볼 작정이었다.
“아니야, 오빠, 오늘은 듣고 가. 아직도 병원 안 다닌다는 게 말이 안 돼. 최소한 불안하게 살지말고, 연락이라도 잘하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마지막에 회사 그만두고 다 같이 모여서 밥 먹을 때도 오빠 결국은 내 생각이 들린다고 소리 지르고 하다가 갔잖아. 이게 뭐야.
잘 들어. 오빠, 생각이고 마음이고 들리는 거 아니야. 오빠는 원래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똑똑했잖아. 무서울 정도로 눈치도 빠르고 애 같지 않게 알아서 척척 다 하고, 어디를 가나 이해도 빠르고 심성도 착하고, 기억력도 좋고 딸 같은 아들이고, 그러다가 중학교 때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더니 오빠가 충격적인 고백을 한 거지, 마음이 들린다고. 엄마는 처음에는 오빠가 크게 미친 줄 알고, 기억나지? 상담도 받고 한 거, 오빠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해서 따라다녔잖아.
다행히 병원에서는 환청 같은데, 사춘기니까 두고 보자고 했고, 오빠는 당연히 엄마가 믿어줄 거라고 생각해서 실험하자고 했잖아. 근데 오빠는 친절한 데다 똑똑하고 원래 사람을 잘 살피고, 잘 읽는 사람이라서 기분도 잘 읽고, 그래서 마음을 듣는 것 같았던 거야. 가족들끼리는 말 안 해도 원래 서로 잘 알아, 굳이 마음의 소리가 안 들려도.
처음에 몇 번 실험해 보고 진짜인가 싶다가도, 엄마가 잘못하면 오빠 병을 키울 수도 있겠다 싶어서, 장단 맞춰주자고 한 거야. 오빠 실험이 맞는 것처럼 한 거야.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누구한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나한테도 오빠는 아픈 거니까 이해하라고 신신당부한 거야. 솔직하게 우리가 서로 모르는 게 뭐 있어? 지금이야 모르지만, 그때는 못 맞추기가 더 어렵잖아.
엄마는 평생을 오빠가 정상인처럼 느끼면서 살게 해줄려고 연극을 해준 거야. 그런데, 오빠가 뭘 알아.
오빠가 환청을 넘어서, 환각을 보거나 완전히 지금처럼 미쳐버릴까 봐 평생을 조마조마하면서 살았어. 어렸을 때 안 미친 게 다 엄마 덕분인 줄 알아.
‘애기 아빠 따라서 최소 몇 년은 캐나다 가서 살아야 할지 모르는데, 오빠가 이러면 불안해서 어떡하라는 거지? 엄마도 이제 나이 들어가는데, 모든 걸 어떻게 다 책임지라는 거야?’
알고 보니 동생이 화난 데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왜 아직 말 못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을 넘어 화가 난 동생의 마음을 듣고 이해는 됐다.
“다 알고 있었어. 미안했지 항상.”
“봐! 오빠는 항상 이런 식이라니까! 자기 합리화, 뭘 알고 있었다고 그래? 엄마! 엄마가 이야기해야 듣지, 엄마나 나 없는데 심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오빠 덕분에 평생 미친 오빠 안 미친 것처럼 연기를 하고 살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엄마 없으면, 오빠랑 나랑은 법적으로는 가족도 아니잖아. 어떡하려고 그래?
엄마도 그래. 엄마가 진실을 얘기해줘야 오빠도 병원에 가지.”
“아니. 그럼 내 입으로 너네 오빠가 미쳤다고 말하라는 거야? 미친 사람한테 미쳤다고 말해봤자 말이 통해야지, 너희 둘 다 다 잘되라고 그랬는데, 둘 다 서운하다면 나는 어쩌니, 그럼 아들이 미치게 놔둬? 병원에만 보내고? 현지 너한테도 그래서 미안하다고 얼마나 했니, 이제 나는 모르겠다. 나는 할 만큼 했다.”
“어머니….”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듣고만 있기도 힘들었다.
“뭐, 엄마는 할 말이 없는 줄 아니? 너희 오빠가 병원도 안 갈려고 하지, 걱정은 되는데,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게 있겠어, 무덤까지 비밀로 할려고 했지, 이제 와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미친 아들 둔 엄마 심정을 너희가 알아? 내가 미치는 줄 알았어. 다 너희 좋자고, 한 거 아니야. 그래서? 학교 졸업시켜줘. 취직도 잘 돼. 너네는 그게 다 너네가 잘한 줄 알잖아. 내가 뭘 해달라고 하기를 했어? 너만 미친 거 아니야. 나도 미칠 것 같다.”
“어머니! 어머니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어떡합니까!”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다들 며느리 볼 나이에, 미친 아들 밥 해주고 싶은 엄마가 어딨어? 이제 속이 시원해? 나도 더 이상은 못하겠다!”
모든 잘못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동생과 어머니는 날 위해서, 희생하느라 지친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다.
“알았어, 현지야. 어머니, 병원도 잘 다니고 걱정 안 시킬게. 걱정 마시고 회복하고 계세요. 필요하면 바로 올게. 오늘은 그만 가볼게요.”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사실 나는 여동생과 엄마가 연기를 하는 것을 중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에 엄마랑 상담을 받으러 다닐 때는 나도 미친 게 아닐까,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한순간도 마음을 듣는다고 믿어준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심해지는 것을 볼 수는 없어서, 친척들에게 들킬까 봐, 미친 아들을 둔 불쌍한 여자가 되는 것이 싫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가족의 비밀을 만들었다.
요즘 같으면 좀 특이한 아이,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 취급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시대가 그랬고, 남의 시선이 중요한 어머니가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모든 일을 덮었다. 나는 삐져나오면 안 되는 가족의 비밀이었다. 그저 쓸데없이 관찰력이 뛰어나고 이상한 쪽으로 똑똑해서, 어머니보다 먼저 아버지의 외도를 알아챈다든가, 어른들이 숨기고 싶었던 사실들을 들춰내는 소름 끼치게 미친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집 정리를 하듯이 부끄러운 부분을 베란다에다 모조리 밀어 넣고, 보이는 부분만 깨끗하게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언제 밀어 넣은 비밀들이 쏟아져서 하필 곤란한 순간에, 중요한 손님이나 수다스러운 친척들이 왔을 때, 만천하에 공개될까 두려워 언제나 미친 아들은 베란다에 밀어 넣었다. 자랑하고 싶은 아너 그룹에 다니는 아들을 손님들 앞에 꺼내 놓았을 때도, 마치 상점에서 크고 잘 익은 과일만 맨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아래쪽에 물러지고 못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 앞을 지키면서 전전긍긍하면서 산 것이 맞다.
그래도, 오늘까지는 나를 위해 평생 연기 해준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의 입에서, ‘우리는 한순간도 너를 믿어본 적이 없다. 너는 미쳤다.’ 이 말을, 마음으로는 수없이 들었으나, 그것을 진짜 소리로, 어머니와 동생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결국 영원한 침묵도, 영원한 비밀도 없다.
믿어주는 척하는 것이 엄청난 사랑이었음을 깨닫자마자, 믿어주는 척하던 사람도 사라졌고, 정말로 믿는 사람은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 나만 아는 진실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내가 듣는 다른 이의 마음들은 정말 환청인 것뿐일까? 이제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다. 어쩌면 나는 그저 곱게 미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음을 듣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